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 쓰기 내려놓음

내적 치유를 위한 글쓰기

by 피트니스 큐레이터

벌써 1월이 다 갔다. 20대 때에는 세월이 천천히 가더니 30대 때에는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히 흘러갔다. 그런데 40대 중반에 접어서니 세월이 화살처럼 지나간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요즘의 삶을 들여다보면 더욱더 그렇다. 바쁘게 사는 건 잘살고 있다는 방증일까?

신문을 보면 정말 정치, 경제가 혼돈 그 자체이다. 국제 정세도 불안한 상태다.

그런데 나는 일하느라 정신없이 살고 있다. 마치 일제 강점기 때 시가 잘 써진다는 아이러니를 호소한 윤동주 시인처럼 말이다.


‘제로 썸’이라는 경제 용어는 삶 속에 적용되는 것이 참 많다. 모든 것이 극단으로 치우치면 곤란한데 덜도 더도 아닌 한가위만 같은 상태는 요원하기만 하다.

내 삶도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일이 많을 땐 글 쓸 시간이 없어서 글이 부박하기 그지없고, 일이 없을 땐 글 쓸 시간이 많아져 술술 써진다. 일필휘지의 문장가 저리 가라다. 책 한 권 낸 것도 일이 없어서 가능했다.

현재 내 글은 형편없다. 이러다가 글쓰기 열정이 사라져서 아예 글을 쓰고 싶지 않은 상태로 전락할까 심히 걱정된다. 그나마 틈틈이 쓰고 있는 일기(?)는 글쓰기 생명을 근근이 연장하고 있는 마지노선과 같다.


툭 까놓고 얘기하면, 내게 글쓰기 재능은 그다지 탁월한 것은 아닌 듯하다. 글을 써 보면 느낄 수 있다. 주변 사람은 잘 쓴다고 부추기지만, 가장 진실하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듣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아내는 늘 내게 글쓰기 재능은 없는 듯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쓰는 걸 보면 글쓰기를 정말 좋아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칭찬인지 악담인지 잘 모를 듯한 안개 화법을 구사한다.

글쓰기만큼은 ‘양적 축적이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스피노자의 말은 들어맞지 않는 듯하다. 약간의 스킬은 생길 듯하다. 패턴이 형성되어 어렵지 않게 쓸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단어를 선정하거나 표현하는 감각은 넘사벽(넘지 못할 사차원의 벽)에 좌절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마음먹은 방법이 있다. 내려놓음이다. 잘 쓰려고,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글을 써서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글을 통한 내적 치유의 자기만족에 집중하는 것이다. 멋진 옷을 사고 화장을 하고 운동을 하는 것이 남의 시선을 위한 행위도 있지만, 자기만족과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누구든지 자신의 글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그저 불쏘시개로 사용되기를 바라지는 않겠지만, 세상의 인정을 위해 글을 쓴다면 그처럼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을 듯하다.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내 방식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글쓰기도 그렇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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