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탄력성
조벽 교수님의 강의 중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이 행복의 설정치에 관한 부분이다. 사람마다 평상시 감정상태가 있는데 그것을 행복의 설정치라고 한다. 평상시 감정상태가 편안하고 만족스럽고 긍정적인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행복의 설정치가 높은 사람이다. 평상시 감정상태가 불안하고 우울하고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행복의 설정치가 낮은 사람이다.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평상시 감정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어 한껏 기분이 고조되고 행복감을 맛본다고 하더라고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원래 자기 자신의 평상시 감정상태로 돌아온다고 한다. 반대로 행복의 설정치가 높은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몸이 다치고 그로 인해 우울하고 좌절감에 빠진다 하더라도 역시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원래 자기의 평상시 감정상태로 또 돌아온다는 것이다. 다양한 경우가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좋은 일을 겪든 나쁜 일을 겪든 원래 자기가 가지고 있던 평상시 감정상태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1년이라고 한다. 결국 행복에는 외부의 조건이나 상태도 어느 정도 영향은 미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가지고 있던 평상시 감정상태로 누구나 돌아오기 때문에 행복의 조건에는 외부 상황보다 자신의 내적 상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조벽 교수님은 내 아이를 행복의 설정치가 높은 아이로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앞으로의 미래는 예측하기가 불가능한 시대이다. 예전에는 할아버지가 하던 일을 아버지가 했고 아버지가 하던 일을 자식이 물려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어떻게 준비를 하면 미래를 대비할 수 있겠다는 것들이 어느 정도는 예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 지금 4차 산업혁명의 입구에 서 있는 우리는 앞으로의 미래를 예측할 수가 없다. 이런 현실에서 아이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원래 내적 상태가 행복한 아이, 그래서 어떤 변화나 역경에도 잘 적응하고 이겨낼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행복의 설정치가 높은 아이는 다른 말로 ‘회복탄력성이 높은 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미래 사회에 적응하려면 이렇게 회복탄력성이 높은 아이가 유리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의 설정치가 높은 아이로 키울까? 가장 좋은 방법은 엄마가 행복한 것이다. 긍정적이고 마음이 편안한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는 평상시 감정상태가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만약 엄마인 내가 평상시에 자주 우울하거나 짜증이 많이 난다면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 평상시 감정상태를 조정해야 한다. 평상시 부정적인 정서를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이 행복일기를 쓰는 것이다. 매일 자기 전에 오늘 하루 나의 정서 상태를 체크해보고 안 좋은 일들 가운데서도 다행한 일을 찾아보고 감사한 일을 찾아보고 또 내가 남을 위해 한 작은 선행도 찾아본다. 선행이라고 해서 거창한 일이 아니라 엄마라면 누구나 하는 일상적인 일들, 이를테면 아이한테 식사를 차려주고 옷을 빨아주는 일도 선행에 들어간다. 이렇게 일상에서 감사한 일과 다행한 일을 찾을 수 있고 내가 평소에 하던 일의 가치와 노고를 인정할 수 있게 되면 사람은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의 평상시 감정 상태를 긍정적인 상태로 바꿀 수 있다.
뇌과학을 통해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인간에게 새로운 뇌 회로가 생겨나는 데에는 평균 21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 뇌 회로가 자동화되어서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회로가 작동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약 100일 정도이다. 옛 선조들이 아기를 낳고 산모와 아기가 바깥 외출을 삼가고 최대한 보호를 받았던 날짜가 삼칠일이었는 데에는 이러한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있다. 아기에게 백일상을 차려주고 전설 속 곰이 사람이 되는 데 필요했던 시간이 100일이라는 것도 참 재미있다. 옛날 어른들이 뇌 과학에 대한 연구를 하진 않았어도 경험적으로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는 데에는 백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엄마들도 이러한 과학적인 원리를 새기면서 최소한 100일 동안은 행복일기를 빼먹지 않고 써보는 노력을 하면 좋겠다. 나의 평소 감정 상태가 썩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더더욱 노력을 해봐야 한다. 100일 동안 꾸준히 노력하면 부정적인 내 감정상태를 긍정적인 상태로 바꾸어 행복의 설정치가 높은 엄마가 될 수 있다. 그래야 내 아이도 행복의 설정치가 높은 아이, 미래 사회에 더 잘 적응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
그리고 조금 더 해 볼 수 있는 게 있다면 아이와도 함께 행복일기를 써 볼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아이하고는 숙제처럼 책상에 앉아 글로 쓰지 않고 대화로 행복일기를 써 볼 수 있다.
오늘 하루 가장 좋았던 일은 뭐였어?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말 좋았겠다. 오늘 하루 가장 안 좋았던 일은 뭐였어?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속상했겠다. 누구나 그런 일을 겪는다면 마음이 안 좋지. 그렇지만 그래도 더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야. 힘든 일을 통해서도 배우는 게 있는 법이야. 오늘 하루 감사한 일은 뭐가 있었니? 없었다구? 감사한 일이 없는 날은 없어. 하루 하루 숨쉴 수 있는 공기가 있는 것도 감사하고 이렇게 편안한 잠자리가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인걸.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 투성인 거야. 엄마가 생각하는 우리 아들(딸)의 장점은 건강하다는 거야. 엄마는 네가 건강하게 잘 자라준다는 게 정말 고마워. 잘자. 우리 아가. 사랑해.
엄마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잠드는 아이의 행복의 설정치가 어떻게 맞춰질지 상상해보라. 감정코칭은 어려운 이론이나 복잡한 육아법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이와 엄마가 가까워지는 방법이다. 아주 쉽지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으려면 최소한 100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오늘부터 1일이다.
아이들과 함께 쓰는 행복일기의 실제는 어떨까?
아이들 어릴 때 처음 행복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날부터 아이들과 잠자리에서 하루 일과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매일 뭐가 좋았냐, 뭐가 감사했냐 물어봐도 아이들은 매일 똑같은 대답이다. 놀아서 좋았다. 놀아서 감사하다. 이게 전부다. 아이들이 왜 매일 똑같은 걸 물어보느냐고 묻길래 '잠자기 전에 이런 얘기를 하면 좋은 꿈을 꾼대'라고 말해줬다.
하루는 작은 아이가 진지하게 물었다.
'엄마, 자기 전에 이런 얘기하면 좋은 꿈 꾼다고 누가 그래?'
'어느 박사님이'
'그럼 그 박사님한테 말해줘. 그런 얘기한다고 좋은 꿈 안 꿔.'
'아, 그래? 안 꿔?'
'어. 안 꿔!'
그 날 이후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서 행복일기 쓴다고 같은 질문하는 건 멈췄다....
아이들이 지루하게 느끼고 의미없게 느낀다면 아무리 좋은 것도 소용이 없다는 게 그 날의 깨달음이다. 회복탄력성 높은 아이 만드는 일도 목적이 너무 강조되고 숙제하듯 피상적이 되면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다. 좋은 육아법을 내 일상에 적용할 때는 보다 자연스럽고 티 안나게 적용하는 센스도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