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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상 Sep 29. 2024

#5.사냥

#파노라마 #소설 #사냥 #잔상

그가 의구심을 가지려고 할 때, 갑자기 덩치 큰 남자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어휴. 이 시간에는 나도 무섭더라고. 그런데 좀 전에 여자 손님을 내려주고 온 길이거든? 아니 생각해보슈. 여기서 대략 20분 밖에 안 걸리는 읍내에서 여기 가는 조건으로 내게 10만 원을 준다고 하니 웬 횡재야? 여하튼 그놈의 돈 때문에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얼굴이 새하얘 가지고 빨간 코트까지 입으니 을씨년스럽더라니까. 하하하”
운전대를 잡은 덩치 큰 남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그러고 보니, 그 여자 못 봤수? 그 언저리에 내려준 거 같은데. 응? 응?”
남자는 커다란 손 등으로 조수석의 남자의 어깨를 살며시 툭툭 건드렸다.
“아.. 네.. 저.. 전 못 봤는데.. 아니 그런데 언제 봤다고 나한테 반말이 쇼?”
조수석의 남자는 문득 정신을 차린 듯 그제야 그의 반말이 섞인 말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하하하 기분 언짢게 했다면 미안하게 됐수.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라.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말투가 이렇게 됐지 모유. 카아악 퉤”
덩치 큰 남자는 말 끝에 가래를 끌더니 창문을 열고 밖으로 뱉어 내었다. 잠시 차가운 바람이 차 안을 비집고 들어오며 조수석의 남자의 얼굴에도 닿았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미터기는 안 킬 거요?”
조수석 남자는 그의 급작스러운 사과에 뭔가 이겼다는 성취감에 이번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미터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하. 내 정신 좀봐. 손님 아니었으면 그냥 무상 운전 할 뻔했네. 하하하”
운전대 남자는 큰 소리로 다시 웃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미터기를 켜지 않은 채 앞만 바라본 채 운전을 하였다.
“아니 왜…”
조수석의 남자는 또다시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을 꺼내려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 자연스럽지 않은 것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예민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러나 운전대의 남자는 의외의 말을 꺼내었다.
“그런데 당신 돈은 있수?”
흠칫 조수석의 남자는 놀랐다. 맨 처음 의식이 돌아온 후, 도무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기에 그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주섬주섬 뒤져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운전대의 남자는 이어서 또 예측할 수 없던 말을 꺼내었다.
“하긴 뭐. 기억이나 하겠어? 자기가 누구인지? 하하하”
“뭐라고?  지금 방금 뭐라고 말했어?”


"기억을 못하다니? 넌 정체가 뭐야?"
조수석의 남자는 울화가 치밀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운전석의 남자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잠시 한 템포 말을 늦추더니 이윽고 고개를 돌려 의미심장하게 조수석의 남자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 내려준 여자는 어떻게 한 거야?”
그 말과 끝나는 동시에 운전대의 남자가 오른 팔로 아까 전처럼 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캄캄한 뇌 한가운데에서 번쩍 빛이 들어오며 희미했던 기억의 한 단편이 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어느새 그 자동차 안에서 운전대의 남자와 그의 조수석 위치가 바뀌며 그의 손에 운전대가 잡혀 있었다.
혼란스러워하는 그의 옆에서 좀 전까지 운전대를 잡았던 덩치 큰 남자가 옆에서 말을 이었다.
“워워. 운전 똑바로 해. 저기 저 앞에 있네. 아까 그 여자 고객”
덩치 큰 남자가 손가락을 뻗어 가리키는 앞을 보니 아까 그가 지나왔던 버스정류소가 보였다. 본 그대로 이미 고장 나버린 전광판 아래로 빨간 코트를 입고 긴 검은 생머리를 하고 있던 한 여자가 서있었다. 점점 더 선명해지는 기억 속으로 남자는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기 시작하였다.
‘저.. 저 썅년이..’

