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언어
매일매일 장난꾸러기
조용히 사브작사브작 가방을 코로 지퍼를 열고 큰형의 일거수 일투족을 냄새맡으며 입으로 하나씩 하나씩
물고 거실로 나와 아그작 아그작 소리를 낸다.
“구리야. 이노옴!”
화들짝 놀란 구리는 와그작 거리던 형의 필통, 안경중에 맘에 드는 것 한개를 입에 물고 달리기를 시작한다.
멀리못가 엄마에게 잡히지만 마지막 까지
앙탈을 부려본다.
“그르릉”
그러다. 잔소리라는 단어의 뜻이 궁금해 졌다.
뭘까? 그렇게나 아이들에게 많이 하던것이
아이유가수의 잔소리 노래제목만 기억나고
어떤 뜻인지는 정작 유심히 바라보지 못했다.
잔소리: 쓸떼없이 자질 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필요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
그렇구나…
아이들에게 먼저 살아봤던 세상이라고
시도해보는 경험을 느껴보지 못하게 다양한 방법의
호기심의 차단을 한거구나.
그러면서도 아이들의 기질과 재능대로 키우고 싶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것에만 집중하고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위험한것이 근처도 오지 못하게
먼저 바리게이트를 쳤다.
그러느라 신체에너지, 감정에너지는 바닥나
결국 아이들에게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러고 소리치고 만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란 나의 성향도 나의 존재도 포함인데 그러하지 못했다.
엄마라는 이름이 아이들을 무조건 좋게, 안전하게 지켜야 한더는 강박만을 더 키운것 같다.
아이들이 한살한살 나이가 들어가며
엄마라는 이름의 나이도 한살한살 나이를 들어갔다.
그리고…..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
아이들의 호기심, 에너지, 탐구하려는 마음도 인정해야 한다는걸 알아갔다.
좋은것 뿐 아니라 상처가 나 아프고 눈물이 나고
때론 깊은 감정에도 빠지는 경험속에서
스스로 엄마의 아들이 아닌 “나”라는 존재를
오감을통해 알아가는 시기를 아프지만, 답답하지만
지켜보고 안아줘야 한다는걸 알게 됐다.
여름, 겨울, 일년의 두번의 방학이 다가올때마다
“벌써부터 울렁증과 심박수 체크를 한다니까“
이렇게 말을 한다.
나도 그랬다.
하루 삼시네끼를 차리는 나는 매일이 방학이라
잘 모르지만 어찌든 방학엔 커다란 덩치들이
나의 시선과 감정을 어지럽히는 일들이 많다.
내가 살아온 시선으로 보는 기대치를 내려놓고
반려견을 대하듯 존재 자체만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남편을 대한다면 잔소리보다 ’ 저런면도 있네‘
라고 볼수 있는 시선이 생긴다.
참 어렵지만 참 단순한 논리…
나에게도 그렇게 해보자
존재 자체로도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