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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새내기

26살에 맞는 대학 생활

by 피트니스 큐레이터

1999년에 맞는 26살 대학 초년생


26살에 대학 1학년이 되었다. 재수 안 하고 들어왔다면 7년 전에 새내기였을 텐데 나와 같은 나이의 선배들이 지금은 능글맞은 대선배가 되어 나를 갈군다. 군대 제대한 지 몇 년 안 됐는데 대학에 들어오니 먼저 군대 갔다 온 예비역들이 군대 흉내를 내고 있다. 서럽고 기가 안 차서 짜증이 났다. 힘들게 들어온 대학인데 못돼 먹은 예비역 학생회에서 나를 하급생 취급하다니……. 그들과 함께 학력고사도 치르고 김민우의 입영 열차를 불렀던 나를 개 무시하고 반말과 욕지거리 그리고 AT(animal training)라는 단체 기합까지 강요했다. 그래도 99학번 동기들은 나를 큰 형님이라 칭하면서 살갑게 대해주었다. 그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동기의 행동이 떠오른다. 그 사건은 힘들 뻔했던 대학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큰 힘이 되었다.


잊지 못할 AT

여느 때와 같이 우린 정규적으로 받는 AT에 집합했다. 한 명의 열외 자가 생기면 열외 자가 없을 때까지 모였다. 운동장에 집합한 우리에게 한 선배가 몽둥이를 손에 쥐고 크게 외친다. “99학번이면 나이가 많건 간에 모두 동기다. 그러니 동기끼리는 존댓말을 하면 안 된다.” 그러면서 나를 비롯한 몇 명을 지목하더니 전원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그러면서 일일이 물어본다. “얘네들을 너는 뭐라 부르냐?” 하면서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하는 마음으로 말한 것을 나는 다 알기에 동기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런데 한 녀석은 끝까지 “형이라 부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한 그 동기는 사정없이 몽둥이로 허벅지를 맞았다. 그러나 계속 굽히질 않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는데 뭐가 잘못입니까”라고 대들듯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나를 감동케 한다. “저는 위로 형이 둘입니다. 그런데 성운이 형은 저의 형보다 나이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반말을 합니까? 저는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후로 AT의 강도는 더 심해졌다. 그러나 왠지 모를 끈끈한 유대감으로 똘똘 뭉쳐서 우리는 기꺼이 얼차려를 받아냈다. 선배들의 의도가 완전히 빗나간 사건이 되고 말았다. 그날 이후 그 친구는 선배들에게 몇 차례 가혹 행위를 받았지만 꿋꿋이 잘 이겨내고 무사히 졸업했다.


대학은 이처럼 늙은이들에겐 환영받지 못하는 단체다. 그래서 대부분 같이 어울리지 못하고 아웃사이더가 되어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학과에서는 늦깎이 대학생은 부적응자지만, 동아리에서는 굴곡 많은 노익장으로써 환영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나와 연배가 같은 선배들도 존대하면서 깎듯이 대우해 주었다. 그래서 더욱더 동아리 활동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대학교 3학년 때는 동아리 대표가 되어 대외적인 행사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기까지 했다. 더욱이 동아리 활동과 함께 나는 학과 공부에도 열심히 했다.

그렇게 1999년도에 입학한 26살 대학 초년생은 굴곡 많은 대학 생활을 보내고 간신히 졸업하게 되었다.




최근에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라는 강연 프로에서 ‘보이스 컨설턴트’로 유명한 김창옥 교수의 책을 읽게 되었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책 제목이 영화 ‘아바타’에서 나오는 대사와 같아서 읽게 됐는데, 책의 내용 중에 대학을 입학한 과정이 나와 비슷하여 흥미로웠다.


저자는 두 번의 대학 실패로 도피하다시피 해병대로 자원하여 입대하였고 제대 후 다시 대학시험을 쳐서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이 분 진짜 재밌게 강의를 잘 하신다


나 또한 삼수를 하였지만 대학 문을 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군대에 끌려가다시피 입대하게 되었다. 남들은 얼마나 좋은 대학을 가려고 삼수까지 하느냐고 묻지만, 실상은 갈 수 있는 대학이 없어서 못 갔다. 그렇게 제대 후 1년간의 와신상담의 시간이 지난 후에 대학이라는 문턱을 넘게 되었다.

또한, 이 책의 특징은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꾸밈없고 진솔하게 마치 옆의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써 내려갔다. 하지만 삶의 지혜를 느낄 수 있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실제적인 가르침이 녹여져 있다.


어디든 늦깎이 인생들은 존재한다. 늦게 시작한 이유도 각기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남들보다 늦은 만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열정 면에서는 그들을 따를 수 없다. 내공이 크다. 그러한 그들에게 먼저 왔다고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게 얼마나 유치한 짓인가.




김성운 작가의 책 소개입니다.

http://m.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blio.bid=12485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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