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꽃psy Dec 14. 2021

솎아내기의 중요성

묘목처럼 삶에도 솎아내야 할 것들이 있다.

                                   

솎아내다는 솎다와 내다가 결합된 말이다. '솎다'는 '촘촘히 있는 것을 군데군데 골라 뽑아 성기게 하는 것'을 뜻하고 '내다'는 '변화가 생기다'는 뜻이다.


농사에서 솎아내는 것은 파종 후, 자라난 작물의 일정한 포기의 간격에 따라 잘 자란 모종은 남겨두고 나머지 것은 뽑아내는 것을 말한다. 과수작물에서는 가지치기나 큰 열매를 위해 다른 열매들을 따내는 '적과'도 솎아 내는 작업이 된다.


어릴 적에 엄마랑 같이 콩밭이나 깨밭에 가면 엄마가 내게 시범을 보이셨다. 몇 그루의 포기들이 예쁘게 자란 것에 서너 포기만 남기고 뽑아내라고. 어린 마음에 나는 너무 이해가 안 되었다.  다 크고 잘 자랄 것 같은데 이 아까운 것을 뽑아내라니... 그러면 나는 어떤 것을 뽑아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다 건강하고 잘 키우면 더 많이 콩이 열릴 텐데 왜 심느라 고생, 뽑느라 고생, 아까운 씨앗은 버리고 여러모로 손해인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뭘 뽑아내야 할지 망설이는 어린 나에게 설명을 해 주셨다. 아까워도 뽑아내야 남은 작물이 더 튼튼해지고 잘 자라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솎아 낼 때는 과감함이 필요했다. 나는 콩이나 깨 같은 작은 작물을 뽑아내는 것도 이렇게 망설임이 컸는데, 만일 내 친구네 같은 과수원에서 사과나 복숭아 같은 과일 적과를 해야 했다면 어떤 과일을 남겨두고 따야 할지 아마 내 마음이 더 힘들었을 거 같다.




얼마전 화분에 옮겨 심어 새로운 싹이 올라오는 행운목의 아래 잎들을 잘라내며 아직은 싱싱한 잎사귀를 자르는 것이 괜히 미안해졌다. 그리고 어릴 적 솎아내기 하며 콩 묘목에 미안해지던 생각이 떠올랐다.


인생에는 과감함이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 과감함의 순간에는 선택이라는 어려운 과정이 함께 한다.  솎아내기나 가지치기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갈등의 과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개의 잎을 잘라내야 할지 망설여졌다. 다 꽤 괜찮아 보이는 것들 중에서 혹은 비등비등한 것들 중에서 몇 개를 선택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예쁘게 있는 여러 콩 묘목 중에서 과감하게 몇 개를 뽑아내듯 내 일상에서, 내 물건에서, 혹은 내가 쥐고 있는 것 중에서도 몇 개는 솎아 내야 내 일이든 생활이든 집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욕심과 미련 때문에, 그리고 불안감으로  쥐고 있는 것들이 있다.


솎아 낸 후 작물이 더 건강하게 자라서 좋은 열매를 맺듯, 내 일상에도 내 생각에도 솎아 낼 것은 과감하게 솎아 내야 내 인생의 진짜 튼실한 원하는 것들이 더 잘 자랄 것이란 것을 안다. 솎아내는 과정은 분명 갈등과 고통이지만 더 큰 성장을 이루게 될 것이다. 올해에는 솎아내야 할 것에 좀더 과감한 액션을 해야한다.




"우리의 큰 원수는 방황과 주저이다. 할까 말까 하여 머물러 있는 것이 방황이요, 주저이다"

라고 안창호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임과 방황과 주저는 나아가지도 못하고, 새로운 일도 하지 못하고 어쩌면 시간낭비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어린 내가 콩 묘목 앞에서 뽑아내지 못하고 쳐다보고 있는 사이, 엄마는 저 앞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밭이랑속에 나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포장, 초심 그리고 욕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