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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Oct 10. 2019

우리밀로 빵이 되나요?

밀의 다양성에서 해답을 찾아야

우리밀로 빵이 되나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밀만으로 빵을 굽는다는 내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예 그리고 아니오다. 우리밀로 빵을 잘 구울 수 있으니 "예"이고 빵을 잘 구울 수 없으니 "아니오"이다. 빵을 잘 구울 수도 있고 잘 구울 수도 다니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이런 말장난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건 현재 우리밀의 특성과 한계 때문이다.


우리밀로 빵을 잘 구울 수 있다?!

그렇다. 특히 식사빵이라고 불리는 깡빠뉴, 바게트, 치아바타 류의 린 브레드*는 우리밀로도 잘 구울 수 있다. 물론 수입밀의 제빵성과는 차이가 있지만 나름 훌륭한 빵이 나온다.


그렇다면 아니오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밀은 두 가지 관점에서 빵이 잘 되지 않는다. 첫째, 우리밀로는 제대로 된 리치브레드**를 굽는데 한계가 있다. 물론 리치브레드를 굽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리치브레드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과 질감을 구현해내기가 어렵다. 단적인 예로 닭가슴살처럼 쪽쪽 찢어지는 식빵의 질감은 우리밀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렵다.


둘째, 밀가루 특성의 일관성의 한계이다. 기술자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다. 프로세스가 한번 정해지면 좀처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베이커들도 이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레시피가 한번 정해지면 레시피를 변경하려고 하지 않는다. 일관성의 문제가 발생하는게 바로 이 지점이다. 밀가루 특성이 일관성 없이 들쭉날쭉한데 배합표 변경없이 똑같은 배합표로 빵을 만들면 빵이 들쭉날쭉하게 된다. 극단적인 경우 같은 밀가루로 같은 배합대로 빵을 만들어도 오늘은 빵이 잘 부풀 가다도 다음 주에는 잘 부풀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험을 한 베이커들은 한결같이 우리밀은 빵이 잘 안된다고 말한다.


그럼 무엇이 문제일까?

첫 번째 문제의 원인은 우리밀의 글루텐 함량과 품질이다. 현재 국내에서 재배되는 밀 품종과 각 품종의 단백질 함량이다. 린브레드에 적합한 밀가루의 단백질 함량이 11%~12%이니 금강밀, 조경밀, 앉은뱅이밀 정도가 빵용 밀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금강밀과 조경밀(조경밀은 올해부터 백강밀로 대체된다고 한다)은 육종 된 밀이고 앉은뱅이밀은 토종밀이다. 하지만 리치브레드용 밀가루는 12% 이상의 단백질 함량이 요구되니 국산 밀은 리치브레드에 적합한 품종이 없다고 봐야 한다.


앞서 린브레드 제빵 시 우리밀의 제빵성이 수입밀만 못하다고 하였다. 우리밀은 단백질 함량만으로는 수입밀 특히 프랑스 밀과 유사하지만 단백질의 품질엔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프랑스 밀과 우리밀로 만든 빵의 내상의 질감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우리밀 품종과 단백질 함량(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 홈페이지 자료 수정 보완)


두 번째 문제의 원인은 밀 알곡의 수매와 제분에 있다고 본다. 밀 알곡은 밀이 다음 세대를 위해 생명체이다. 생명체이다 공산품처럼 모두 다 똑같을 수가 없다. 난 항상 밀에도 와인처럼 떼루아가 있다고 말한다. 와인이 포도를 재배하는 지역의 토양, 기후, 재배방식에 영향을 받듯이 밀도 이들의 영향을 받는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재배된 동일 품종의 밀로 빵을 만들어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밀가루 특성의 일관성을 위해서는 밀 알곡 단에서부터 관리가 들어가야 한다. 각 농가가 재배한 밀의 특성을 분석해서 잘 블렌딩을 해야 한다.


제분이 밀가루 특성의 일관성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국내엔 삼양사, 대한제분, CJ 등 대형 제분소와 대성팜, 산아래제분소 등의 소형 제분소가 있다. 모두 롤러 제분기로 제분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제분 설비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제분 설비의 차이가 밀가루 특성의 일관성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 소형 제분소에서 나온 밀가루보다는 대형 제분소에서 나온 밀가루가 일관성 측면에선 월등하다.


제분에 대해서 한 가지 더 언급해야 할 것이 블렌딩이다. 이 블렌딩은 서로 다른 밀 품종의 블렌딩과 목표하는 제빵 특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첨가하는 첨가제의 블렌딩을 의미한다. 국내에서 많이 쓰는 프랑스 밀가루의 성분표를 살펴보면 활성 글루텐, 아스코빅 산, 아밀라아제 등이 소량 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성분이 바로 밀가루의 제빵 특성 향상을 위해 첨가하는 것들이다. 프랑스의 제분소는 특정 밀가루의 제빵 특성에 대한 목표를 정해놓고 매년, 매 배치의 밀가루의 특성을 분석하고 미치지 못하는 목표가 있다면 이들 첨가제를 첨가하여 그 목표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제분사들이 밀가루 제빵 특성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뭐 어쩌자는 건 아니다. 솔직히 어찌해보려 해도 할 만한 게 딱히 보이질 않는다. 일 년에 240만여 톤의 밀과 밀가루를 소비하지만 직접 생산하는 밀은 2만 톤도 채 되지 않는다. 이마저도 매년 줄고 있는 상황에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게 현실이다.


그래도 빵이 로컬 재료로 만드는 로컬푸드가 되어야 하니 로컬 재료인 밀에 대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나는 밀 품종의 다양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여러 번의 빵 테이스팅을 열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수집한 다양한 토종밀과 고대밀로 만든 빵을 먹어보고 비교하는 자리였다. 밀 품종만 다를 뿐인데 빵의 모양, 식감, 풍미가 다 다르다는데 놀라시는 분들이 많았다. 밀 본연의 풍미를 살린 제빵, 그리고 본연의 풍미가 확실한 다양한 밀 품종, 나는 이게 우리밀이 가야 할 길이라고 믿는다.


언젠가 우리 땅에서도 이런 것들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미국 씨앗운동을 이끌어가고 있는 워싱턴주립대의 더브레드랩(이미지 출처: 더브레드랩 인스타그램)


*린브레드: lean bread. 버터, 우유, 계란, 오일 등 유지가 들어가지 않은 빵을 일컫는다. 깡빠뉴, 바게트, 치아바타 등이 대표적이다.

**리치브레드: rich bread. 버터, 우유, 계란, 오일 등 유지가 들어간 빵을 일컫는다. 브리오슈, 식빵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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