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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상 Sep 22. 2024

#2.기억의 구슬

#파노라마 #소설

[다시 현재]

“아..아니.. 넌 그 때.. 죽…”

“그래 죽었지. 뭐.”

“그..그런데 여길.. 어떻게??”

노인은 당황한 나머지 말을 제대로 잊지 못하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뜬채 학수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야기하였다. 학수는 그런 그가 재미있다는 듯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띄었다.

“거꾸로 생각은 안해보았는가? 너야 말로 이 곳을 어떻게 왔을지 말이야.”


“그..그럼 나도 죽은건가?”

“음.. 명확히 따지면 죽기 바로 직전이야.”

노인은 학수의 말을 이해 못 하겠다는 듯 대답없이 쳐다보았다.

“뭐. 그런 말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 죽기 직전 파노라마처럼 생전의 기억들이 ‘후다닥’ 스쳐 지나간다고.”

학수는 ‘후다닥’이라는 표현을 강조하기 위해 서였는지 양팔을 들어올려보였다.

“여기의 시간은 이승의 시간과 달라. 사실 생각보다 꽤 여유로운 시간이 있다고. 하하. .

”암튼 미정이는 그 뒤로 잘 살았는가? 내 장례식에는 왔고? 여기 저승이 엄청 보수적이라 죽고 난 뒤에는 이승을 전혀 못 보게 해서 말이지”

노인은 그의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마치 학수와의 그 시절 기억이 외의 주위는 아무것도 없는 것 처럼 캄캄했다.

“하하하 내가 괜한 말을 했군. 어차피 너도 기억을 못할텐데.”


“응? 그게 무슨 말인가?”

마치 자기만 알고만 있다는 듯 입술을 비쭉 거리는 학수를 노인은 못 마땅한듯 쳐다보며 물었다.

“아까 말한대로 자네는 지금 죽기 직전일세.”

학수는 노인의 눈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그 순간은 이승과 저승의 문지방 사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아. 영혼과 육신이 반쯤 걸친 상태이다 보니 자네의 머리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야. 신이 무척 재미난 장치를 만들어 두었거든.”

“그..그게 무슨 말..”

“너무 머리로 이해를 하려고 하면 이해가 안될거야. 따지고 보면 죽음이라는 순간부터는 논리적으로 연구가 된 게 없지 않은가? 과학적 사실, 논리 이딴 건 죽는 순간부터는 무슨 소용이야. 산사람에게 전달할 수도 없는데.”

노인은 더욱더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냥 단순히 얘기하면 자네의 기억은 자네의 육신에만 머물 수 있게 신이 장치를 걸어두었다는 말이야.”

노인은 더욱더 혼란스러웠다. 오랜 세월 전에 이미 죽은 친구가 갑자기 나타나 이해가 전혀 안되는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노인은 혹시 친구로 둔갑한 요괴가 아닌지 학수를 다시 살펴보았다. 항상 그의 컴플렉스였던 얼굴에 남아있던 여드름 자국들 그리고 말을 할 때 마다 오른 손 검지로 안경 알 사이의 브릿지를 올려 쓰는 모습까지 노인이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고 보니.. 네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지?”

“내 이름..?”

학수는 또다시 안경을 고쳐쓰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말을 듣고보니 노인은 그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너의 이름”

어느새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집중을 해도 그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내가 치매였는가?”

학수는 노인의 말에 피식 웃었다.

“하하.. 한가지 재미난 얘기를 해주자면 왜 자네가 노인이라고 생각을 하는거지?”

“뭐…뭐라고?”


“뭐. 여기서 일일히 다 설명해줘도 어차피 이해가 어려울 테니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을 얘기 해주지.”

“할 일?”

“아까 말했잖아. 잠시 우리가 다른 얘기로 새어버렸는데, 죽기 직전 파노라마처럼 네가 살았던 인생이 눈 앞으로 후. 다. 닥. 지나간다고.”