“넌 처음부터 그냥 순수히 그녀를 태워줄 생각은 없었지. 그러면서 세상에서 가장 천진난만한 미소를 내보이며 그녀에게 타라고 손짓한 거야”
조수석의 덩치 큰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을 하였다. 혼란스러움에 운전대를 잡던 남자는 브레이크를 밟고 그의 면상을 갈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도무지 그의 몸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은 채 덩치 큰 남자의 마치 손 끝의 실에 이끌려 움직이는 인형처럼 움직여질 뿐이었다.
“그녀는 무섭기는 했지만 택시라서 그나마 괜찮겠지 하고 탄 거야. 그녀는 고장 난 버스 전광판과 음산하고 고요한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거든. 사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도시와 단절된 이곳을 떠나고 싶어 했어. 버스 한 대로 읍내와 마을을 이어주는 이 초라한 곳을 말이지. 그리고 마침내 근처 도시에 직장을 얻으며 뜨게 된 거야. 뛸 듯이 기뻐했지. 그리고 오랜만에 이곳으로 첫 월급을 받고 부모님께 달려간 날이었거든.”
남자는 안간힘을 쓰며 브레이크를 밟고 차 밖으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느새 버스정류소에 있던 여자는 사라졌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그녀를 찾던 순간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앉아있는 그녀와 눈빛을 마주하였다.
‘헉.. 어… 언제 탄 거야?’
남자는 놀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비명조차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말없이 뒤에 앉은 채 그와 눈을 마주쳤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이마와 커다란 눈동자가 보였다. 뾰족한 턱선임과 약간 진한 아이라인과 대비되는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색의 대조가 그의 뒤통수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사이 달 빛에 살짝 그녀의 입가가 보였는데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너는 너의 살인 욕구를 주체하지 못한 거지. 아니 어떻게 그냥 넘어가겠어. 밤만 되면 사람이 잘 안 다니는 이곳에 그것도 저렇게 가냘프고 예쁜 먹잇감이 뒷좌석에 앉았는데!”
덩치 큰 남자는 흥분한 듯 말을 이어나갔다.
“게다 살인의 행적을 감추기 위한 장소로 그곳이 얼마나 훌륭한지 넌 이미 알고 있었지. 그곳에만 네 그 살인의 취미로 묻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 하하 안 그래?”

“그렇게 넌 네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장소에 차를 세웠지. 모순 적이 게도 그녀에겐 가장 공포스러웠던 장소였을텐데 말이야. 그런데 너무 방심한 건가? 늘 너와 나란히 걷던 죽음이 이번엔 너를 향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푹! 소리와 함께 너의 옆구리로 칼이 꽂혔지.”
그의 말과 동시에 이상하리 만큼  그의 옆구리가 쑤셔오기 시작하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먼저 쑤신 옆구리에 손을 갖다 대었다. 딱딱한 뭔가가 그의 옆구리에 꽂혀있는 게 만져졌다. 또한 그 사이로 촉촉하고 따뜻한 뭔가가 새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자 어느새 기다란 과도 칼이 그의 옆구리에 꽂혀 그사이로 검붉은 피가 솟아 나오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그는 뒷좌석의 그녀를 노려보았다. 두려움에 거친 숨소리를 내뱉고 있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안 그래도 하얗던 얼굴이 창백해져 더욱 희게 보였다. 그녀는 황급히 뒷문을 열고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 역시 그녀를 쫓아가기 위해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그때 다시 옆자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하필 너는 상대를 잘 못 고른 거야. 그녀는 그 지긋지긋한 동네에 수십 년을 살면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을 이미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돌렸거든.”
덩치 큰 남자는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잠시 말을 끊으며 키득거렸다. 이윽고 운전대의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귓가에 속사였다.
“말했잖아. 이 동네가 지긋지긋할 정도로 그녀가 자라온 동네라고.” 그와 동시에 또 다른 뭔가가 번쩍이며 그의 머릿속이 밝아오는 게 느껴졌다. 체육복을 입고 있던 대략 14살 정도로 보이는 앳된 그 자신이었다.  마치 달리기 시합을 하듯 그는 주먹을 꽉 쥔 채로 허리를 앞으로 살며시 숙이고 있었다.

