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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Apr 18. 2020

토종농부 황진웅을 만나다

농부 황진웅, 그는 공주 계룡산 아래에서 밀, 벼, 보리, 수수 등 곡물 농사를 짓는다. 그의 논과 밭에서 자라는 곡식은 모두 토종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토종농부라 부른다. 토종은 농부가 수확한 씨앗 중 튼실한 것을 골라 놓았다가 이듬해 다시 심는 씨앗이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로부터 다시 아들로 전해지는 씨앗이 바로 토종이다.


2016년 어느 날 선생을 알게 되었다. 선생과 어떻게 연이 닿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밀 빵 굽기에 한참 빠져 우리밀을 찾는 과정에서 황선생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 난 전국 각지의 우리밀로 빵 굽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진주의 앉은뱅이밀, 장흥의 흑밀과 금강밀, 구례의 금강밀, 괴산의 금강밀, 그리고 공주의 금강밀과 앉은뱅이밀. 그간 빵 굽기에 사용했던 밀이다. 처음에는 남쪽 지방에서 재배한 밀을 사용 하다가 점점 중부지방에서 재배되는 밀로 관심이 옮겨졌다. 빵을 구우면서 남부보다는 중부에서 재배한 밀로 구우면 빵이 더 잘 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은 듯하다.


황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앉은뱅이밀을 사고 싶다고 했다. 

"뭐 하시게요?"

"빵 구워 보려고요."

"앉은뱅이밀로는 빵이 안될 텐데요." 

"그래도 보내 주세요. 우선 2kg로만."

 

며칠 후 조그마한 밀가루 봉지가 택배로 배달되었다. 봉지를 뜯은 후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오호 향이 좀 다른 걸. 손을 넣어 밀가루를 한 꼬집 잡아 입에 털어 넣었다. 오물오물. 구수한 향이 짙게 났다. 이게 책에서 읽었던 토종밀의 진한 향이구나.


황선생의 앉은뱅이밀로 구운 빵 맛이 궁금했다. 바로 재료를 계량하여 반죽을 했다. 앉은뱅이밀은 지금까지 써온 밀에 비해 물을 더 많이 흡수했고 반죽은 더 끈적했다. 순간 푹 퍼진 나의 첫 빵이 생각났다. 제대로 부푼 빵을 굽기 위해선 밀가루를 더 넣어야 했다. 분석 데이터를 통해 앉은뱅이밀로 만든 반죽이 왜 이런지를 알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다. 


빵이 익기 시작하자 거실은 온통 빵 내음으로 가득 찼다. 누룽지처럼 구수한 향이었다. 빵은 크게 잘 부풀지 않았다. 식기를 기다려 잘라보니 내상은 기공이 거의 없이 조밀하다. 빵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면 영락없는 누룽지 향이다. 


며칠 후 빵 두 덩이를 황선생께 보내드렸다. 받고 나서 바로 전화를 거셨다. 

"빵 이쁘게 잘 나왔네!"

선생의 흥분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이제 선생은 말한다.

"앉은뱅이밀로 빵 잘 돼~~" 


토종밀, 고대밀 종자를 건네다

우리 땅 이곳저곳에서 기르는  이런저런 품종의 밀과 밀가루로 빵을 구우며 좀 더 풍미가 좋고 빵도 좀 더 잘 되는 밀 품종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되었다. 급기야는 고대밀과 외국의 토종밀을 수집하여 직접 기르게 되었다. 2015년 가을에 시작한 일이다.


2015년에 구해온 한 줌의 밀알은 다음 해 페트병 반만큼의 양이 되었고 3년 차에는 20킬로 이상이 되었다.  3년 차 가을 밀파종을 위해선 함께 밀농사를 지어줄 농부님이 필요했다. 앉은뱅이밀로 연을 맺게 된 황선생과는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었다. 자연재배로 농사짓는 황선생과 환경친화적인 농법으로 텃밭농사를 짓는 나는 농사에 대한 철학이 비슷했기에 금세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 내가 증식하고 있는 모든 종자를 황선생께 넘겼고 증식 4년 차인 2018년 200킬로 이상을 수확하게 되었다. 캐나다 토종밀인 레드파이프(Red Fife)가 그 주인공이었다. 나는 아쥬드블레에서 그 밀로 빵을 구웠고 레드파이프 통밀빵이라 이름 지었다. 레드파이프 통밀빵은 특유의 달큰한 끝 맛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농부장터인 마르쉐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지난 4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내가 처음 황선생에게 전화한 날로부터 2, 3년이 지난 어느 날 황선생은 말했다. 내가 처음 전화한 날 전화를 끊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별 미친놈이 다 있네. 앉은뱅이밀로 무슨 빵을 굽는다고."

앉은뱅이밀 농사를 짓고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 밀로 빵이 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황진웅 만세!"

아쥬드블레라는 동네빵집을 운영할 당시 황 선생의 2018년 산 앉은뱅이밀 햇밀로 구운 빵이 오븐에서 갓 나왔을 때 나는 이렇게 외쳤다. 나는 지금도 황선생이 재배한 여러 가지 밀로 빵을 굽는다. 빵을 구울 때마다 밀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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