학수는 또다시 '후다닥'을 강조하듯이 끊어서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네가 살아왔던 그 인생들을 마지막으로 여행하듯이 되돌아 갈거야. 네 인생의 중요했던 순간들의 대부분의 역순으로 돌아가게 될 거란 말이지. 그 순간들을 마주할 때 마다 구슬을 찾게 될 거야.”

“구슬?”

그때 학수가 손가락을 튕기자 야구공만한 크기의 둥근 모양의 빛이 보였다. 흰색에서 점차 노란색 다시 자연스럽게 초록색으로 바뀌며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생긴 구슬이지. 이 구슬은 아까 말한 것처럼 네 육신에 남아있던 일종의 기억들이라고 생각하면 돼. 신이 한가지 재미난 장치를 해두었다고 했지? 육신과 영혼이 분리가 될 때 영혼이 기억을 갖고 가지 못하는 것은 육신에 남겨져서 이지. 그래서 마지막 여정에서 꼭 가져가고 싶은 기억이 담긴 구슬들만을 가져갈 수 있게 해 준거지. 하늘에서 언제든 추억할 수 있도록 말이야. 나도 그래서 너를 기억하는 것이고”

“음...”

학수는 또다시 혼란스러워 하는 노인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며 말을 이었다.

“신도 그렇게 아주 무섭거나 매몰차지만은 않아. 나름 낭만적이지.”

“난 도저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하하하 충분히 이해해. 나도 그랬으니.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지금부터는 직접 경험을 하면서 이해해보자고. 아무튼 자네의 여정이 끝나기 전까지 구슬을 5개만 찾으면 돼”

“다..다섯개?”

“흠.. 살아온 인생에 비해 지극히 적어 보이겠지만 그 5개가 얼마나 자네의 인생을 기억하고 대변할 수 있는 지 후에 깨닫게 될 거야.”

“마치 어머니가 도시락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아주셨듯이 말이지..”

학수는 호탕하게 웃더니 엄지와 중지를 튕겼다. “딱“ 소리와 함께 온통 하얗던 공간이 번쩍였다. 노인은 순간 눈을 감았다가 떴다.


[마지막 기억. 93세]

노인의 눈에는 하얀 천정이 눈에 들어왔다. 직사각형 모양의 텍스가 규칙적으로 놓여있었고, 중간의 형광등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 시야에는 커다란 창가에 사람의 실루엣이 보여졌다. 노인은 그 실루엣을 보려고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 실루엣의 주인공은 어느 나이든 여자였다.

아이보리 색의 얇은 커텐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며 마치 그녀를 후광처럼 더욱 빛나 보이게 하였다. 나이는 제법 있어보였으나 백발하나 없이 검은 머리카락을 단아하게 뒤로 묶어 볼록한 이마가 드러나 보였다. 그 이마 아래로 얼굴 주름이 가득하였지만 눈빛만은 생기있게 반짝이고 있었다.  

’누구지?’

한창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노인의 시선을 의식하였는지 고개를 돌렸다. 고령으로 보였음에도 맑은 눈망울과 살짝 도톰한 입술로 짐작컨대 젊었을 때 꽤나 미인이었을 것 같았다.

“언제 일어난 거예요?”

그녀는 밝게 웃었다. 햇살이 그녀의 머리카락과 얼굴 위에서 물결치고 있었다. 그녀가 손으로 가볍게 노인의 가슴을 토닥였다. 그 순간, 학수가 노인을 만졌을 때처럼 무언가 컴컴한 곳에 백열전구의 불이 들어오 듯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따뜻한 차를 마셨을 때 식도를 타고 위로 내려가는게 느껴지는 것처럼 머리 속에 따뜻한 무언가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머리 속 전체가 밝아지진 않았고, 오로지 그녀의 대한 기억들만 부분적으로 채워졌다.

‘소연…??’

그의 아내였다. 노인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의 입에 산소마스크가 채워져 있어 더 이상 말은 할 수 없었다.

“뭔가 할말이 있나보오.”

소연의 입가에 미소가 잔잔히 번졌다. 고령임에도 반듯한 치아가 입술 안에서 살며시 비치며 웃는 그녀의 미소가 그를 설레게 하였다.  

