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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상 Sep 28. 2024

#4.헌터

#파노라마 #소설 #헌터 #잔상

“삐이 삐이 삐이”
새까만 하늘 아래 어느 폐건물 옥상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키는 대략 170cm 정도로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색 재킷과 검은 기지 바지를 입은 여자였다. 어깨가 좁은 데다 작은 얼굴이라 전체적으로 왜소해 보였지만 결코 작지 않은 키도 키지만 꼿꼿이 세운 허리에 윤기가 거의 없는 메마른 눈빛 만으로도 상대방을 압도할만한 기운이 느껴졌다. 또한 이마가 훤히 보일 정도로 바짝 뒤로 묶은 머리카락 때문이었는지 그 기상이 더욱더 우뚝 서 보였다.
 그녀의 왼쪽 손목에 채워져 있는 시계의 알람은 계속해서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흡사 스마트폰으로 이따금씩 들어오는 재난문자 알림 같은 소리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굳게 다문 입술과 메마른 눈빛으로 옥상 아래를 묵묵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때 그녀의 뒤로 누군가 쓰윽 나타났다. 검은 그림자가 달빛에 드러나자 여자의 몸보다 약 2배는 커 보이는 거구의 몸으로 곱슬머리 남자였다. 그러나 그의 덩치에 맞지 않게 얇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팀장님. 먼저 와계셨네요. 죄송합니다. 경보기를 보고 너무 의아해서 처음에 고장 난 줄 알았어요.”
커다란 덩치에도 남자는 돌아보지도 않는 그녀의 등 뒤에서 절절매며 말을 걸었다. 그때 또 누군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여자와 거우의 남자의 중간 정도의 키를 갖고 빼빼 마른 검은 정장을 입은 또 다른 남자였다. 고슴도치처럼 짧은 스포츠 형식의 머리 스타일에 얼굴은 20대 정도로 앳되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신입…”
“빠져가지고. 왜 이리 늦게 와?”
거구의 남자는 어느새 부드러웠던 표정을 풀고 신입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한소리를 하였다.
“죄.. 죄송합니..”
“모두 조용!”
아무 말 없던 여자는 단 네 글자를 뱉으며 주위를 일순간에 조용히 시켰다. 목소리 톤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발성에 무게가 꽤 실려있었다.
“모두 알람을 받은 그대로다. 누군가 출가를 했어.”
“엥? 진짜요??”
덩치 큰 남자는 또다시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뒤늦게 도착한 신입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추.. 출가요? 그.. 그게 진짜 벌어진…”


