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은 무죄다
밀의 글루텐은 밀 단백질의 주 성분으로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으로 구성된다. 글리아딘은 사람의 소장에서 아미노산으로 완전분해되지 않고 펩타이드로 남는다. 펩타이드는 소장 세포벽을 통과한 후 CD4+ T 세포와 결합, 면역시스템을 활성화하여 항체를 생성한다. 항체는 소장의 상피를 공격하여 소장의 기능 장애를 가져오고 영양분 흡수능력을 떨어뜨린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람의 면역체계가 글리아딘을 병원체로 인식하여 글리아딘을 공격하면서 소장 자체에도 손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19세기 말, 일본군에 발생한 각기병이 그것이다. 다리가 붓고 힘이 없어 걷기 어려워지는 병이다. 심한 경우 심장기능이 떨어져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징병된 농촌 청년들은 흰쌀밥을 배불리 먹었다. 급식을 든든히 먹었건만 군인들은 어찌 된 일인지 힘을 쓰지 못했다. 군대 전력은 형편없이 떨어졌고 다수의 사망자도 나왔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 육군에서 각기병으로 사망한 군인은 20만 명이 넘었다. 신기하게도 급식을 흰쌀밥에서 보리밥으로 바꾸고 채소 반찬을 늘리니 각기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후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비타민 B1·B2 결핍이 병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더 부드러운 밥을 먹기 위해 벼를 백미로 도정하는 과정에서 비타민을 함유한 쌀눈을 제거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