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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Jan 14. 2020

토종 앉은뱅이밀, 세상의 모든 밀이 되다?

녹색혁명의 주역, 키 작은 밀의 기원을 찾아서

취미로 빵을 구우며 어느 순간 우리 땅에서 나는 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평소 음식은 가까운 곳에서 나는 재료로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빵의 주재료인 밀도 로컬 재료이어야 함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우리 땅에서 나는 밀을 찾아가면서 여러 지역에서, 여러 품종의 밀이 재배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새로운 품종의 밀을 개발하기 위해 육종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육종의 결과물인 밀 품종들의 한계도 알게 되었다. 나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육종 이전의 밀 품종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나는 토종밀과 고대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앉은뱅이밀은 모두가 인정하는 우리 토종밀이다. 그 종자 보존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제슬로푸드협회의 맛의 방주에도 등재되었다. 앉은뱅이밀에 대한 자료에 빠짐없이 나오는 것이 있다. 바로 2차 대전 후 제3세계의 기아문제 해결에 크게 이바지한 밀 품종이라는 것이다. 노먼 볼로그 박사가 일본에서 건너간 키 작은 밀로 다수확 밀 품종을 육종 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들 밀 종자가 인도와 파키스탄 등 제3세계에 보급되어 그곳에 만연하던 기아문제를 해결했고, 볼로그 박사는 그 공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더 자랑스러운 것은 일본에서 건너간 키 작은 밀의 조상이 바로 앉은뱅이밀이라는 게 그 이야기는 주된 내용이다.


작은 밀 품종 하나가 기아문제를 해결했다니 정말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그리고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우리 토종밀인 앉은뱅이밀이라니...


이 드라마 같은 이야기에 끌려 앉은뱅이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헌데 어디에서도 앞에 언급한 이야기 이상의 자료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렇게 중요한 밀이라면 어디든 자료가 많을텐데 더 이상의 자료를 찾을 수 없다니 이건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의 앉은뱅이밀에 대한 조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맘 한편엔 항상 똥 싸고 뒤처리 안 한 듯 개운치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노먼 볼로그 박사가 쓴 책[2]을 만나게 되었고 그 책을 통해 또 다른 유용한 자료들을 알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농진청에서 근무하던 조장환 등이 쓴 논문이다 [1].

한국과 일본에서 쓰이고 있는 밀 반왜성유전자의 조상은 1500~1941년 사이에 한국 각 지역에 널리 산재되어 재배되던 앉은뱅이밀이며 이 집단은 줄기에 관한 한 Rht1, Rht2, Rht1 Rht2 등의 유전자형을 갖는 개체들이 혼재한 집단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재배되는 반왜성밀(키가 작은 밀)인 달마(Daruma)라는 품종의 밀이 시초이다. 달마는 한국의 토종밀인 앉은뱅이밀을 순계 분리하여 나온 품종 중 하나이거나 앉은뱅이밀 자체를 달마라고 명명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앉은뱅이밀이 일본으로 전파된 시기는 1572~1599년의 임진왜란시 또는 1904~1905년 일본 농업전문가들이 실시한 한국 토지농산조사시에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 확실하다.

오호 앉은뱅이밀이 달마의 시초라니... 달마라는 밀 품종은 볼로그 박사에게 전해져 다수확 밀을 육종 하는데 쓰인 밀 품종인 Norin10의 부모이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앉은뱅이밀이 Norin10의 조부모가 되는 것이다. 헌데 문제는 앉은뱅이밀이 달마의 시초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자료를 내놓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럼 앉은뱅이밀이 임진왜란 또는 1904~1905년 한국 토지농산조사시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이들의 주장이 타당한지를 살펴보자.


1904~1905년 일본 전래설

우선 1904~1905년 일본 전래설을 살펴보자. 이 주장은 Dana G. Dalrymple의 기록을 통해 판단할 수 있다. 그는 Horace Capron의 기록을 인용하여 1873년에 일본에서 달마(Daruma)가 재배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3]. 내용은 이렇다.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반왜성밀을 개발 해왔다. 미농무부 위원을 역임하였고 당시 일본 정부의 농업 고문으로 있던 Horace Capron는 1873년 "일본 농부들은 완벽한 반왜성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밀은 초장이 2 feet를 넘지 않았으며, 종종 20인치 이하인 것도 있었다. 밀 이삭은 짧지만 무거웠다. 농부들은 밀의 초장을 짧게 하여 퇴비를 아무리 많이 넣어도 넘어지지 않고 이삭을 더 크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흙은 비옥하고 수확량은 많았지만 밀은 절대로 쓰러지거나 도복 되지 않았다."라고 기록하였다. 1971년 일본인들은 미국의 연질 붉은 가을 파종 밀 품종인 Fultz와 달마를 교잡하여 Fultz-Daruma 품종을 육종 하였다. 또한 1924년 미국의 경질 붉은 가을 파종 밀인 Turkey Red와 Fultz-Daruma를 교잡하여 여러 품종을 육종 하였으며, 이 중 하나가 Norin10이다. Norin10은 1935년 일본 내 농부들에게 보급되었다. 또한 이탈리아, 미국, 멕시코의 밀 육종 프로그램에 널리 사용되었다.

