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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꽃psy Jan 24. 2022

동갑내기 시누이와 나

친하지만, 친하지 않은 사이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는 속담이 있다. 겉으로는 위하여 주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해하고 헐뜯는 사람이 더 밉다는 말이다. 요즘 세상에 때리는 시어머니는 없겠지만 그래도 물리적인 상처가 아닌 심리적인 상처를 내는 고부사이는 여전히 존재하고 고부사이에서 묘한 갈등을 일으키는 시누이의 사례를 현실에서도, 텔레비전에서도 많이 보았다.


내게는 동갑내기 시누이가 있다.

동갑내기 시누이와 친하지만, 친하지 않다. 가족모임에 만나서는 친구처럼 편하게 친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 이야기, 식구들 이야기를 하고 재미있게 웃고 떠들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필요한 일이 아니면 적당한 거리를 잘 유지한다. 우리는 서로 연락도 자주 하지 않고, 특별한 이벤트가 있거나 모임 전에 필요한 이야기를 할 때 정도만 연락을 한다. 아가씨는 내게 하나 있는 시누이로 '엄마에게 잘해라, 오빠에게 잘해라' 하는 등 시누이 노릇을 하지 않는다.

 

남편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우리 시누이는 공부 잘하는 오빠 대신 일찍 생활전선에 들어가 공부하는 오빠에게 학비며, 생활비, 용돈을 대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시누이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


연애시절 한번 남편과 헤어진 적이 있다. 그 때문에 아가씨는 처음에 나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다시 연애를 하며 나와 남자 친구(현 내 남편)와 시누이, 시누이 남자 친구(현 시누이 남편)는 가끔 만나 술을 마시기도 했다. 4명 다 비슷한 또래이기 때문에 대화를 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처음 아가씨를 보았던 날, 나는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남편과 너무 닮은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남매가 이렇게까지 닮을 수가 있는가 유전자의 힘에 놀라웠다. 길을 지나가다가 보아도 "아 저 사람 동생이구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 초기, 어머니와 함께 살며 살림의 '시옷'자도 안 해보던 나는 눈치가 많이 보였다. 첫제사 준비를 하던 날 시할머니께서 아무것도 못하고 동동거리는 내게 말씀하셨다.

"우리 00 이는 음식이고 살림이고 못하는 것이 없는데, 우리 손주 며느리는 아무것도 못해서 언제 배워?"

어릴 때부터 시누이는 손재주가 좋아 못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음식 만드는 것도, 다른 여러 가지 재주가 많다고 했다. 뜨개질도, 머리핀 만드는 것도, 뭔가 액세서리나 소품도 참 예쁘게 만들었다.


명절 포함 제사가 10번 가까이 되는 것을 몇 번 치르게 되니 어느 새부터인가 나도 살림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여전히 손이 작아 음식을 많이 준비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지만 제사도 명절도 손님도 치를 수 있는 주부가 되었다. 시댁 모임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식구가 많이 모이다 보니 식사 준비를 하는 시간도 길고, 다 먹고 치우는 일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보통은 식사 준비를 내가 하는 편이고, 설거지를 시누이가 하는 편이다. 어머니 집이 시골인 관계로 마당에서 정리를 하거나 풀을 뽑거나 해야 하는 경우에 바깥에서 일하는 대신 나는 집안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식사나 새참 준비를 한다. 그럴 경우에도 시누이는 다 먹고 나면 정리나 설거지를 먼저 일어나서 한다. 누가 일을 더 많이 하는지 안 하는지, 굳이 서로 그런 것을 비교하지 않고, 눈치를 보거나 주지 않는다.




얼마 전 어떤 브런치 작가님 글에서 시어머니와 시누이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시댁에 갔을 때, 설거지로 인한 서운함에 대한 글이었다. 시어머니는 설거지는 당연히 며느리, 올케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속상함이었다. 나도 그 글을 읽고 많이 공감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며느리의 노동력에 대한 것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이고, 딸과 며느리를 차별하는 집도 많이 보았고 그런 갈등으로 인한 상담사례도 몇 번 겪었다. 또한, 내 주변 지인들도 그런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곤 한다.


시누이와 동갑내기인지라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한탄, 친구관계 등 서로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며느리로서의 삶, 딸로서의 삶,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에 대해 때로는 친구처럼 솔직하게 터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친구는 아니기에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려 한다.

주말, 오랜만에 시누가 어머니 집이 아닌 우리 집에 왔다. 남편과 함께 셋이 와인을 먹으며 옛날이야기와 아이들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 내가 먼저 술이 취해 버렸다. 술이 약한 나는 취한 줄도 모르고 마시다가 블랙아웃이 되어버렸고, 다음날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과 민망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편안한 동갑내기 시누이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내가 엄청 시댁에 잘하는 며느리가 아니지만 시누이는 내게 '말리는 시누이'가 된 적이 없다.


때로는 반말과 존대어를 같이 쓰는 친하지만 조금은 친하지 않은 사이. 내가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편안하게 나를 올케언니로 대접하고, 내 아이들에게 용돈도 맛있는 것도 잘 사 주는 하나뿐인 좋은 고모. 내 남편에게는 동생이지만 누나처럼 돌봐주었던 든든했던 동생. 홀로 계신 엄마에게 무뚝뚝하지만 배려 깊은 딸이다.  그리고 나는  좋은 시누이에게 많이 감사하며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것을 배운다.

시누이와 함께 갔던 강릉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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