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트니스 큐레이터 Feb 12. 2021

나는 없고 아내는 있는 것

이번 설 명절은 양가 부모님 댁을 방문하는 것은 생략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라고 허락받았다. 코로나 19 방역에 동참하는 의미로 우리 가족은 설 연휴 기간 방구석 휴식을 하기로 의견을 일치시켰다. 휴식을 위해 빠질 수 없는 것이 먹거리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인천에 있는 한 대형 마트에 갔다.


오픈이 10시라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런데 마트 주차장 주변을 도착하니 벌써 즐비하게 늘어선 차량 행렬에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아내는 “아! 모두가 같은 마음이구나” 하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한 시간 안팎의 기다림이 있었고 우린 무사히 마트 매장 안으로 입성했다. 오픈 한 지 30분도 안 됐는데 사람과 카트로 정체가 심했다.

나는 언제부턴가 이런 상황에 놓이면 아무 생각이 안 나면서 약한 현기증 증세가 나타나곤 했다. 오늘도 여전히 그런 증세가 약하게 보였다. 하지만 아내는 나와는 완전 달랐다. 총기 어린 눈과 일사불란한 방향 감각으로 원하는 물건을 쓸어 담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행동은 마트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로 운집해 있는 강의장 안에서 발표를 하려고 강단에 서면 예외 없이 머리가 하얘지고 머리가 빙빙 도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는 말도 버벅거리며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인다. 다행히도 강의 중간쯤 되면 그런 증상은 사라져서 준비한 내용을 다 소화해 내고 내려오긴 한다.



아내는 나와 같은 증상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되레 더 힘차고 편안하게 대중 앞에 선다. 말과 제스처도 리듬을 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청중을 사로잡는다.

이런 행동의 차이는 왜 나타나는 걸까? 유전적 성향과 관계가 있는 것인가?


다행히도 내가 하는 일은 많은 사람을 한 번에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1대 1 아니면 소그룹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소수정예는 강하다는 것이다. 전혀 망설임이나 불안함이 없다. 아내는 사람이 많건 적건 간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같이 살면서 따로 훈련하는 모습은 전혀 보지 못했다. 정말 타고난 기질이 있긴 있나 보다. 그런 아내가 부럽고 나는 복 받았다.


설 연휴 첫날 무계획 속에서 몸과 영혼을 살찌우는 소리를 들으며 보냈다. 내일도 오늘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