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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달래 Jun 04. 2020

모순

양귀자, 모순

1.  내 속 어딘가를 쿡쿡 찌르는 문장의 연속. 따갑지만 시원하고 불편하지만 편ᄋᆫ하다. 알고 있지만 묻어두었고 모르는 척 하다보니 정말 모르게 되는 것 같던 나날들.
 나를 설명해보라는 요구를 받는다면 뭘 말할 수 있을까. 이름 다음엔 침묵, 나이 다음엔 침묵, 직업 다음엔 역시 침묵. 침묵침묵침묵. 결국 나를 설명하는 건 침묵 뿐이라는 사실에 입 안이 쓰다. 안진진이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 이렇게 살아선 안된다며 눈물 흘리는 첫 장, 첫 장 세번째 줄의 그 문장을 본 순간부터 나는 안진진과 함께 깨어나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겠다고 함께 외쳤다. 내가 크기만 변하는 우울을 매일같이 가지고 사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내 삶의 부피가 너무 얇아서.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는 문장이 뼈 아프다.


2.  모순으로 얽힌 이 삶으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은 결국 한 몸이라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받아들이기란 쉽지 ᆭ다. 죽지 않았으면 조겠다.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죽지 않는 삶에 안식이란 없다. 행복하기만 한 삶에 더 큰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소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받아들일 수 없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삶은 그런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삶이 되었다. 삶의 부피는 행복과 불행의 줄다리기를 통해 넓어진다. 내 삶이 행복하기만 했다면, 사랑했던 사람들의 죽음이 없었다면 나는 생명을 연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학에 의미를 두지 않았을 것이며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내 불행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의 나는 불행하여 더 넓어졌다.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슬프고 괴로울지언정 도피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내게 있을 죽음들이 너무나 두렵기에 오늘의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더 사랑한다.


2017.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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