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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샤인 Feb 04. 2022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취중 글쓰기 샷

막... 12시가 지났고 임인년의 기운이 알코올과 함께 혈류로 흐른다. 몸 속속들이 퍼져나간다. 

멋있다. 혼자서 와인을 마시다니. 학창 시절부터 술과 거리가 멀었던... 나! 

내가 술을 알았더라면 운명이 바뀌었을 거라고 종종 이야기했었는데, 마흔이 돼서야 고즈넉한 시간에 가볍게 와인 한잔 정도 찾게 되었다. 맥주는 맛이 없고, 달달한 와인 한잔이면 만족하는 아주 쉬운 사십 대 초반의 정취에 대 만족. 


탁상 달력을 보니 2월 4일이다. 


신축년, 다들 힘들 거라고 했는데 뒤돌아보니 정말 힘들었다. 

몇 년 동안 나는 괜찮아를 외치면서도 많은 일들을 겪어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힘들지 않았다면 마음이 과하게 무뎌졌거나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었겠지.  


꾸역꾸역 힘든 마음을 가라앉히며 '나는 문제없어'를 외치다가 흘러나오는 노래에 심연 속으로 마음이 곤두박질 친다. 누군가에게 쏟아놓기 힘든 마음들, 추억들, 생각들을 툭툭 건드리는 선율과 가사 때문에 마음이 먹먹해져서 그만 황홀해지거나 그만 울어버렸던 혼자만 아는 이야기. 

노래에 빗대어 고백해 본다. 


몸 보다 마음이 반응했던 노래들 


1. 적재 - 반짝 빛나던, 나의 2006년

https://www.youtube.com/watch?v=2P68SKn0aSQ

적재 참 좋다. 삑사리 나도 노래하는 적재의 성실함이 좋다. 좋지 않은 집안 형편속에서도 씩씩하게 커온 대견함이 있는 적재가 난 참 좋다. 힘든 것도 알고 슬픔도 아는 것 같은 그가 쓴 가사가 좋다. 슬프지만 솔직하고 담담해서 좋다. 

나에게도 반짝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반짝 빛났지만 빛나는지 몰랐던. 청춘을 청춘에게 주기 아까웠던 그 시절. 이 노래를 들으며 나의 2006년을 생각해보았다. 스물여섯이었다. 이직을 결심했던 나에게는 잘생긴 남자 친구가 있었다. 야망 있는 여자를 부담스러워했지만 가까이서 이것저것 살피고 도와주던 그런 사람. 오빠는 결혼을 하자 했고, 나의 스물여섯에는 결혼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그림이었던 떄라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던 그런 찰라였다. 오빠가 혹시 이 글을 우연히라도 보게 된다면 잘생김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알아줬으면....외모도 훌륭했지만 마음이 정말 잘생긴 사람이었다. 의리도 있었고, 정도 있었다. 그가 바라던 행복한 가정을 잘 꾸려가고 있길. 시절인연이었지만 참 고마왔던 사람. 좋은 남친보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 힘들지. 


스물 여섯.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직을 결정하고 몇 주 시간이 있는 동안 고등학교 절친과 홍콩에 갔다. 돈을 아끼고 또 아껴서 갔던 친구와의 여행이었다. 친구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마치자 마자 나와 여행을 떠났는데 지금은 깡 말랐지만 당시 호주 초밥집에서 일하며 엄청나게 살이 쪄서 돌아왔었다. 지금은 놀려먹기 딱 좋은 사진들을 아직 보관하고 있다. 홍콩 변두리 호텔을 예약하고 습기로 흘러 내리는듯한 빌딩 숲을 거닐던 시절. 내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었고 예측하지 않아도 마음이 붕붕붕 떠있던 그런 날들이었다. 마카오에서도 카지노를 하지 않았던 이상한 여행, 친구의 친구가 사주는 덕 요리가 가장 비싼 음식이었지만 마냥 좋았던. 반짝 빛나던, 나의 2006년


당시와 어울렸던 문정희 님의 시

https://www.instagram.com/p/CTw71flvw3a/


나의 절친은 지금 호주에서 가족들과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한국을 떠난 지 벌써 3년이 넘는 것 같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슬픔과 기쁨을 눈치채던 녀석과 나. 사소한 예기에 울고 웃던 그날들이 그리워진다. 그들은 내 인생 어딘가에서 들숨과 날숨으로 존재하고 있다. 해외에 있을 때마다 내게 엽서에 손편지를 써주던 그녀. 올해엔 그녀에게 손편지를 쓰겠다. 


난 잘 꽂힌다. 집중하면서 집착을 일삼는다. 고로 난 몇 달 동안 아침마다 적재 노래를 들었다. 지겨워질때까지, 어쩌나 그런데 안지겹다는. 


2. 양현경 - 옛사랑

https://www.youtube.com/watch?v=2duMKKZasN8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목소리가 있다. 몇십 년을 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만 아는 길을 따라 숨으로 말을 걸어 왔다.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했던. 목소리로 전해지는 울림과 울컥.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본다. 감정은 몸에 해로운 것처럼 치부하면서도 감성과 감정을 느끼며 살아있구나를 실감한다. 다시금 그런 세계로 나를 인도해준 이름 없는 가수 앞에서 오랜만에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며 좋았다. 그녀를 응원했다. 열렬히. 그나저나 옛사랑 가사 왜 이래. 진짜 사무치게 잘 쓰셨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사랑이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마음에 고독이 흘러 넘쳐"

"옛 사랑 그대모습 영원속에 있네"

"하얀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옛사랑의 가사는 시각적이고 공감각적이며 촉각을 곤두세운다. 없던 그리움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광화문이 주는 느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하긴 힘들듯. 

