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들은 명절(설, 추석) 때 어떤 술을 선물했을까? 전통주를 명절 선물 세트에 처음 포함시킨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3년 추석에 지리산 복분자주(광주 광산구)를 선물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 지리산 국화주(경남 함양)와 한산 소곡주(충남 서천군), 2005년 이강주(전북 전주시)와 문배주(경기 김포시), 2006년 가야곡왕주(충남 논산시), 2007년 송화백일주(전북 완주군)와 이강주(전북 전주시)를 선물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감자술(강원 평창군)과 제주 오메기술(제주 제주시), 2019년 솔송주(경남 함양)와 소곡주(충남 서천군), 2020년 이강주(전북 전주)와 대잎술(전남 담양군), 2021년 명인 안동소주(경북 안동시)와 청명주(충북 충주시), 2022년 문배주(경기 김포시),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계룡백일주(충남 공주시)를 선물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명절 선물에 술을 넣지 않았다.
국가무형유산인 문배주는 남북 정상회담 만찬 때 건배주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이전에도 문배주는 1991년 한국을 방문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1931∼2022) 구소련 대통령은 만찬 때 사용되었던 문배주 맛에 빠졌다고 한다.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1931∼2007) 전 러시아 대통령과 빌 클린턴(Bill Clinton, 1946∼) 전 미국 대통령, 미야자와 기이치(1919∼2007) 전 일본 총리도 문배주 예찬론자들이었다고 한다. 1992년 옐친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각료 중 한 사람은 문배주를 선물로 못 받아 서운한 감정을 표시하기도 했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안동소주는 1999년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1926∼2022) 영국 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당시, 생일상에 오른 국내 대표 전통주다.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은 1999년 4월 19일부터 22일까지 3박 4일간 한국을 국빈 방문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이 73세 생일을 맞은 4월 21일 하회마을에서 전통 생일상이 차려지기도 했다.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은 담연재에서 안동소주 명인인 고 조옥화(2020년 별세) 여사가 마련한 생일상을 받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생일상에 오른 민속주 안동소주를 마신 뒤 ‘원더풀, 땡큐’로 화답했다고 한다.
농업회사법인 화양(충북 청주시)이 청주시 청원구 풍정리에서 만드는 ‘풍정사계(楓井四季) 춘(春)’은 2017년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1946∼) 미국 대통령 공식 만찬주, 2019년 방한한 필리프(Philippe Leopold Louis Marie, 1960∼) 벨기에 국왕 공식 만찬주로 선정됐다. ‘풍정사계 춘’은 국내산 쌀과 직접 디딘 전통 누룩(향온곡)으로 빚어 100일 이상 숙성한 약주로, 인공 첨가물이 가미되지 않았다. 풍정사계는 춘(약주), 하(과하주), 추(탁주), 동(증류식 소주) 등 풍정(단풍나무 우물)의 자연을 정성껏 담은 맛과 향이 다른 네 가지 술을 출시하고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한한 이방카 트럼프(Ivanka Trump, 1981∼) 백악관 보좌관의 만찬에 한국와인 ‘여포의 꿈(화이트 와인)’이 선정되었다. ‘여포의 꿈’이 생산되는 충북 영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와이너리가 있으며, 훌륭한 와인들이 많아서 한국의 보르도라고 불리고 있다. 이방카 환영 만찬에 오른 여포와인농장의 ‘여포의 꿈’은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Muscat of Alexandria)’라는 포도 품종으로 만들어진 화이트 와인인데, 청포도를 저온에서 숙성해 살굿빛을 띠는 게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는 12%로서 아카시아 꽃 향과 상큼한 복숭아 등 과일 향이 복합적으로 느껴지며 은은한 달콤함이 있는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 칼 빌트 전 스웨덴 총리, 에스코 아호 전 핀란드 총리, 래리 호건 미국 메릴랜드 주지사 등 세계 각국의 VIP를 초청한 가운데 열린 2022년 제23회 세계지식포럼 만찬행사에서는 총 5종의 한국술이 사용됐다. 만찬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건배 제의로 시작되었는데, 건배주로는 갈기산포도농원에서 만든 로제 와인인 ‘또 다른 시선’이 사용되었고, 이후 식사 때는 내올담의 ‘담 골드’, 한영석 발효연구소의 ‘청명주’, 같이양조장의 ‘써머 딜라이트’, 바네하임의 ‘더 라거 마스터스 컬렉션’ 등이 선을 보였다.
이 외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 청와대 공식 만찬주로 사용된 대강양조장의 ‘소백산 생막걸리(충북 단양군)’,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 만찬주와 2008년과 2013년 대통령 취임식 건배주로 사용된 ‘감와인(경북 청도군)’, 2007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사용된 ‘명인 안동소주(경북 안동시)’, 2012년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 만찬주를 시작으로 2018년 평창 패럴림픽 건배주와 2022년 한미 정상회의 건배주로도 사용된 오미나라의 ‘오미로제 결(경북 문경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던 아시아청년대회 사제단 만찬주와 2018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선정된 국가무형유산 ‘면천두견주(충남 당진시)’, 2015년 한∙중∙일 3국 정상 회의 때 공식 만찬주로 사용된 ‘한산 소곡주(충남 서천군)’, 2019년 칠레 정상회담 청와대 만찬주로 지정된 ‘제주 고소리술(제주 서귀포시)’, 2023년 한∙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 공식 만찬주로 사용된 중원당의 ‘청명주(충북 충주시)’ 등이 중요한 국가 행사 때 사용이 되었다.
전재구(한국음료강사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