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에서는 내가 그동안 잘 쓰지 않던 근육을 쓰는 동작이 많다. 그나마 선생님께서 자기 몸에 맞게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하시기에 내 몸에 맞게 살살하되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많이 어려운 동작이 아닐지라도 안 쓰던 근육을 쓰게 되면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든다. 6개월 헬스를 하며 힘이 좀 생겼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나는 근육에서는 유아 수준이다. 다른 분들은 나보다는 훨씬 강도 높은 동작을 하시고 버티는 힘도 강해 보였다. 그러나중간중간 거울로 내 자세를 점검하며 다른 분들을 힐끔힐끔 보니 다행히 나 혼자 부들부들 떠는 건 아니었다. 힘든 건 다 마찬가지구나 싶어 내심 안심이 되곤 한다.
몸이 뻣뻣하고 율동을 해도 자연스럽지 않은 몸짓에 '저주받은 관절'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허리를 굽히면 130도 이상 구부러지지지만 70도부터 뒷 오금이 당겨 내려가지 않는 몸이 민망했다. 나의 마디마디 관절이 이상해서 제대로 구부러지는 게 잘 되지 않고왜 난 나이도 어린데 이렇게 몸이 유연하지 않을까 내 저주받은 내 관절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필라테스를 하며 내 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 관절이 문제가 아니라, 근육이 문제라는 것을 느꼈다. 관절은 문제없이 움직이고 있지만, 너무나 타이트해서 늘어나지 않는 나의 근육은 어릴 적부터 기지개 켜는 것조차 잘하지 않던 나의 생활 습관이 계속 누적된 것이다. 원래 구부리기 쉬운, 매번 사용하던 방향으로만 익숙해졌기에 반대 방향으로 늘려주는 것은작은 자극에도 유난히 고통스럽다. 내 몸의 문제는 관절이 아니라 수분이 충분하지 않은 근육과 중력의 방향으로만 익숙한 근육이었다.
30여 년간 거의 매일 사용한 것 중의 하나가 린스였다. 초등학교 때 고등학생인 큰 언니가 사 온 '린스'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이후 두 달여 전까지 린스를 사용했다. 첫 린스를 사용했던 날, 손바닥에 느껴지던 미끄러움! 이런 느낌의 머릿결을 비단결이라고 하는구나 감탄하며 신세계에 눈을 뜬 기분이었다. 그 이후 30여 년간 회사와 브랜드를 바꾸어가며 린스를 사용해왔다.
두 달쯤 전, 머리를 감고 린스를 사용하지 않았다. 약속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재빨리 머리를 감고 바쁜 마음에 린스 사용을 생략했다. 머리카락이 좀 뻣뻣하다고 느꼈으나 그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일단 빨리 말리고 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의외로 다 마른 머리는 평소랑 다를 것이 없었다. 그 날이후 머리를 감을 때 린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머릿결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저 내가 30여 년간 습관적으로 사용해 왔던 패턴대로 린스를 사용하지 않으면 내 머리카락이 뻣뻣한 돼지털 같을 것이라 생각했었나 보다.
생각도 행동도 오랫동안 지속되면 틀이 생긴다. 생각의 틀을 고정관념이라 하고, 행동의 틀을 습관이라 부른다. 그 틀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뇌과학에서는 이럴 경우 시냅스가 강하게 연결되었다고도 표현한다. 강력한 시냅스는 가지치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뇌는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의식이라고 부른다.
의식하고 나니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생겼다.내 관절이 문제가 아니라 근육이 너무 타이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더 이상 내 관절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새로운 시냅스는 좀 더 근육을 늘리려는 신경을 쓸 것이다.
의식하고 나니 머리를 감을 때 샴푸 후, 반드시 린스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요 없는 것을 굳이 해가며 물 낭비, 시간낭비, 환경오염까지 하고 있었다는 반성이 들었다. 이제 나의 의식은 내가 쓸데없이 습관적으로 하고 있던 행동들은 또 뭐가 있을까 찾아볼 것이다.
나를 객관적으로 의식하는 것들이 많아지면 내 뇌의 오류로 인한 생각이나 행동을 수정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수정이 가능해진다.그러면서 조금씩 삶에 변화가 생긴다. 있던 시냅스를 잘라내기보다 새로운 시냅스를 더 강하게 만들어가며 새로운 생각의 길을 만들고 행동의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빠르고 현명한 방법이라 한다.
내 뇌에 생긴 무의식적인 길을 따라가기보다 가끔은 멈추어서 뇌의 길을 의식하고, 더 좋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의식하는 것이 많아지면 오해하는 것은 줄어들고 이해하는 것은 많아질 것이며,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은 줄어들고 필요한 것을 소비하는 지혜는 늘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