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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상 Sep 23. 2024

#3.그녀의 약속

#파노라마 #약속

“somebody help~~!!”

갑작스레 주변에서 다급한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바닷물에 빠져서 허우적 대고 있었다.

‘아니 저길 어쩌다가?’

바다에 빠지직 않도록 바닥에 쭉 놓인 바리케이드 너머로 누군가 물에 빠진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10살도 채 안 돼 보일 정도로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가 연거푸 물속을 들어갔다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어머니로 보이는 곱슬머리의 여자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I can’t swim. please anybody save him”

그 주변으로 몇몇의 외국인들이 서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질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떠한 생각을 인지하기도 전에 남자 거리낌 없이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던지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오… 빠!!”

순간 뒤에서 소연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윽고 물소리와 그 소리도 묻히게 되었다.

‘아이를 구해야 해.’ 이 생각만으로 남자는 손을 뻗어 아이를 붙잡았다. 하지만 아무리 10살 정도의 아이였지만 물에 빠져서인지 거세게 손을 휘저으며 그를 붙잡다 보니 생각보다 몸이 빠르게 무거워졌다.

“헉헉.. 다.. 다리가.…”

준비 운동 없이 뛰어들어서였을까? 갑자기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게다 아이가 버둥되며 내 몸을 힘껏 잡아당기다 보니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그렇게 물속에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오기를 반복하였다. 더 이상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며 물에 가라앉게 된 순간 바리케이드 밖에서 나를 애타게 쳐다보는 소연과 눈이 마주쳤다.

‘소연아…’

그녀의 이름을 속으로 부르며 점차 주변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오… 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잠시 필름이 끊겼다가 연결된 것처럼 소연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처음엔 뿌옇게 사람의 실루엣이 보이다 점차 색깔과 그 선이 굵어져 갔다. 익숙한 형체의 소연이가 가장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뒤로 몇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어느 정도 시야가 선명해지자 그들이 또렷이 보였다.

“오빠. 괜찮아?”

다시 한번 소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려오는 목소리를 쫓아 시선을 돌렸다. 마주친 그녀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흘러 그녀의 하얀 볼을 타고 끊임없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때 그 뒤로 서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다가왔다. 의사인 듯 하얀 가운을 입은 통통한 남성은 오른손에 쥔 볼펜 크기의 후레시를 켜며 다른 한 손으로 남자의 눈꺼풀을 살며시 올렸다.

“excuse me. I’ll check your eyes. please open your eyes”

“good job. eye opening response is ok.”

그는 양쪽 눈을 번갈아 확인하고는 모든 게 괜찮다고 하고, 정말 멋진 사나이라고 엄지를 들어 보이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Thank you for saving my son.”

그 의사 뒤로 서 있던 곱슬머리의 중년의 여성이 애틋한 눈빛으로 내게 감사 인사를 하였다. 어느새 깨었는지 물에 빠졌던 꼬마 역시 환자복을 입은 채 남자 앞에 서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들이 모두 나가고 병실에는 소연과 남자만 남게 되었다.

“오빠..”

어느새 흐르던 눈물이 마르고 잔뜩 충혈되어 있는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너무 놀랐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앞뒤 안 가리고 그렇게 뛰어들면 어떡해. 911 구조대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상상도 하기 실…”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며 그녀의 얼굴을 내 가슴에 파 묻었다.

“미안해.. 소연아. 나도 모르게.. 그만.”

난 손을 살며시 들어 올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비단 같은 머릿결이 손에 닿았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였다.

“다시는!! 다시는 그렇게 함부로 달려들지 마! 알았어? 난 정말 오빠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다시 고개를 파묻으며 울었다.

“그럼! 약속할게!! 다시는 안 그럴게.”

남자는 조용히 그녀의 등에 손을 얹어 토닥였다.

“대신 여보도 하나 약속해 줘!”

“뭘?”

“…”

“말해봐. 무슨 약속!”

소연은 다시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눈덩이가 퉁퉁 부어있었다. 한동안 남자는 말없이 바라보다 이윽고 대답하였다.