“하아. 그래 출가 몰라? 요즘은 대체 후방기 교육을 어떻게 하는 거야?” 덩치 큰 남자는 못마땅하다는 듯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출가는 이론적인 것이고. 실제 사건은 수세기 전에 일어 난 일이잖아요.”
“그래. 어떤 멍청한 놈인지 몰라도 천국에서 탈출했다.”
이번에는 팀장이 말을 끊으며 말하였다.  
출가는 출가나안을 뜻하는 말이었다. 인류 초반 애굽을 벗어나 가나안의 땅으로 떠난 출애굽을 빗대어 천국에서 탈출하는 사건을 그들끼리 부르는 일종의 약어 같은 것이었다.
“어휴.. 팀장님.. 헌터들이 엄청 득실거리겠는데요? 구슬을 빼앗으려 혈안이 되어있겠어요”
“구슬이요? 구슬은 왜요?”
막내의 어리숙한 질문 때문인지 덩치 큰 남자는 또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말하였다.
“뭐.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인 거는 알겠지만 잘 생각해 봐라.”
“네..”
막내는 조금 움츠러든 채 대답하였다.
“천국에 들어갈 때 사용하는 게 뭐냐?”
“구슬?”
“그래. 그렇다면 거꾸로 나올 때도 그게 없으면 나오질 못하겠지? 그게 일종의 열쇠이니깐. 후우. 내가 왜 이런 설명을.. 선생님도 아니고”
남자는 답답한 듯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본인의 구슬이 아니면 천국으로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막내는 항변하듯 대꾸하였다.
“그거야 당연히 그렇지. 하지만 천국도 지옥도 아닌 이곳에 곳곳에 숨어 있는 녀석들은 바로 그 열쇠를 노리고 있어. 그 열쇠를 찾아야…”
남자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환생할 수 있거든.”
“화… 환생이요? 그.. 그게 진짜 가능한 이야기였어요?”
막내는 너무 놀란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짧게 뻗은 머리카락이 더욱 곤두선 듯 보였다.
“하아. 그럼 그 열쇠 훔쳐다가 천국에도 못 가는데 왜 그렇게 헌터들이 혈안이 되어 찾는지 모르겠어?”
“헌터들의 이야기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답답함이 밀려온 듯 덩치 큰 남자의 한심하다는 말투에 자극을 받은 듯 막내는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래도 존심은 있어가지고. 그래. 헌터들이 대부분이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이나 저승사자들이 꺼려하는 범죄자들의 영혼이 갖고 있는 구슬을 노리지만 그중 가장 으뜸이 천국에서 내려온 구슬이라는 것이지. 백날 씨덥지도 않은 구슬 100개 보다 천국의 구슬 5개면 한 방에 환생이니깐”
남자는 다소 누그러진 듯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팀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디부터 수색을 하면 좋을까요? 역시 도망 나왔다는 장소부터 가볼까.. ”
우선…”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잠잠 코 있던 팀장이 갑작스레 말을 꺼내었다.
사건 현장으로 가지만 우린 헌터를 쫓는다.”

