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국산밀산업협회, 한국제분협회 홈페이지에 통계자료가 올라와 있다. 하지만 각각의 통계자료가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 농무부에서 발행한 Grain and Feed Annual이라는 연차보고서에서 잘 정리된 우리나라 밀 산업 통계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참 아이러니다. 이 보고서에는 미국의 주요 밀수출국의 밀수요 통계자료가 실려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 곡물 메이저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시장 중 하나이다.
연도별 밀과 밀가루 수입량(자료 출처: 통계청, 미국 농무부 Grain and Feed Annual 2017)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매년 밀 알곡 약 240만 톤, 밀가루 약 6만 톤을 수입하고 있다. 미국 원조로 밀가루가 대량으로 들어왔던 한국전쟁 직후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밀 알곡 원산지별 비중은 미국 50%, 호주 40%, 우크라이나, 캐나다 등이 나머지 10%를 차지한다. 국내에 들어온 밀 알곡은 국내 대형 제분소에서 제분하여 밀가루로 유통된다.
그럼 밀가루 수입 현황은 어떠한가. 밀가루는 매년 6톤가량이 수입된다. 밀가루는 외국에서 제분하여 포대에 담긴 채로 수입된다. 원산지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 자료는 찾을 수 없었지만 프랑스, 미국, 호주, 캐나다, 터키, 독일 등지에서 수입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수입 밀가루는 대부분 제빵용일 것으로 추정된다. 깡빠뉴, 바게트 등 유럽식 식사빵을 판매하는 베이커리나 유기농 빵집이라 광고하는 빵집에 홍보용으로 진열되어 있는 밀가루 포대들이 바로 이들 수입 밀가루이다.
시장에서 우리밀의 존재를 논한다는 것도 참 무안합니다
수 십 년간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하고 계신 분의 한마디이다. 올해 초 <밀 산업 육성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우리밀의 품질 향상과 수요 확대 등 밀 산업을 체계적, 안정적으로 육성·지원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게 국회와 정부의 평가이다. 하지만 현실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우리밀의 상황은 안쓰럽다.
2018년 생산량 2만여 톤, 자급률 0.8%, 이게 우리밀의 현실이다. 매년 수입하는 밀가루 약 6만 톤의 1/3을 조금 넘는 양이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다. 올해는 생산량 1.2만 톤, 자급률 0.6%로 작년보다 더 쪼그라들었다.
잠깐... 이 지점에서 드는 의문 하나.
우리는 대대로 쌀을 주식으로 삼았으니 밀 생산량이 적은 건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닌가?
그래서 자료를 더 찾아보았다. 뭐든지 자세한 기록으로 남기는 일본 사람들이 일제강점기에 남긴 자료에 당시 한반도에서 재배하던 밀에 대한 아주 자세한 정보가 실려 있다.
1933년 조선총독부농사시험장에서 펴낸 <서선지장에서의 소맥증수법(西鮮支場二於ケ儿小麥增收法)>에 따르면 당해 한반도의 밀 수확량은 180만 석 즉 288,000톤이다. 이듬해 발간된 賀田直治의 <조선공업기본조사개요(朝鮮工業基本調査槪要)>에도 한반도의 밀수확량을 180만 석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 한반도에서는 밀이 28만 8000톤이나 생산되고 있었다. 2019년 생산량 1.2만 톤의 23배가 넘는 수치이다.
한편, 賀田直治에 따르면 당시 한반도 내 밀가루 수요는 40만 톤이며 한반도 내 밀가루 공급이 부족하여 만주에서 62,500톤, 일본에서 30만 톤을 수입하였다고 한다. 즉 국내에서 제분된 밀가루는 3만여 톤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는 당시 국내 제분시설의 설비용량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밀가루 수요 40만 톤, 밀 생산량 28만 8000톤, 그 당시 밀 자급률은 무려 72%이다.
위의 두 자료에 당시 밀 재배와 소비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들이 몇 가지 더 실려있다.
한반도에서 밀은 대부분 빵용으로 소비되었고 한반도에서 생산된 밀은 품질이 일본산보다 월등했다. 제빵성 향상을 위해 초자질 밀 품종이 더 개발되어야 한다.
누룩용으로 소량 소비되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밀이 제빵용으로 소비되었다고 하니 그 당시 빵 소비가 상상 이상으로 많았나 보다. 또한 당시 밀 품종은 제빵용으로 좋은 품질 특성을 보였나 보다.
생산된 180만 석 중 120만 석이 한반도 서부(경기, 황해, 평안남도, 강원도를 이름)에서 생산되었고 이들 지역이 밀 재배의 최적지이다.
제빵용 밀은 충청도 이북에서 재배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다.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조선총독부의 자료에서 찾게 될 줄이야...
다양한 밀 품종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재배되고 있었다.
자료에는 당시 한반도에서 재배하던 밀 품종 19개가 소개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밀 품종이 5, 6종임을 고려하면 품종이 상당히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토종밀인 앉은뱅이밀과 관련성이 있다고 알려진 적달마와 砂川달마도 소개되어 있다.
약 90년 전과 지금,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반도는 더 이상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고
밀가루의 수요는 6배 이상 성장하였으나,
밀의 국내 생산량과 자급률은 약 9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
과거와 현재 한반도의 밀 상황을 비교해 보며 과거 자료 속 밀 이야기에서 우리밀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단초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