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바에게 마음은 있는가?
약 38억 년 전, 지구의 바다에 유기 분자의 집단이 나타났고, 생명의 기본원리인 자기보존(생존)과 자기복제(번식)에 적합한 유기물질인 리보핵단백질(RNP)을 기반으로 생명체가 탄생했다.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가장 단순한 몸이 탄생한 것이다. 태초의 생명체인 단세포 생물은 내재한 속성인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치 아래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이 기본 목표는 지금도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생명의 산실이었던 초기 바다와 원시 대기에는 산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이때의 생명체는 무산소를 기반으로 유기물을 먹어 치우며 번성했다. 바다에 유기물이 부족해지자 풍부한 물과 햇빛을 이용해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남조류)이 나타났다. 그들은 광합성의 대가로 산소를 대량 뿜어내기 시작했고, 그 바람에 급격한 환경변화가 일어났다.
지구의 환경은 무산소 생명체에게 위험한 수준의 산소를 포함하게 되었고, 이런 가혹한 변화를 극복하지 못한 숱한 무산소 생명체들이 절멸의 길을 걸었다. 반대로 발 빠르게 광합성 하는 생명체와 결합하며 환경변화에 적응한 생명체들은 번영의 길을 걸었다. 적응과 자연선택이 성공하여 살아남은 생명체가 현재 지구에서 발견되는 종들의 조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안심할만한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생명체를 둘러싼 환경은 늘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언제든 도태의 길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단세포생명체 중 일부는 여러 세포를 규합해 다세포 생명체로 나아갔다. 다세포 생명체는 기능 향상을 위해 특수한 형태로 세포 분화에 나섰다. 예를 들면 운동 기능에 특화된 운동 세포, 소화에 특화된 소화 세포 따위로 기능에 맞게 모양을 변형시킨 것이다. 이들 중 외부정보를 신속하게 파악하는 데 필요한 인식기능인 신경관을 갖춘 생명체가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다양한 기능으로 특화된 다세포유기체로 몸이 진화하면서, 덩치는 커지고 시스템은 복잡해졌기에 이 상황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필요성이 생겼다. 커진 몸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속한 정보 파악 능력뿐만 아니라 그 정보를 각 조직에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유기체가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신경세포들의 네트워크인 뇌와 정보전달 통로인 척추를 거느린 척추 생명체인 어류로, 양서류로, 파충류로, 조류로, 포유류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약 60조 개의 세포 연합체를 거느린 인류를 탄생시켰다.
정자와 난자의 만남은 우주의 빅뱅처럼 세포분열을 통해 폭발적으로 크기를 확장하고 형태를 잡아간다. 마치 생명체의 38억 년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수정 3주 차가 되면 2mm 정도의 신경관이 형성되고 이 신경관은 뇌로 성장한다. 최초로 신경관을 갖춘 생명체가 약 5억 4천만 년 전에 출현한 걸 감안(勘案)하면 약 32억 년 동안 진행된 진화의 역사를 3주의 과정으로 압축하는 것과 같다.
이윽고 4주가 되면 척수에서 신경세포가 분화되고, 5주에는 키가 1cm 정도로 자라며, 지느러미 같은 손발이 나오고 뇌간과 척수가 만들어져 약 5억 년 전에 나타난 원시 물고기의 뇌와 유사한 기능을 갖추게 된다. 7주가 되면 손·발가락이 형성되어 인간 신체의 원형이 갖춰지며 뇌도 파충류 수준의 대뇌(종뇌라고 한다)로 발달한다.
17주에는 140억 개의 신경세포를 갖춘 대뇌피질로 성장한다. 그러다 26주가 되면 대뇌를 기능별로 구획(중심구, 두정 후두구, 실비우스 열 등)하며 어엿한 인간의 뇌의 면모를 갖춘다. 30주가 되면 바깥의 소리를 듣게 되고 빛을 희미하게 감지한다. 마침내 37주가 되면 대뇌피질의 주름도 늘어 뇌의 모양이 거의 완성되며 출산의 때를 기다린다.
생명체와 생존 의지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생존 의지 없는 생명체는 없고 생명체 없는 생존 의지는 공허하기 때문이다. 생명체 그 자체에 내재한 것으로 보이는 생존 의지는 마음의 원형이며 진화의 강력한 원동력이다. 왜 생존 의지가 마음의 원형인가? 생명체는 이 생존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생존 의지와 그 결과물인 행동 사이에는 어떤 과정이 뒤따르는가?