“나보다 최소한 하루만 더 살다가라! 더 오래 살면 좋고!”

“치 그게 무슨 말이야. 같은 날 죽자는 것도 아니고.”

“야. 평균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수명이 긴 거 너도 알면서. 내가 염치가 있지. 암튼 중요한 건 네가 나보다 훨씬 더 늦게 하늘나라로 오면 좋겠네.”

“아니 그런데 갑자기 왜?”

소연은 뜬금없다는 듯 남자를 바라보며 이야기하였다.

“아니 아까 물에 빠졌을 때 솔직히 나도 무섭더라고. 진짜 이대로 죽는 건가 하고”

“내 말이.. 그러게 왜 그렇게 뛰어들어갖고..”

그녀는 원망스럽다는 듯 힘없이 남자의 가슴을 손으로 살며시 내려쳤다.

“그러다 눈을 떴는데 네가 옆에서 나를 바라봐주니깐 너무 든든하고 좋더라고.”

“같이 건강해야지. 나만 든든하면 되냐? 그런 너를 바라보는 나는 어쩌라고! 정말~”

다시 그녀가 손으로 남자의 가슴을 내리쳤다.

“어차피 네가 더 오래 살 수 있으니깐 약속 지키기다?”

말을 마치는 순간 다시 주변이 눈부시게 밝아졌다.


[다시 병실 93세]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자 또다시 사람의 형상이 뿌옇게 눈에 들어왔다.

‘소연아..

맨 처음 병실에서 눈을 뜬 그 자리에서 바라본 이제는 머리가 희끗한 소연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소연은 아무 말 없이 다 안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시 한번 그녀의 뒤로 햇살이 반짝이며 그녀의 백발을 빛나게 하였다.


“아버지?”

노인의 오른편에서 다소 가느다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뭔가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

그녀는 침상 곁으로 다가가 노인의 손등을 살며시 어루만져주었다. 통통하고 작은 몸집의 중년 여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의 손이 닿자 이번에도 불 꺼진 전등이 켜지듯 가려졌던 그의 기억이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바로 그의 딸임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야 당연히 네 어미가…’

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제야 그의 입에 산소마스크가 끼어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여전히 창가에 앉아 잔잔한 미소로 그를 바라보는 소연과 눈과 마주쳤다. 그 순간 그의 눈에서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였다.

“어라? 아니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기분 실컷 좋다가 이번엔 또 눈물울 흘리시네. 대체 이게 뭔 일이람. 나 때문에 그런 거예요?”

다소 당황한 듯 그녀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그녀의 말조차 노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는 눈물을 흘리며 소연만을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던 소연은 손을 내밀어 그의 이마를 살며시 쓸어주었다.

“어허. 그만 우셔요. 우리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억울하게 내가 한소리 들을 상황이네.”

그녀의 목소리는 저너머로 묻히며 소연에 대한 마지막 기억 속으로 노인은 다시 빨려 들고 있었다.


[장례식장 77세]

“아니 너희 아버지는 어쩜 저렇게 눈물 한 방울 없으셔?”

“어휴. 조용히 좀 말해. 그러다 아버지 듣겠어요. 고모”

사람들로 북적이는 어느 장례식장의 테이블에 마주 앉은 검은 상복 차림의 여자가 의아한 듯 말을 꺼냈다.

“언니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리다니.. 쯧쯧.”

그들이 시선이 날카롭게 나에게 꽂혔다. 그럼에도 그들의 시선조차 느껴지지 않고 사진만을 바라본 채 입으로 중얼중얼거릴 뿐이었다.

“약속.. 했잖아.. 약속을….”


소연이 죽었다.

그날도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외출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뺑소니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범인은 결국 잡혔고 평범한 직장을 다니다 은퇴한 60대 남자였는데 그의 친구들과 점심부터 동료들과 술을 한 잔 했다고 한다. 차 안에서 낮잠을 한 시간 정도 잤고 술이 다 깼을 거라 생각하여 운전대를 잡았다가 이 사단이 났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는 너무 허망하게 신혼시절 했던 약속을 어겨버렸다.

아무런 말없이 남자는 그녀의 영정사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관일.

