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밖에 모르던 아이가 친구들과 노느라 잊었는지 하교 후 전화가 없었다. 두어 번 연결 끝에 통화가 되어 나는 학교에서 친구는 사귀었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준비물은 없는지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 많은데, 아들은 친구들과 놀아야 한다고 빨리 끊어야 한다고 한다.
함께 계시던 지인들은 두 분 다 아이들이 많이 커서 직장, 대학, 고등학교 기숙사로 다 떠나고 집에는 부부만 남은 상황이다. 방에서 게임만 하던 아들을 볼 때는 속이 터지고 얼른 기숙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다 떠나고 나니 겨우 하루 만에 울컥하셨다고 했다. 아이들과 매일 씨름하고 지낼 때는 얼른 커서 다 독립하고 자유롭게 공부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고 싶었는데 막상 매일 아이를 볼 수 없게 되니 허한 마음이 생각보다 크다고 하신다.
아직 난 그 시기까지 몇 년 더 남았고, 신경 쓰이고 손이 가는 상황이 많다. 아직도 아이들은 아빠가 옆에 있어도 엄마만 불러댄다. 가끔 아빠를 부르는 건
"아빠! 엄마 어딨어?"
를 물어보기 위함이다. 어떤 날은 하도 엄마를 불러대기에 <엄마 부르기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랬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이 아이가 엄마보다 친구랑 노는 것을 더 재미있어한다. 그리고 어쩌면 조만간 엄마의 과한 관심이 귀찮아지고,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방문을 닫는 일이 빈번해질 것이다. 자연스럽게 커가는 상황임에도 그 시기가 오면 꽤 서운해질 것 같다.
중학생이 된 딸아이는 이제 엄마랑 뽀뽀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다. 가끔 마음이 통한 날에는 뽀뽀도 하지만 아기 때의 느낌과는 다르다. 아들은 둘째라는 특성이 있어서 그런지 누나보다는 좀 더 특유의 사랑스러움이 있다. 아직 볼을 비비고 뽀뽀도 하며 스킨십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먼저 아들을 키운 선배들은 하나같이 말을 해 주신다. 그 시기도 '얼마 안 남았으니 충분히 사랑하라고... 조만간 그 사랑을 귀찮아할 것이라고...' 내 아이는 다를 것이라 착각하지 말라는 말들도 덧붙이신다.
사실 자주 착각을 했다. 내 아이는 다를 것이라는...
하지만 사춘기가 찾아온 딸은 언제부터인가 말투도 눈빛도 달라졌다. 엄마가 혼낼 때 서 있는 자세도 삐딱해졌다. 그러면 나는 아이의 눈빛과 말투와 그 자세 때문에 또 화가 난다. 초등학교 때는 고분고분하던 아이가 요즘들어 가끔 "싫어!"라는 대답을 할 때면 나는 흠짓 놀라곤 한다. 어? 싫다고? 난 엄마한테 싫다는 말을 못 해봤는데... 엄마한테 싫다고?
엄마에게 싫다는 표현도 제대로 못해본 나였기에 한편으로는 <싫어>라는 표현을 하는 딸이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화가 올라오는 이중 감정을 느낀다. 그 중간에서 감정의 균형을 잡고 아이와 대화를 하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다. 상담사라는 직업을 갖고, 공부를 하고 있음에도 성숙하지 못한 내 모습을 볼 때 부끄럽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사춘기 아이들의 변화에 대한 지식과 다양한 상담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는 더 고분고분하게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키우기 편한 아이가 되길 바라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아이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해 주는 자기 주도적인 사람으로 커 주길 바란다. 이 또한 얼마나 이중적인 바람인가... 결국 엄마가 바라는 것이란 자기 주도적이되 엄마 마음에 들도록 말하고 행동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가.
사춘기 혹은 청소년기. 자아정체감이 만들어지며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고, 다양한 욕구가 생기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신호이다. 사춘기가 되면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지고, 반항심도 생기고, 감정 기복이 심해지며, 시각적인 자극에 반응하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다. 자기 주도적인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서 이건 하지 마라, 저거 해라 시키는 대로 잘해 주길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엄마랑 노는 것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재미있어지고, 좋아지는 것도 생기고 하기 싫은 것에는 반항도 해 보고, 여기저기 부딪혀가며 배우는 것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은 성장해 간다. 언제까지 엄마 품속의 귀여운 아기로만 있다면 그 또한 비정상적인 성장이다.
건강한 관계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아무리 사랑하고 아무리 예쁜 내 자식일지라도 적당한 거리를 지키지 못하면 아이는 오히려 어긋날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은 간접 경험을 통해 배우지 않았던가...
아이들이 건강한 사춘기를 보내고 어른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엄마인 내가 한 발짝 물러나는 것도 준비된 지혜가 아닐까... 조금은 서운하지만, 꼭 필요한 연습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