[새벽 2시. 어느 지방국도]
가로수 없는 시커먼 국도 위로 검은 그림자의 사내가 걷고 있다. 쌀쌀한 늦가을이라서인지 그가 호흡할 때마다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낡아빠진 회색 후드티에 달린 모자로 머리를 푹 눌러쓴 그는 누가 봐도 초행 길인 듯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볼에는 그의 무르팍을 중심으로 군데군데 찢겨긴 청바지 아래로 검붉은 핏자욱 때문인지 신발이 더욱 하얗게 보였다.
“하악하악.. 씨팔.. 여기가 어디야… 난 대체 언제부터 여기 있던 거지?”
서늘한 공기 때문인지 불안감 때문인지 무척이나 불안한 음성으로 그는 혼잣말을 하였다. 아무리 기억을 하려 해도 그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그가 아는 것은 불과 몇 분 전에 양 옆이 논밭인 어느 지방도로 한가운데에서 벌벌 떤 채로 의식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무작정 앞으로 걸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빛이라고는 밤하늘에 떠있는 시뻘건 달만이 보일 뿐이었다.
‘시뻘건 달?’
설사 개기월식이라 하더라도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달은 붉은 정도가 아니라 피가 뚝뚝 떨어진 듯한 말 그래도 시뻘건 달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썅. 아이씨. 왜 이렇게 추워”
그는 통제될 수 없는 환경에 짜증을 내었다. 욕을 할 때마다 입가의 칼 자욱이 움찔거렸다. 걷는 내내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똑같은 정경만이 펼쳐져 보일 뿐이었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캄캄한 어둠을 뚫고 전광판 같은 것에서 희미한 불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버스정류소?’
처음으로 익숙한 것이 나오니 그는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이미 퉁퉁 부은 발바닥의 통증도 잊은 채 빠른 걸음을 재촉하였다.
“지이잉 지직..”
짐작한 대로 버스 정류소가 보였으나 기쁨도 잠시 고장 난 전광판은 온통 빨간색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에잇 썅~!”
그는 전광판을 지지하고 있는 애꿎은 녹슨 철조망을 발로 걷어찼다.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낡아빠진 벤치에 주저앉았다. 차가운 촉감이 그의 엉덩이를 철썩 때린 듯 아려오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일어날 힘조차 없었다.    
혹시라도 버스가 올까 싶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그는 먼발치에서 헤드라이트 조명을 보았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두 눈을 밝히며 다가오는 자동차의 라이트가 반짝였다. 어느새 점차 가까워 지자 검은색의 승용차임이 보였다. 마침 그 위에는 택시라는 글자가 노랗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을 흔들어댔다. 차량은 순식간엔 그의 앞을 쑥 지나가 버렸다.
“이런 싹수없는 개…”
남자가 욕을 다 마치기도 전에 차량은 커다락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멈춰 섰다. 자신의 욕을 들었나 하고 잠시 움찔하였지만 현재로선 멈춰 선 차량이 그에게는 이 칠흑 같은 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 생각하였다. 멈춘 차량의 후미등에 노란 불이 들어오며 후진을 하였다. 차가 그의 앞에서 자 커다란 힙합 음악을 틀어놓은 양 ‘쿵쾅’ 거리며 창문이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이윽고 창문이 내리니 운전대를 잡고 있는 자의 얼굴이 보였다. 검은 턱수염이 수북하였고, 나이는 다소 5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사내였다. 차에 앉아있었으나 한눈에 봐도 그의 체격은 다소 다부진 편으로 씨름 선수라고 해도 믿길 만큼 커다랬다. 남자는 그 기세에 눌려 잠시 움찔거렸다.
“하하 이 시간에 난 또 짐승인 줄 알. 놀라게 했다면 미안하게 됐어요.”
잠시동안의 둘 사이의 침묵을 깨고 굵직한 남자의 음성이 커다란 음악소리와 함께 호탕하게 들려왔다.  
“아..”
남자는 아까의 욕한 기세와는 달리 그의 위세에 눌려 다소 긴장한 듯 조그마한 목소리로 답을 하였다.
“네? 뭐라고요? 잘 안 들려…”
운전대의 남자는 뒤늦게 깨달은 듯하던 말을 멈추고 오디오의 볼륨을 낮췄다. 음악이 멈추자 더욱 커다란 적막감이 그들 사이를 휘감았다.
“타세요. 태워드릴게.”
큰 체격의 남자는 아까 전처럼 고요한 가운데 반말인지 존대인지 애매하게 말을 먼저 내뱉었다. 그 말을 들으며 서 있던 그는 조금 망설였다.
‘택시라고는 하지만 뭔가 좀 싸한데? 하아 그래도 이걸 안 타면 더 이상 차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의 내적 갈등을 읽기라도 한 듯 운전대의 남자는 커다란 팔을 뻗어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하하하 뭘 그리 망설이쇼? 같은 남자끼리 내가 뭔 짓이라도 하게?”
열린 문을 잠시 바라보던 바깥의 남자는 이내 몸을 차에 실었다.
‘그래. 나도 남자인데. 뭔가 있겠어? 그리고 택시이니깐’
문이 닫히자 이윽고 차는 다시 출발하였다. 울퉁불퉁한 길임에도 차의 속도는 꽤 빨라서 인지 울렁울렁거렸다.
“아니 왜. 이 시간에 이런 장소에 있었을까? 내가 안 지나갔으면 큰일 날 뻔했겠소”
“아니.. 뭐. 어쩌다 보니.”
덩치의 남자의 급작스러운 질문에 조수석의 남자는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애매한 답변을 했다. 그러나 뭐. 그 자체로도 사실이긴 하였다. 당최 알 수 없는 곳에서 깨어났고, 그 뒤로 계속 걷기만 했으니.  
그 사이에도 그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택시 안을 둘러보았다. 왼쪽 하단 밑에는 미터기가 켜져 있었고, 그 위로는 꺼진 내비게이션 화면이 보였다. 이윽고 정면을 보자 택시 등록증이 그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꽤 오래된 등록증인 듯 일부가 누렇게 얼룩져 있었고, 사진색이 군데군데 하얗게 바래져 있었다. ‘응 그런데 사진 속 인물이..?” 얼굴 부분은 하얗게 거의 지워져 있었지만 이마와 하얀 백발 남성의 모습이 한눈에 보더라도 운전대의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의구심을 가지려고 할 때, 갑자기 덩치 큰 남자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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