“그 할말이라는 게 또 내가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니 ‘뭘 그렇게 바라보는가?’ 라고 말할라고 했수?”

노인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졌다. 머리 속을 밝혔던 빛이 뜨겁게 그의 가슴 속으로 내려왔음을 느낀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가끔씩 멍하니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였다.


노인의 머리 속의 불들이 켜지며 그녀에 대한 기억들이 하나씩 하나씩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그의 기억의 눈으로 보여진 그녀의 모습은 밝은 햇살에 출렁이는 긴 생 머리카락이었다.

20대쯤으로 보인 그녀는 하얀 반팔 티셔츠에 딱 달라붙는 일자 청바지를 입은 채 밝게 웃으며 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소연아~”

그는 손을 뻗었지만 순식간에 그녀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에 대한 다른 기억들이 그의 머리 속에서 채워지는 듯하였다. 그녀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서 눈을 떼지는 않았지만 20대의 모습에서 점차 나이가 들어가는 듯 그녀의 피부에 조금씩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자꾸 그렇게 쳐다보니 내 얼굴이 닳겠수.”

어느새 다시 병실의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노인에게 말했다. 또다시 그녀의 치아가 살며시 눈에 들어왔다.

“청승맞게 우리 신혼여행 때를 생각했수. 창밖에 저 햇살에 잔잔히 반짝이는 호수를 바라봤는데 그 날이 생각이 나지모우.”

그녀가 말한 신혼여행도 노인의 기억에 이미 들어와 있었다.

그와 그녀는 신혼여행지로 미국 보스턴으로 결정하였었다. 그녀가 어학연수로 다녀온 곳이기도하고 그 당시 느꼈던 보스턴의 매력을 먼 훗날 사랑하는 이와 함께 꼭 오길 원했다고 하였다.


[신혼여행 32세]

“그리 신나?”

택시 안에서 남자는 그녀를 바라보며 이야기 하였다.

“그럼~ 오빠랑 공식 부부로서 하는 첫 여행이자, 내가 처음으로 외국에 나와 공부한 곳에 함께 온거니깐” 지금 우리가 가는 첫 번째 장소는 내가 현지 학생이랑 처음으로 갔었던 곳 인데…”

그녀는 밝게 웃음지어보였다. 남자 역시 그런 그녀를 보며 웃었다. 차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한 점 없이 맑았다. 푸른 잎새 들을 보며 5월의 화창한 봄날이 보스턴의 마을을 뒤덮고 있음을 느끼었다.


“오빠~~~”

그녀가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커다란 바다가 보였다. 길게 뻗어있는 돌길 한 가운데 그녀가 서 있었다. 그 뒤로 넓게 펼쳐진 바다와 육지 가까이에 정착한 고깃배들이 물결에 조금씩 넘실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어느 틈엔가 항구에 서있었던 것이다.

 

‘내가 정신을 잃었었나?’

“아니. 기억으로 되짚어가는 길이다보니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는거야. 아까 말했다 시피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시간의 개념이 좀 달라서.”

어느 틈엔가 학수가 남자 옆에 서 있었다.

“어..언제?”

“아.. 난 너무 신경쓰지마. 얼른 가봐. 그녀가 부르잖아”

학수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채 남자에게 말하였다.  

남자은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따스한 봄날이었지만 바다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붙잡고 흔드는 것 같았다.

“아까 먹었던 랍스타 샐러드 샌드위치 완전 짱이지?”

“여기가 내가 말한 곳이야. 마음이 답답하고 할 때 여기서서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곤 했거든.”

“그 때부터 어디론가 멍하니 바라보던 버릇이 생긴건가? 후훗”

나도 모르게 답하였다.

“어멋.. 그런가?

그녀의 손이 내 팔뚝 사이를 부드럽게 비집고 들어왔다. 그렇게 그녀는 팔짱을 낀 채로 바다를 또다시 멍하니 바라보며 얘기하였다.

그때 였다. 어디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somebody, h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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