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무지개 색을 찾자
‘동주’라는 영화에서 정지용 시인은 윤동주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자넨 시인이군, 이봐! 윤 시인”
동주는 시를 쓰고도 발표하지 않았다. 자신의 글에 대해서 자신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평소에 정지용 시인을 존경했고 그와 같이 좋은 시를 쓰고 싶은 갈망이 컸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찾게 된 정지용 시인에게 듣게 된 한마디, ‘윤시인’
“강하고 설득력 있는 필체를 가지셨어요. 저보다 훨씬 멋진 글을 쓰실 겁니다.”
내가 존경하는 블로그 지인이 내린 내 글에 대한 한줄 평이다.
자신만의 문체를 갖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이렇게 작가가 내 글에 대해서 말해 주다니... 기분이 좋다. 다른 사람의 평에 대해서 민감한 나로선 정말 힘이 나는 말이다.
5년간 시간의 시련을 이겨내면서 오롯이 글을 써 왔다. ‘작가는 아침에 글을 쓰는 사람이다’라는 글쓰기의 거장 ‘나탈리 골드버그’의 글을 접하고는 그 어떤 내, 외적인 검열에 대해서 셔터 문을 내리고 내 글을 쓰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14년차 본업인 트레이닝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내 색깔의 무지개를 찾지 못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색으로만 그림을 그리려고만 한다.
혹여나 그 색이 아닌 다른 것으로 그리려면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림을 망칠까봐...
많은 곳에서 세미나와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다. 다년간 연구하고 공부한 트레이닝 방법과 새로운 이론을 사람들에게 공표하고, 자신의 트레이닝에 대한 바운더리를 세우려고 한다.
그들의 열정과 용기를 배우고 싶다.
아마도 내겐 스스로에 대한 용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듯하다. 남에게 어떻게 보여 질지에 대한 평가 말이다. 나보다 더 샌 트레이너가 보는 내 트레이닝의 질적인 구성력에 대해서 걱정이 많다.
그런데 <나는 더 이상 착하게만 살지 않기로 했다. /이와이도시노리>의 책에서 그 해답을 찾은 듯하다.
“그래! 맞다, 나는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이다.”
모두에게 혹평보다는 호평을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선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두의 호감을 산다는 것은 환상이고, 마찬가지로 모두의 미움을 받고 있다는 것도 망상에 불과하다. 당신이 ‘좋은 사람 콤플렉스’를 내려놓는 순간,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행복하고 효율적인 삶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를 하는 것처럼 내가 세운 검열에 대해서 셔터 문을 내리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먼 훗날 좋아하고 존경하는 트레이너의 고수가 “트레이닝 참 단순하면서도 물 흐르듯 잘하네”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아마도 윤동주가 느꼈던 그 마음일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