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이 넘어 결혼을 하면 내 인생 계획에서 뭔가 늦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20대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예쁘고 찬란한 시기라 생각했고, 그 마무리를 결혼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통 9수에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노래도 잘 못 부르고, 술도 마셨다 하면 필름이 끊기기 일수였지만 친한 친구들 서너 명과 그냥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까불며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29살 결혼을 앞두고, 친구들과 술에 잔뜩 취해 또 노래방에 갔다. 누군가, '서른 즈음에' 번호를 눌렀다.친구가 노래를 부르는데 난 같이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다가 왠지 그냥 눈물이 줄줄 흘렀다.
김광석<서른 즈음에>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 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 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나의 예쁘고 찬란했던 20대가 저물고 있었고, 나의 솔로 생활이 떠나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결혼생활, 아줌마가 되는 30대, 젊음이 꺾였다는 30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슬프고 두렵고 서글펐다. 그때는.
그러나 30살이 되어도 20대의 나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여전히 나는 놀기 좋아하는 30대 아줌마지만 함께 놀 친구들이 없이, '애가 애가 키운다'는 말을 들으며 아이 둘과 씨름하는 30대를 보냈다. 정신없이.
가을장미가 마치 젊음처럼 눈길을 끈다.
39살 봄,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이제 이게 30대의 마지막 봄이구나. 이제 40대의 나는 진짜 중년이 되는구나. 그래도 29살처럼 서글프거나 두렵지 않았다.
44살 지금, 발달심리학적으로 나는 이제 진짜 중년기이다. 중년기는 <성인기와 노인기의 중간 단계로 인간의 전 생애 중 최고 절정에 이르는 시기이며 장년기에서 노년기로 넘어가는 교량적 역할을 하는 시기>로 발달심리에서는 이야기한다.
아직 신체적인 변화가 뚜렷이 나타나는 시기는 아니지만 이제 흰머리카락도 가끔 보이고, 배도 더 나오고, 피부 상태, 소화기능이 예전과 확연히 달라짐을 느낀다. 왜 아줌마들이 매일 선캡을 쓰고, 토시를 하고 공원을 걷는지 이해가 되고, 운전할 때도 꽁꽁 싸매는지 알게 되었고, 나도 이제 필요함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40대인 지금이 참 좋다. 예전의 날 서있고 까칠했던 나의 가시들이 많이 부드러워졌고, 전에는 보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현상들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보려고 노력하는 나의 눈이 좋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수용하려 노력하는 내 모습이 좋다.
20대의 내가 젊음으로 예쁘고 실수도 귀여운 풋풋함이었다면, 40대의 나는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 조금은 더 인내할 줄도 알고, 배려할 줄도 알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정성을 들이려 노력하는 내 모습이 좋다.
20대의 나는 나이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지만, 40대의 나는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 설레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