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와 보낸 저녁


늦은 저녁, 잠깐 친구를 만났다.

잠깐이라는 말로 시작했지만, 편한 사람과의 만남은 늘 그렇듯 쉽게 끝나지 않는다. 만나기 전에는 짧게 얼굴만 보고 헤어질 생각이었는데, 막상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은 금세 다른 표정을 짓는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우리는 둘 다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이어트 누가 모르나... 하지만 이제 배가 고프면 힘이 없고, 우울해지는 것을 알기에 밥을 먹으며 또 웃고 떠든다. 이 나이가 되면 건강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고, 예전보다 몸이 쉽게 피곤해진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분명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는데도, 이상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 음식은 더 맛있다. 웃고 떠들다 보니 접시 위의 음식은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들었고, 마음은 그만큼 더 풀어졌다.


밥을 다 먹고 나니 배는 충분히 불렀다. 커피를 한 잔 더 할까 잠시 고민했다. 사실 몸은 피곤했고, 밤에도, 내일 해야 할 일도 있었다. 이쯤에서 인사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또 그런 날이 있다. 돌아서기에는 대화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날. 꼭 대단한 이야기가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발걸음을 붙잡는 날.


우리는 결국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도 한참을 더 이야기했다. 금방 인사할 줄 알았는데, 좋은 사람과의 헤어짐은 늘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가야지” 하면서도 한마디가 더 붙고, 그 한마디에 또 웃음이 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몇 분이 더 흘러 있다. 아쉬움이라는 감정은 늘 조용하게 남아서 사람을 조금 더 머물게 한다.


편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참 신기하다.

특별한 주제가 없어도 즐겁다. 대단한 결론이 없어도 허전하지 않다. 무엇을 이뤄야 하는 시간도 아닌데, 이상하게 만나고 돌아오면 마음이 조금 환해져 있다. 별것 아닌 이야기들이 오갔을 뿐인데, 그 별것 아님이 하루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좋은 사람과의 수다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니다. 지친 마음의 숨을 고르게 해 주고, 무거워진 생각을 조금 덜어 주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아주 조금 채워 넣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어떤 만남은 길지 않아도 오래 남는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좋은 저녁이었다고 기억하게 된다.


오늘이 그랬다.

친한 친구와 함께 웃고, 떠들고,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보낸 시간. 많은 것을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은 충분히 채워진 저녁이었다. 살다 보면 대단한 위로보다 이런 시간이 더 오래 힘이 될 때가 있다. 편하게 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사람, 별말이 아니어도 웃을 수 있는 사람, 돌아오는 길에 마음을 조금 가볍게 만들어 주는 사람.

좋은 친구는 그런 사람이고, 좋은 사람은 그런 저녁을 남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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