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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꽃psy Dec 19. 2021

명품지갑과 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데...

어쩌다 고가의 명품지갑이 생겼다. 아마 내가 가진 가방 중에 제일 비싼 것도 지갑보다 훨씬 저렴할 것 같다. 2등 경품으로 당첨된 지갑을 받으며 제세공과금(?)을 16만 원이나 내고 수령했다. 당첨이면 그냥 받는 것인 줄만 알았더니 제세공과금이 꽤 크다. 생각지 못한 돈을 내고 지갑을 받으며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소위 명품이라 말하는 고가의 물건들은 나와 거리가 멀다. 20대 시절에는 동대문에 가서 진짜와 똑같은(?) 'A급 짝퉁' 몇십만 원이나 주고 한두 번 사본 적도 있었다. 진짜를 본 적이 없으니 주인이 말해주는 시리얼 넘버니 뭐니 다 진짜랑 구분이 안 되는 '특 A급'이라며 망설이는 내게 안기듯 사게 짝퉁 가방을 진품인 양 들고 다녔다. 지하철을 타면 비슷한 패턴의 가방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럼 나는 각했다.

'저 가방은 진짜일까? 나처럼 짝퉁이겠지? 진짜를 가지고 다닐 재력이면 이렇게 지하철 안 타겠지?'

몇 년을 들고 다니다가 무겁, 디자인도 너무 올드해 보이고, 짝퉁을 들고 다니는 내가 우스워져서 헌 옷 수거함에  넣어버렸다.




결혼을 할 때 주변 친구들은 몇백만 원짜리 가방을 샀다. 지금 아니면 언제 그런 걸 받아보겠냐며 나에게도 꼭 가방 하나를 받으라고 했다. 하지만 난 그 비싼 가방 하나가 경제 수준에 맞지도 않고 나 같은 사람이 가지고 다니면 진짜도 짝퉁으로 생각할 꺼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내 생각으로는 몇백짜리 가방을 들 정도라면 억대 연봉에 고급 외제차 정도를 타고 다녀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냥 나는 내 수준취향에 맞는 국산 브랜드를 선택했고, 지금도 엄청나게  값비싼 물건들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다. 차라리 내 수준에 맞는 그리고 좀만 더 무리를 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물건에 욕심을 내거나 찜을 해 둔다. 문제는 수준과 취향에 맞는 물건을 여러 개 산다는 부작용이 있다.


아무튼 누군가는 명품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치품이라 하는 유명 브랜드의 지갑을 한참 바라보았다. 요즘의 나는 가방도 아주 작은 것만 들고 다니고 지갑은 안가지고 다닌지 오래다. 핸드폰 투명 케이스에 카드 한 장만 끼우고 다닌다. 지고 온 지갑을 한참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행여나 친구들이나 언니들이 백화점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살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차라리 당근에 올려보라는 의견이다.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나 당근 거래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사진을 이쁘게 찍고 모르는 이와 흥정을 하는 것이  생각만으로도 너무 불편하고 번거로운 과정이라 마음이 생기지 않다.

있던 그대로 포장을 해 두고 방 한쪽에 밀어두었다. 그냥 내가 쓸까? 헐값이라도 당근 마켓에 팔까? 아직 결정을 하지 않았다.




언젠가 남편이 내게 고맙다고 했다. 가끔 해외에 나가는 남편에게 뭐를 사 오라, 사다 달라 요구를 하지 않는 게 의외이고 고마운 점이라 했다. 함께 나가는 다른 사람들은 아내의 요구 물품을 사는 것에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남편에게 명한 여자와 결혼 잘 해으니 앞으로도 계속 잘해야 한다 심어린 협박을 했다. 남편은 내가 명품은 안 사도 다른 여러 개를 야금야금 산다는 것 알고 있다. 그저 우리의 분수를 알고 분수껏 살자고 한다. 그래... 분수껏 살다 보면 분에 넘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명품 가방, 명품 지갑, 좋은 옷 하나가 자신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여력이 되고, 능력이 되는 사람은 알아서 자신의 소비를 하면 된다. 그러나 물건이 아닌 행동은 그 사람을 말해주는 중요 요인이다. 예전에 회사에서 어떤 분은 몇백짜리 가방 하나를 사고 나서 카드값 갚느라 힘들다며 흔히 말하는 '빌붙는 행동'을 자꾸만 하는 통에 한동안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함께 노는 것이 짜증 났다. 우리가 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무리해서 소비를 해 놓고 왜 밥값이며 커피값을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우리는 그 언니와 함께 하는 것을 점차 피하게 되었다.


보이는 물건보다 중요한 것은 보이는 그 사람의 행동이며 말이다. 좋은 물건에는 가치가 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어도 그사람의 행동이나 말에 품위가 없으면 그 사람이 멋지지 않다. 더불어 "꼴에 좋은 물건 가지고 다니네"하는 말과 함께 물건의 가치와 인격의 가치가 함께 추락한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더 잘 먹고, 맛을 잘 아는 법이다. 어쩌다가 백화점에 가서도 명품관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는 나에게 악마나 입은 것인 줄만 아는 프라다 장지갑이 뭔가 모르게 부담스러웠다. 러나 품이란게 뭔가 대단한 물건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내게는 그저 평범한 가죽지갑일 뿐이다. 그냥 리스마스 선물로 개봉을 할까보다.

명품이 아니어도 빛난 앤 헤써웨이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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