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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꽃psy Dec 18. 2021

상처가 되는 말이 있다.

소용없는 소영이 왔네

내 이름은 소영이다. 

주변 70년대생 중에는 ~영으로 끝나는 이름들이 많다. 지영, 은영, 화영, 미영, 순영, 문영.... 난 내 이름을 좋아한다. 흔해빠진 이름이고, 같은 이름을 자주 접하곤 지만 름에 닮긴 뜻을 좋아했다. 밝고 길게 오래 살으라는 의미로 엄마가 지으셨다고 한다. 이름 덕분인지 성향은 밝 잘 웃으며, 오래 살 것 같은 예감도 든다.


나는 셋째 딸이다. 위로 언니가 둘, 아래로 남동생이 있다. 난 아들을 낳기 위한 식구들의 기대감 속에 태어났지만, 출생을 하자마자 아마도 어른들에게 실망을 주었을 것이다. 또 딸이네... 엄마는 나를 낳고 삼일을 울어 눈이 빨갛게 변했고, 아빠는 읍내로 술 마시러 가고, 할아버지는 울음소리를 듣고 마당에서 그냥 나가버렸고, 할머니는 또 딸을 낳았다고 엄마를 죄인 취급했다고 들었다. 눈썹이 무지 길어서 얼굴을 다 덮은 거 같았고 잠도 잘 자는 순한 딸이었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착하고 예뻤던 나를 보고 엄마에게 "아들 부럽지 않은 딸"이라고 위로를 했다. 동네에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육촌 동생이 있었다. 나는 그 동생과 자주 놀았다. 할아버지의 동생인 작은할아버지는 내가 가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소용없는 소영이 왔네~ 사탕 주랴?"




소용없는 소영이...

그 말은 일곱 살, 어린 나에게 너무 큰 상처였다. 작은할아버지는 나를 예뻐해 주셨지만 늘 <소용없는 소영이>라 말했다. 나를 놀리느라 그렇게 불렀던 거 같다. 하지만 난 작은할아버지에게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다. 어느 날, <소용없는 소영이>라 부르는 것을 본 엄마가 작은할아버지에게 화를 냈고 더 이상 <소용없는 소영이>가 아닌 그냥 <소영>이가 되었다. 한동안은 내 이름이 하필이면 <소영>인 것도 너무 싫었었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소용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별거 아닌 듯해도 누군가에는 상처가 되는 말이 있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한다. 특히 어린 날의 상처는 더 깊숙이 무의식에 박혀서 인생에 더 크게 작동하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혹은 장난으로 어른들이 던진 한마디에 아이들은 큰 상처가 되고, 자존감이 약해진다.  너는 그거도 못해서 어쩌려고 그러니? 너 때문에 못살아. 내가 널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 등등 어른들이 화가 나서 아무런 생각 없이 하는 말이 아이의 마음에 가시가 되어 박혀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많은 집 셋째 딸, '소용없는 소영'이는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로 더 소용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소용없는'이라는 쓸데없는 수식어가 가끔 떠오다.  작은 할어버지에게 왜 우리 소영이가 소용없는 소영이냐고 따져 묻던 우리 엄마가 무섭고 또 고마웠다. 엄마가 지어주신  내 이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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