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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빠가 되었다.

by 글쓰는 범고래

세상 모든 근심을 다 가지고 사시는 듯했다.


밖에 나가면 차 조심, 사람 조심, 신호가 바뀌어도 조금 있다 건너라, 인스턴트 음식 많이 먹지 마라, 너무 늦게 자지 마라...


어떻게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자식들을 키웠는지 의아할 만큼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수 천 번 하던 잔소리를 하고 또 하셨다. 그리고 그 잔소리의 양과 종류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그럴수록 어머니의 잔소리에 대처하는 나의 요령도 늘어갔다.




욕심이 끝이 없으셨다. 만족하시는 법이 없으셨고, 칭찬에 인색하셨다.


더 잘해야 하고,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는데, 아버지께 그러한 말은 새우에게도 적용되지 않았다.


어릴 땐 서운했지만, 이제는 그럴려니 하게 되었다.




결혼하기 전 나는 자식들에게 그러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쿨하게, 너희들과 나는 각자 독립적인 존재로, 각자의 인생에 충실할 것! 인간은 원래 홀로 살아가는 존재니까.


그 마음 변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둥이들이 태어나기 며칠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딸이 너무 이쁘면 어쩌지? 이 세상의 늑대 같은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빠 말고는 믿을 남자는 없는데.


아들은 강해야 하는데, 태권도를 시켜야 할까? 이 험한 세상에 어찌 살아가게 하지? 온갖 생각이 많아질수록 와이프는 나의 모습에 피곤해했다.


그렇게 나의 쿨함은 먼지처럼 사라졌다.



둥이들이 태어나고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모를 만큼 정신없는 육아의 시간을 마주했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 부부는 진이 빠진 채 멍하게 앉아있는 서로의 모습을 마주했다.


내 속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야 했지만, 한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둥이들은 우리 부부의 행복을 머금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둥이들의 성장 속도만큼 내 속의 욕심과 걱정도 함께 자라났다. 어느새 나는 나에게 잔소리하던 어머니가 되었고, 기대치를 높이던 아버지가 되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 내가 그토록 다짐하던 '자식의 입장'은 사라졌다. 그 자리엔 결코 이해하지 못하던 '부모의 마음'만 한가득 자리 잡았다.


길을 걷다가 발에 밟히는 작은 돌멩이를 보면 아장아장 걷던 우리 아기들이 저 돌멩이에 걸려 넘어질까 걱정하던 마음이 꿈틀거렸고,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유모차를 볼 때면 좀 더 안전하게 뒤로 가 있으면 좋겠다는 조바심이 오지랖을 부렸다.


하나에서 열까지, '피곤한' 부모가 되어버린 것이다. 부모가 되어서 내가 이해하게 된 것은 그토록 나를 피곤하게 하던 부모님의 잔소리였다.


그렇게, 나는 아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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