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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Oct 29. 2019

우리는 얼마나 많은 밀을 먹나    

밀 소비와 생산에 대하여   

우리는 매년 얼마나 많은 밀을 먹고 재배하고 있을까?


문헌조사를 한번 해봤다.  

통계청, 국산밀산업협회, 한국제분협회 홈페이지에 통계자료가 올라와 있다. 하지만 각각의 통계자료가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 농무부에서 발행한 Grain and Feed Annual이라는 연차보고서에서 잘 정리된 우리나라 밀 산업 통계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참 아이러니다. 이 보고서에는 미국의 주요 밀수출국의 밀수요 통계자료가 실려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 곡물 메이저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시장 중 하나이다.

   

연도별 밀과 밀가루 수입량(자료 출처: 통계청, 미국 농무부 Grain and Feed Annual 2017)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매년 밀 알곡 약 240만 톤, 밀가루 약 6만 톤을 수입하고 있다. 미국 원조로 밀가루가 대량으로 들어왔던 한국전쟁 직후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밀 알곡 원산지별 비중은 미국 50%, 호주 40%, 우크라이나, 캐나다 등이 나머지 10%를 차지한다. 국내에 들어온 밀 알곡은 국내 대형 제분소에서 제분하여 밀가루로 유통된다.


그럼 밀가루 수입 현황은 어떠한가. 밀가루는 매년 6톤가량이 수입된다. 밀가루는 외국에서 제분하여 포대에 담긴 채로 수입된다. 원산지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 자료는 찾을 수 없었지만 프랑스, 미국, 호주, 캐나다, 터키, 독일 등지에서 수입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수입 밀가루는 대부분 제빵용일 것으로 추정된다. 깡빠뉴, 바게트 등 유럽식 식사빵을 판매하는 베이커리나 유기농 빵집이라 광고하는 빵집에 홍보용으로 진열되어 있는 밀가루 포대들이 바로 이들 수입 밀가루이다.


시장에서 우리밀의 존재를 논한다는 것도 참 무안합니다


수 십 년간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하고 계신 분의 한마디이다. 올해 초 <밀 산업 육성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우리밀의 품질 향상과 수요 확대 등 밀 산업을 체계적, 안정적으로 육성·지원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게 국회와 정부의 평가이다. 하지만 현실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우리밀의 상황은 안쓰럽다.

  


2018년 생산량 2만여 톤, 자급률 0.8%, 이게 우리밀의 현실이다. 매년 수입하는 밀가루 약 6만 톤의 1/3을 조금 넘는 양이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다. 올해는 생산량 1.2만 톤, 자급률 0.6%로 작년보다 더 쪼그라들었다.




잠깐... 이 지점에서 드는 의문 하나.


우리는 대대로 쌀을 주식으로 삼았으니
밀 생산량이 적은 건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닌가?


그래서 자료를 더 찾아보았다. 뭐든지 자세한 기록으로 남기는 일본 사람들이 일제강점기에 남긴 자료에 당시 한반도에서 재배하던 밀에 대한 아주 자세한 정보가 실려 있다.


1933년 조선총독부농사시험장에서 펴낸 <서선지장에서의 소맥증수법(西鮮支場二於ケ儿小麥增收法)>에 따르면 당해 한반도의 밀 수확량은 180만 석 즉 288,000톤이다. 이듬해 발간된 賀田直治의 <조선공업기본조사개요(朝鮮工業基本調査槪要)>에도 한반도의 밀수확량을 180만 석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 한반도에서는 밀이 28만 8000톤이나 생산되고 있었다. 2019년 생산량 1.2만 톤의 23배가 넘는 수치이다.


한편, 賀田直治에 따르면 당시 한반도 내 밀가루 수요는 40만 톤이며 한반도 내 밀가루 공급이 부족하여 만주에서 62,500톤, 일본에서 30만 톤을 수입하였다고 한다. 즉 국내에서 제분된 밀가루는 3만여 톤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는 당시 국내 제분시설의 설비용량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밀가루 수요 40만 톤, 밀 생산량 28만 8000톤, 그 당시 밀 자급률은 무려 72%이다.


위의 두 자료에 당시 밀 재배와 소비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들이 몇 가지 더 실려있다.


한반도에서 밀은 대부분 빵용으로 소비되었고 한반도에서 생산된 밀은 품질이 일본산보다 월등했다. 제빵성 향상을 위해 초자질 밀 품종이 더 개발되어야 한다.

누룩용으로 소량 소비되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밀이 제빵용으로 소비되었다고 하니 그 당시 빵 소비가 상상 이상으로 많았나 보다. 또한 당시 밀 품종은 제빵용으로 좋은 품질 특성을 보였나 보다.

 

생산된 180만 석 중 120만 석이 한반도 서부(경기, 황해, 평안남도, 강원도를 이름)에서 생산되었고 이들 지역이 밀 재배의 최적지이다.

제빵용 밀은 충청도 이북에서 재배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다.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조선총독부의 자료에서 찾게 될 줄이야...


다양한 밀 품종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재배되고 있었다.

자료에는 당시 한반도에서 재배하던 밀 품종 19개가 소개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밀 품종이 5, 6종임을 고려하면 품종이 상당히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토종밀인 앉은뱅이밀과 관련성이 있다고 알려진 적달마와 砂川달마도 소개되어 있다.


약 90년 전과 지금,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반도는 더 이상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고

밀가루의 수요는 6배 이상 성장하였으나,

밀의 국내 생산량과 자급률은 약 9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


과거와 현재 한반도의 밀 상황을 비교해 보며 과거 자료 속 밀 이야기에서 우리밀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단초를 얻는다.


한반도 밀의 오래된 미래를 보았다.


*멋진 표지 사진을 제공해주신 마르쉐@의 고작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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