‘왜 갑자기 이런 쓸데없는 게 떠올라? 썅..’
남자는 기억을 털어내듯 그의 어깨에 올린 덩치 큰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문을 열었다.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씨.. 씨발년 죽여 버릴 거야.. 헉헉”
그녀를 쫓아 남자는 달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누군가 그의 옆구리를 잡아당기듯 통증으로 평상시 보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시커먼 밭으로 달리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둔덕으로 인해 그의 통증이 더 크게 느껴지고 있었다. 정말 그의 말대로 그녀는 이곳에서 마치 군사 훈련을 받아온 듯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도망을 너무도 잘 가고 있었다.
‘헉헉.. 아.. 안돼.. 지금까지.. 다.. 단.. 한 번도...’
갈수록 그의 달리는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또한 점점 앞이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택시에서 내리기 전 떠올랐던 기억 하나가 다시 그의 머릿속에서 다시 재현되고 있었다.
운동장 한 복판에서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운동회 날이었는지 체육복을 입고 있는 또래의 아이들이 그를 향해 응원을 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의 끝에는 한 남자가 오른손에 화약총을 쥔 채로 비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손을 위로 뻗고 있었다. 그의 옆으로는 3명 정도의 다른 아이들이 마찬가지로 굳게 다문 입술로 달리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탕’ 소리와 함께 화약총 입구에서 연구가 뿜어졌고, 일제히 모두 달리기 시작하였다.
‘헉.. 헉.. 참 이 순간에 별의별 기억이 다 떠오르네..”  
그제야 그는 떠올랐다. 학창 시절 100m를 13초 내에 끊던 달리기 선수. 학교에서도 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고등학생 때는 육상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 헉... 난 촉망받던 달리기 선수였다고. 너.. 너 같은 조.. 좆밥 같은 년 하나는... 좇도 아니라고.. 헉..’
그는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옆구리의 통증도 어느새 잊히는 듯하였다. 조금씩 도망가던 여자와 거리가 좁혀지는 듯하여 그녀의 등으로 오른손을 뻗어보았다. ‘조금만 더!’  남자는 안간힘을 써 속도를 내어 다시 한번 손을 뻗어보았다. 그녀의 등이 닿는 느낌이 나자 살짝 힘을 주어 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힘없이 나동그라졌다. 그 역시 달리던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그녀의 몸에 걸려 함께 넘어졌다.
“허억허억.. 너.. 넌 이제 뒤졌어.. 조.., 굉장히 아프네” 남자는 넘어지며 찢어질 듯한 옆구리 통증을 느꼈으나 그녀를 잡았다는 쾌감에 웃음 지었다. 그는 일어나는 시간도 아까워 네 발로 기어 누워 자빠져 있는 그녀의 위로 올라타려고 하였다. 거친 호흡과 함께 그녀의 얼굴은 땀과 공포로 뒤범벅이 되어있었다.
“헉.. 그러니깐 얌전히 있었으면 곱게 뒤지기라도 했지.. 헉. 이 쌰.. 썅년이”
그는 그녀에게 올라타며 얼굴을 가격하려 주먹을 번쩍 들었다. 그 순간 묵직한 뭔가가 그의 얼굴을 가격하였다. ‘퍽’ 소리와 함께 그가 옆으로 넘어졌다. 언제 들고 있었는지 여자의 손에 묵직한 돌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커다란 비명과 함께 머리를 감쌌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가 그에게 올라타 그의 손등 위로 돌을 찍어 내렸다. 남자는 고통으로 손을 잠시 내리자 다시 한번 묵직한 돌이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캬아.. 천하의 우리 연쇄살인마 정두영 님께서 오늘이 본인의 제삿날인 것을 몰랐다” 택시에 함께 있었던 덩치 큰 남자였다. 여자에게 공격을 받고 있던 남자는 반항할 힘 마저 잃은 채 힘없이 덩치 큰 남자 쪽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잔뜩 흥분한 그녀의 공격이 거듭될수록 그는 의식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후후 참 많이도 죽였다. 그렇지?”
덩치 큰 남자가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살짝 어루만지자 그의 머릿속이 밝아오는 게 느껴졌다. 순간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일들이 파라노마처럼 ‘휙휙’ 스쳐 지나갔다.
피 묻은 그의 칼 끝 아래 수많은 여성과 노인들이 시퍼렇게 눈도 감지 못 한채 죽어있었다.
“허억허억..” 남자는 순식간에 몰려드는 기억의 태풍에 날아갈 듯 그의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그래. 넌 세기의 연쇄 살인마 정두영. 대한민국에서 유례없던 78명의 살인을 저지른 극악무도한… 개새 끼지.”
“헉… 넌…?”
“난 오늘 너의 마지막 숨을 거두고자 온…”
잠시 남자는 말을 끊고 그를 바라보았다.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정두영은 두려운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또 다른 개새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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