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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꽃psy Nov 30. 2021

힘을 줘야 할 곳, 힘을 빼야 하는 곳

관찰은 더 나은 나를 만들게 도와준다

개인 피티 30회가 넘어가니 이제야 겨우 트레이너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근육에 힘을 줘야 하는 곳에 집중는 방법, 그리고 힘이 들어가는 느낌을 알듯 말듯하다. 


난 약간 등이 굽었다.  

운동을 하며 많이 펴진 느낌이 들기에 과거형으로 표현해 보기로 한다. 전문용어로 <굽은 등 말린 어깨>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라고들 지만 자신의 몸이 아니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난 내 등이 굽은 것을 알아챈  고등학교부터 늘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마흔 중반이 되어서야 그 굽은 등을 펴기 위해 돈과 시간을 들이고 있다. 출산 후에도 한번 큰돈을 들여 카이로프라틱(?) 마사지를 해서 조금 나아지긴 했었으나 생활습관이 바뀌지 않으니 다시 굽었다. 지금처럼 운동으로 근육의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2차 성징이 시작되었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을까?  빼빼 마르고 체구가 작은 내가 가슴이 발달하는 것이 부끄럽고,  볼록(?) 표시가 나는 게 싫었다. 그래서 가슴을 쫙 펴지 않고 약간 웅크리면 그런 표시가 안 날 거라 생각했다. 앉을 때도, 가방을 메고 걸음을 걸을 때도 약간 등을 구부리고 걷게 되었다. 그렇게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나의 등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굽어갔다.


그리고 뭔가를 잘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늘 긴장을 하고 지냈다. 어깨는 더 굳어갔고 누군가 내 어깨를 풀어주겠다고 만지면 나는 악~ 소리를 내며 만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내 배는 반대였다. 작은 골반 덕에 임신 후 진짜 어떻게 사람 배가 이렇게 높아질 수 있는가 나는 내 배를 보고 놀라곤 했다. 작은 배는 우뚝 솟아올랐고, 아무리 튼살크림을 발라대도 가뭄 논바닥 갈라지듯 어느새인가 살들이 터져서 흉이 져 있었다. 아기를 낳았는데도 여전히 임신한 상태처 보였고 배가 무거웠다. 골반은 다 틀어졌고 뱃살은 흘러내렸고 어깨는 솟아올랐다. 그런 몸으로 나는 44살을 보내고 있었다.


텐바디 브런치를 구독하고 열심히 저장했다. 글과 사진을 보면 운동이 너무 쉬웠다. 사진 속의 트레이너는 너무 쉽게 동작을 했다.

"오오 5분만 하면 되네~ 하루 10분이면 몸이 저렇게 된다고? 좋은데???"

나는 운동을 몸이 아니라 눈으로, 뇌로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번 따라 하다가 내 뻣뻣한 관절과 늘어나지 않는 근육을 느끼며 역시 나는 운동이 안 되는 몸인가 타협하며 다시 열심히 텐바디를 구독만 했다.


길을 가다가 쇼윈도에 비친 내 옆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 등이 굽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옆태가 너무 이쁘지 않다는 것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중에 할머니가 되면 꼬부랑 등이 굽은 할머니가 될 거 같았다.

노인이 되어도 꼿꼿하게 치마를 입고, 청바지를 입는 노인이 되고 싶은데 지금 모습으로는 내가 희망하는 그런 모습으로 늙어가기 어렵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소소하게 운동 도구를 사고, 몇 번 스트레칭을 하고는 하지만 그런 정도로는 내 몸의 변화가 어렵다는 것을 몇 번 자각했기에 이번에는 돈을 들여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큰맘 먹고 여성 헬스장에 등록을 했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운동도 운동이지만 생활 속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신다.

코어가 너무 힘이 없어 자꾸 배가 나오고, 등이 더 굽는 자세가 나온다고 했다. 어깨에 힘을 빼고, 배에 힘을 주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생활습관은 반대로 어깨는 잔뜩 긴장해서 힘을 주고, 배는 힘이 없어 늘 풀어진 상태였던 것이다.




힘을 주어야 하는 곳과 힘을 빼야 하는 곳이 반대인 채로 나는 생활을 해 왔던 것이었다. 예전에 호흡수련을 하면서도 몸에 힘을 빼는 것이 어려웠다. 오히려 힘을 주라 하면 그런 느낌을 알 거 같은데 '몸에 힘을 빼세요' 하면 느낌에 대해 자각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오랜 세월 내가 너무 힘을 주고 살아온 까닭일 것이다. 필요한 곳에 긴장과 이완을 적절하게 할 때 내 몸은 더 균형을 잘 맞추고 호르몬이 잘 분비되어 더 건강 내가 될 수 있었을텐데... 애먼 데에는 너무 힘을 주었고, 정작 힘이 필요한 몸의 중심엔 힘이 없으니 여기저기 끌려다녔나 보다.


내 몸뿐만 아니라 어쩌면 내 언어 속에도, 내 시선 속에도 힘을 주어야 할 곳과 힘을 빼야 할 곳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상대를 긴장하게 만들거나 제때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내 기준과 내 틀, 내 생각 속에서 습관적으로 판단하고 재단했을지도 모르겠다.


말린 어깨 굽은 등을 펴기 위해 서서히 등 근육의 힘을 키워주고 있다. 처음에는 느낌도 잘 모르겠고 너무 힘들고 아프기만 했으나 이제는 조금씩 그 느낌을 알 것 같다.

몸을 자주 관찰하니 자꾸 자세를 바로 잡게 된다. 더 괜찮은 몸을 위한 노력을 하는 내가 보인다. 관찰은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한 방법이다. 습관처럼 하던 말도 관찰하고 시선도 관찰하고 행동도 관찰하면 더 나아지는 나를 만들 수 있다.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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