화장터에서 그녀의 관이 커다란 화로에 삼켜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조그마한 체구였는데도 화로가 소화를 시키는 데까지 1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아닌가? 70여 년을 살아왔는데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시간이 너무 짧은가?

남자도 모르게 커다란 유리 위에 손을 올렸다. 매 순간을 함께 해 놓고선 정작 떠날 때는 투명한 유리 벽을 두고 그녀를 만지지도 못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만져둘걸.

남자의 심장이 더욱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는 유리를 부술 것처럼 손바닥으로 유리문을 내리쳤다.

“여보…”

어느새 터져 나왔는지 눈물이 그 남자의 목을 잠겨 말문이 막히게 하였다. 그렇게 그는 목이 맨 채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아.. 아버지..”

“오빠…”

딸과 여동생이 함께 울며 내 어깨를 붙잡았지만 노인은 그렇게 유리를 두들긴 채 속절없이 울고 있었다.


[다시 병실]

‘약속… 지켰구나’

노인은 그녀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속으로 말하였다. 소연은 알아들었다는 듯 방긋 웃기만 하였다. 햇살이 더욱 강하게 내리쬐듯 그녀의 모습이 점점 더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어느 틈엔가 그녀의 모습이 하얀빛으로 더욱 밝아지더니 동그랗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여어.. 추억 여행 잘했는가?”

어느 틈 엔가 학수가 그 옆에 섰다. 이번에 다시 보게 된 그는 교복 차림이 아닌 청바지에 중간에 커다랗게 영문으로 ‘happy’라고 적힌 회색의 라운드 T를 입고 있었다. 학수는 오른쪽 검지를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시선을 돌려보니 동그란 하얀빛이 공중에 떠있었다.

“이게 내가 말한 구슬이야.”

“소… 소연은..?”

어느 순간 노인의 입을 막고 있던 산소호흡기도, 그를 누였던 병실 침대 등 모든 게 사라졌다. 그러나 노인은 그런 것에는 아랑 곳 없이 학수를 바라보며 이야기하였다. 학수는 또다시 중지로 안경의 브리지를 고쳐 세우더니 하늘을 향해 눈길을 보냈다.

“천국에 갔다는 말인가?”

“그래. 자네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잠시 내려왔던 걸세. 자네처럼… 그 마지막 기억의 구슬이 소중했나 봐. 허허 부인을 잘 만났네?”

노인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마지막이라고 그녀를 기억하려고 하였다. 또다시 그의 두 눈덩이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괜찮아. 괜찮아. 자네에게 이 구슬이 생겼으니 이제 평생 기억하겠군. 얼른 저 구슬을 가방에 넣으시게”

학수는 가볍게 노인의 등을 쓰다듬더니 검은색 가방을 내밀었다. 무늬가 없는 새까만 직사각형의 아타셰케이스였다. 흔히들 007 가방이라고 불렸던 가방이다. 학수가 금색의 걸쇠 부분에 손을 대자 ‘딸깍’ 하고 가방이 열렸다. 가방 안을 들여다보니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였다. 짙은 브라운 가죽으로 에워 쌓여 있었고, 안쪽에 동그랗게 파인 부분이 5개 정도 보였다.  

“저 구슬을 집어서 여기다 넣으면 된다네.”

학수는 다시 한번 구슬을 가리켰다. 하얀빛을 뿜어내는 구슬은 여전히 공중에 떠있었다. 노인은 살며시 손을 뻗어 보았다.

“이런.. 겁쟁이 같으니라고. 안 물어. 얼른 집어서 넣게나.”

노인은 살며시 떨리는 손을 내밀어 구슬을 집었다. 따뜻한 촉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약간 물컹이지만 그렇다고 흐물거리지 않는 따뜻한 고무공 같은 느낌이었다.

“이.. 이걸 모두 모으면 기억들을 천국에 가져갈 수 있다는 거지?”

“그렇고말고. 이제 다음 여행지로 떠나보세. 하하”

학수는 흐뭇한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커다란 여드름들이 그의 웃음에 밀려 더 크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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