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를 마주할 용기
2차 세계대전은 전인류의 큰 상처이자 아픔이다. 사실 어떤 전쟁에 있어서 우리는 대부분 피해자의 입장을 공감하게 되는 적이 많은 것 같다. 내가 남에게 가해를 가한 기억보다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기억이 더 크게 남는 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가해자는 악당이고 피해자는 선량한 사람이라는 프레임도 작용을 한다. 대개 피해자는 동정의 대상이고 가해자는 징벌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어떤 갈등이나 정쟁을 볼 때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적이 많은 것 같다.
또 역사적으로도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식민지배를 당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특히 2차 세계대전에 관해서는 우리는 우리가 꼭 피해자 대표 같은 심정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우리 모두가 늘 피해자의 입장만 겪었을까? 베트남의 한국 교민으로 살고 있는 지금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인들이 베트남 사람들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듣게 된다. 베트남 여러 곳에 한국인에 대한 증오비가 세워져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일본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왜 베트남전에 참전해서 미군이 베트남 국민을 괴롭히는데 앞장을 섰는지 모르겠다. 지금 남한이 베트남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더 발전한 밑바탕에는 베트남전에 참여한 대가로 받은 보상금의 역할도 있다고 한다.
베트남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으로서 노라 크루크라는 독일출신 작가가 가해자의 입장으로 써 내려간 <나는 독일입니다>라는 책이 왠지 눈길을 끌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복잡하게 얼룩진 현대사를 가진 한국인으로서는 피해자의 입장도, 가해자의 입장도 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라 크루크가 쓴 <나는 독일입니다>는 산문으로 쓴 책이 아니라 그림, 사진, 신문기사, 삽화 등을 그리고 오래 붙여 스크랩 형식으로 엮은 독특한 느낌의 그래픽 노블다. 한 독일인이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치에 얼마큼 부역했고, 유대인과는 어떤 사이였는지, 그 시대를 통과하며 나의 조상들이 과연 어떤 감정과 정신을 가졌었는지, 그리고 그에 관해 저자 자신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고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책의 첫번째 장면은 노라 크루크가 뉴욕으로 건너갔을 때 강제수용소의 생존자를 만난 순간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직접 저지른 일은 아니었지만 강제수용소에서 16번이나 가스실에 갈 뻔한 순간을 모면한 유대인과 대화를 해야 하는 독일인의 입장이 참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작가는 전후 2세대 독일인으로 자라며 아우슈비츠 교육이라고 불리는 과거청산 교육을 받은 최초의 세대이기도 하다.
작가는 치열하게 과거를 추적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조각조각 찾아낸다. 작가의 외할아버지는 나치 당원이었던 적이 있고 큰 삼촌은 나치쪽으로 참여한 전쟁에서 전사했다. 작가의 친할머니는 서독 친공산주의당에 입당해 주 대표로 출마를 한 적이 있다. 작가는 과거 여행에서 만난 외할아버지 유대인 친구의 아들에게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죄의식을 가지지 말라고…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작가의 복잡한 심경이 산만한 스크랩으로 꾸며진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작가와 함께 과거 여행을 하며 나 역시 혼란스럽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만큼 생각의 크기는 커진 것 같다. 베트남에서 살고 있는 한국 교민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