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무환
오늘(일요일)은 강의가 잡혔던 날이다. 그런데 주최 측의 사정으로 연기됐다. 그 소식을 듣고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막힌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일주일 동안 강의 준비에 대한 부담감이 나를 누르고 있었나 보다. 만약 강의가 취소되지 않고 예정대로 진행했다면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긴장감과 부산함으로 보내야 했을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나는 강의 스타일이 아닌 듯하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내성적 성격인 내겐 정말 공포와도 같다. 정작 강의를 시작할 때는 그리 긴장되거나 떨리지 않는다. 준비 기간이 내 목을 조여 온다. 온갖 부정적 생각들이 나를 엄습해 온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보다는 부족한 모습들만 새록새록 떠오른다. 신기하다. 나에 대한 신뢰가 없는 탓인가.
축구 경기를 할 때도 그렇다. 골대 앞에 서 있다가 내게 공이 오면 평정심을 잃는다. 차분하게 골대를 보고 강하게 차 넣으면 골인인 것을 엉뚱한 방향으로 차버린다. 때론 헛발질한다. 이 또한 골을 넣지 못할 거라는 부정적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인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부정적 생각이 드는 것은 그만큼 준비성이 부족해서 오는 자신감의 결여인듯하다. 강의 준비를 철저히 했다면 떨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골대 앞에서 골을 넣는 연습을 열심히 했다면 정확하게 찼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나에겐 부정적 유전자가 깔린 듯하다. 예를 들어서 경찰서에 내게 전화가 왔다. 그런데 먼저 든 생각은 ‘혹시 내가 잘못한 게 있나?’를 먼저 떠올린다. 칭찬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직장 상사가 나를 부를 때도 잘못 한 것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 또한 평소 긍정적 마인드를 훈련하지 못한 준비성의 부족인 듯하다. 내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뇌 구조는 긍정으로 바뀌어 버린다. 이것을 통증학에서는 ‘문조절설(gate control theory)’이라고 한다. 즉 뇌로 들어오는 문은 하나밖에 없어서 가장 급하거나 자주 들어오는 자극 먼저 처리한다. 그래서 빠른 통증과 둔한 통증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냄새에 대한 자극도 그렇다. 식당에 가서 음식 냄새가 옷에 배면 향수를 뿌리는데 이 또한 향수가 음식 냄새보다 더 자극이 새기 때문에 코의 감각은 향수 냄새만 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긍정적 생각과 부정적 생각 또한 뇌가 처리하기 때문에 일리가 있다.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은 초치는 얘기를 할 때 주로 쓰인다. 이러한 표현을 습관적으로 유발하는 사람이 있다. 문조절설에 입각하면 부정적 뇌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이사를 준비 중이다. 현재는 월세로 살고 있다. 이사 갈 집은 사서 들어간다. 현재 가진 돈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다행히 계약금의 10%는 마련했다.
앞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현실적으로 아주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부정적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늘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려고 한다. 긍정의 힘으로 말이다. 기도는 필수.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은 참으로 새겨둘 만하다. 평소에 준비가 철저하면 근심, 즉 부정적 생각은 없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강의에 준비를 철저히 하여 모든 부정적 생각들을 떨쳐 버려야겠다.
김성운 작가의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