간주에 허밍... 너무 좋다. 기타... 아 기타... 올 상반기 집필을 마무리 하고, 기업들의 보고서를 끝내고 다시 기타를 치겠다. 대학시절 동방한켠에서 아마도 술에 취한 동아리 친구가 두동강낸 나의 기타를 붙여 연주를 시작하겠다. 넘 거창해보이네. 새로 배워야 겠다. 


3. Butterfly _ 엉클 OST Part.7 (UNCLE OST PART.7)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G0zq0U-14e0&feature=youtu.be


연휴를 보내며 나이 들어가시는 부모님을 마주한다. 주방에서 설거지하시는 엄마는 언젠가부터 약간 다리를 벌리고 서계신다. 똑바로 서시기엔 허리가 아프셔서 그렇다. 그녀의 뒷모습에 기슴이 무너진다. 시금치를 무치고 난 비닐장갑도 재활용하는 그녀. 시금치를 묻히고 남은 양념이 아깝다고 어쪄냐는 그녀. 절약을 넘어서는 정신의 소유자. 전 지구에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이 가득했다면 기후위기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겐 완벽한 우리 엄마. 가끔이지만 기도한다. 엄마의 육신의 고통과 마음의 한을 대신 겪게 해 달라고. 내가 다 가져가겠다고. 그녀가 살아낸 시대의 인내, 여자로서의 양보와 포기들. 그네들이 없었으면 누릴 수 없었던 나의 행복. 그녀는 가늠하고 계실까. 그녀의 숭고함을. 


새벽 5시. 아버지 방에서 유튜브 강의가 차근차근 들려온다. 2021년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 있던 아버지 방 한 면을 도려냈다. 가족을 총동원해서 아버지 방을 서재 비슷하게 꾸밀 수 있도록 짐을 버리고 치웠다. 올해 잘 한일중 한 가지다. 서랍장도 새로 사드렸고, 책상도 새로 사드리고 싶었는데 못했다.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서랍장과 비슷한 색의 책장을 사드리고 싶었는데 결국 스스로 주문 제작하셨다. 아버지 방은 나날이 새로워졌다. 완벽한 서재로 변모. 좋은 그림, 고전들로 가득가득 채워진다. 아버지는 그 방이, 그 집이 좋다고 하셨다. 네 식구가 살기엔 좁다면 좁은 그 빌라에서 우리 가족은 참 오래 살았다. 딸들이 떠나고 각자의 방을 가진 두 분이서 각자의 모양과 개성대로 방이 꾸며진다. 아버지의 책장에 고전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아버지는 형광펜을 쭉쭉 칠해가며 한 권을 5번 이상 읽으셨다. 우리 아버지는 그런 분이었다. 내 나이 스물 아홉부터 하루에 한 번 전화를 하셔서 밥은 먹었냐고 물으시는 분.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고 하시며 좋아하시는 분. 자신의 라이센스와 고향을 버리시고 딸들의 직장 곁으로 거쳐를 옮기신 후 어떤 직장이든 상관 없으셨던 분. 아버지께 참 죄송하다. 그가 내려 놓은 것은 어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부일수도.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모른척했다. 비겁했다. 


나는 아빠처럼 내려 놓을 수 있을까. 버릴 수 있을까. 내어 줄 수 있을까 내게 소중한 것들을. 


이직을 서두르지 않고, 면접 후 이점이 싫고 어떤 점이 싫어서 좀 더 괜찮을 곳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이야기하시는 아버지가 난 좋다. 그래도 되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난. 물론 우리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대목이지만. 적당히 눈이 높고,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고, 취직에 늦장을 부리는 아버지가 정말 좋다. 


" 아빠 너무 애쓰지 말아요. 지금도 내겐 최고의 아빠 인걸요." 


아버지는 내가 어릴때부터 책과 운동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여전히 그리고 오늘까지 어머니는 눈치 못채는 어머니를 향한 눈치를 보신다. 


내 마음을 대신하는 노랫말을 들으며 눈물이 죽죽 흐른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내가 눈이 말똥해진다. 


" 난 오늘 하루도 감사해요.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가 있으니 "  

" 잠깐 쉬어도 괜찮아요. 울어도 괜찮아요. 내겐 완벽한 당신인걸요. "

" 지금은 작고 여리기만 한 우리지만 우린 뭐든 될 수 있어요. 나비가 되어 날 거예요 "


꼭꼭 감춰두려던 마음이 무심하게 흘러들었던 노래에 팔딱거린다.    


입춘대길을 기념하며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하게 될, 

그래서 내 삶의 일부가 된 이들의 삶에 봄의 온기와 생기가 가득하길.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길 기원한다'


2022년 내가 도전하고 싶은 세 가지 윈드서핑과 기타 그리고 이 노래와 제법 잘 어울리게 될 YOU!  

https://www.youtube.com/watch?v=PL5FCffFO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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