Horace Capron에 관한 기록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그는 달마의 초장이 최대 2 feet(약 60cm)를 넘지 않았고 종종 20인치(약 50cm) 이하인 것도 있다고 하였다. 즉 달마의 초장이 50~60cm라는 것이다. 이는 앉은뱅이밀의 초장과 동일하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기록의 시기이다. Capron은 홋카이도 개척사였던 키요타카 쿠로다의 요청으로 1870–71년 농업기술고문으로 홋카이도에 거주하였다. Dalrymple이 인용한 위 내용은 이때의 기록을 1873년 일기 형식으로 출간한 것이다. Capron이 일본에 처음 갔던 1870년 달마가 이미 홋카이도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장환 등이 주장한 1904~1905년 앉은뱅이밀의 일본 전래설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Dalrymple의 글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Norin10의 육종 과정이다. 이 밀의 육종 과정에 외국의 밀 품종인 Fultz와 Turkey Red가 등장한다. Fultz는 지중해 기원의 밀일 것으로 추정되고 Turkey Red는 유럽에서 전해진 미국의 토종밀이다. 농업 고문으로서의 Horace Capron의 주된 임무 중 하나가 우량품종의 수입 보급을 통한 홋카이도 지역의 발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4] Fultz와 Turkey Red의 일본 도입도 그의 활동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임진왜란 시 일본 전래설


그러면 임진왜란 시 일본 전래설은 어떨까? 이와 관련된 직접적인 사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 보았다. 임진왜란 전 또는 1800년대 후반 이전 쓰인 앉은뱅이밀에 대한 자료를 찾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런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다만 1900년대 초 일본인들의 기록을 통해 당시 앉은뱅이밀이 우리 땅에서 재배되고 있었는지 유추할 수 있다. 우선 조장환 등이 언급한 한국 토지 농산 보고의 내용을 살펴보자. 이 보고서에 밀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품종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기에 당시 어떤 밀 품종이 재배되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조사 당시인 1904~05년에 이미 한반도 곳곳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농장이 있었고, 대표적인 일본인 경영 농장인 한국흥업주식회사에선 겨울밀을 재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품질이 좋은 일본 벼 품종을 들여와 농장에서 재배하고 있다는 기록도 있다 [5].


1933년 조선총독부 농사시험장에서 발간한 자료에 당시 한반도에서 재배하던 밀 품종을 지역별로 자세히 기록하였다 [6]. 밀은 대부분 일본산 또는 미국산 육종밀 품종이며 재래종 품종은 한 가지가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재래종 밀의 초장은 112cm로 앉은뱅이밀보다는 훨씬 키가 커 앉은뱅이밀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달마와 적달마가 전남과 경남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달마와 적달마의 재배지역이 앉은뱅이밀 부활이 시작된 경남 진주와 일치하는 건 우연의 일치일까?


그럼 도대체 앉은뱅이밀은 우리 땅에서 조상 대대로 길러온 토종밀이란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인가? 앉은뱅이밀이 토종밀인 건 맞지만 우리 땅에서 조상 대대로 길러온 밀은 아니지 않을까. 오히려 일제 강점기에 달마가 우리 땅으로 건너와서 토착화된 것이라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이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된  노먼 볼로그 박사의 책과 자서전 대출을 도와준 정용현 박사께 감사드립니다.

멋진 앉은뱅이밀 사진 제공해 주신 마르쉐@의 고작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참고문헌

1. 조장환 등, 한국에 있어서 소맥 반왜성유전자의 기원, 전파 및 이용에 관한 연구, Korean J. Breeding Vol. 12, No. 1, pp 1~12, 1980

2. Haldore Hanson, Norman E. Borlaug, and R. Glenn Anderson, Wheat in the third world, Westview Press, 1982

3. Dana G. Dalrymple, Development and spread of high-yielding varieties of wheat and rice in the less developed nations, US Dept. of Agriculture, Washington, July 1972

4. 위키피디아(https://en.wikipedia.org/wiki/Horace_Capron#Japan

5. 농촌진흥청 편역, 한국토지농산보고 1~3, 5, 1905

6. 조선총독부농사시험장, 서선지장에서의 소맥증수법(西鮮支場二於ケ儿小麥增收法), 1933

7. V. Smill, Enriching the earth: Fritz Haber, Carl Bosch, and the transformation of world food production, MIT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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