생존 의지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것에 대한 욕구를 낳기 마련이고, 필요와 욕구가 효과적으로 충족되기 위해서는 인식과 판단이 필수다. 대표적인 단세포생명체인 아메바는 물속을 떠돌다가 무언가와 맞닥뜨리면(지각) 양분인지 위험 요소인지 판단하고, 먹거나 피하거나 양단간에 결딴을 내려야 한다. 또 다른 단세포생명체인 남세균(남조류)이 광합성(필요/욕구)을 하려면 햇빛을 인식해야 한다. 햇빛이 풍부하면 머물러야 하고, 햇빛이 부족하면 햇빛이 있는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마음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인 인식과 판단이 갖춰져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단순하긴 하나 단세포생명체도 마음에 의거하여 움직인다. 따라서 심리학이 개입할만한 마음은 없지만, 아메바에게도 마음은 있는 셈이다.
*독일의 생물학자인 막스 하르트만과 동물학자인 루트비히 룸블러(Ludwig Rhumbler)는 아메바에게 여러 자극(화학적, 기계적, 시각적 자극)을 연속적으로 가하는 실험을 통해 자극의 양과 질에 따라 아메바가 자극을 찾아가거나 자극을 피해 몸을 동그랗게 말고 죽은 척하거나 둘 중 한 가지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게다가 아메바 안에 유동(流動)적인 형태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반투명 흐름이 중심에서 표면으로 흐른 후에는 아메바가 대상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반대로 대상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움직임 다음에는 표면에서 중심으로 반투명 흐름이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아메바가 쉬고 있을 때 팽창과 수축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형태로 맥박 운동이 나타나는 것을 알았다. 팽창 운동 다음에는 반투명 흐름이 중심에서 표면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고, 수축 운동 다음에는 반투명 흐름이 표면에서 중심으로 이동했다.
하르트만과 룸블러의 연구 덕에 라이히는 에너지 흐름의 기본적인 두 방향, 즉 쾌감 속에서 ‘세상을 향하는 것’과 불안 속에서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을 아메바 운동과 연관시킬 수 있었고, 쾌감과 불안이라는 이분법에 교감과 부교감신경 반응이라는 이분법을 더 보탤 수 있었다. ‘확장하는’ 아메바 반응에서는 중심에서 표면으로 반투명 흐름이 이동했고(사람의 부교감 반응과 상응) ‘수축하는’ 반응에서는 정반대로 표면에서 중심으로 반투명 흐름이 이동했다(교감 반응과 상응).
단세포생명체가 양분을 감지해 흡수하고 자극(위협)이 가해지면 피하는 따위의 단순한 반응은 생존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판단의 산물로써 지성의 맹아(萌芽)이다. 즉 원시 지성인 셈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자극을 감지하는 수준이었다가 생사를 오가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 자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더 높은 인식의 수준으로 발전되었다.
이 지성은 생명체를 더 좋은 선택지로 이끈다. 이 장소는 어디이며, 여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저 대상은 무엇이고 생존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인식과 판단으로부터 행위가 결정되고, 그 행위의 결과는 시행착오를 거쳐 학습되어 동종에 전파되고 후손에게 대물림된다.
이렇게 해서 각 생명체 고유의 지향성이 만들어진다. 오랜 경험으로 학습된 지향성에 따라 나방은 빛을 향해 움직이고 지렁이는 빛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꿀벌은 꽃을 향해 비행하고 연어는 강을 거슬러 헤엄친다. 이 지향성을 종의 기본특성이라고 부른다.
생존 의지 → 필요/욕구 → 인식/판단 → 행동 → 경험 → 시행착오 → 학습 → 행동 지향성
생명체는 각자의 지적인 능력에 걸맞게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더 나은 생존을 위해 형태를 스스로 조직해나간다. 예컨대 더 빨리 움직여야 먹이를 차지할 확률과 포식자를 피할 확률이 높아지므로 운동 세포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진화해 운동 전문기관인 다리가 생겼다. 하지만 애써 획득한 먹이를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다면 얼마나 에너지 낭비인가! 그래서 효율적으로 소화 흡수시키기 위해 소화 전문 세포를 만들었고 이것은 위장과 소장 따위의 소화 전문기관으로 진화했다.
유기체의 덩치가 커질수록 정보전달의 속도가 중요해진다. 그래서 재빠른 정보전달을 위한 신경세포가 만들어졌고, 정보전달 전문기관인 신경관으로 진화했다. 전문화된 다양한 기관들을 조화롭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중앙제어시스템이 필요하다. 게다가 고등 생명체의 생존율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인 인식과 판단의 수준과 학습 능력 향상은 필수이기에 뇌가 탄생했다.
몸의 시스템이 복잡하지 않을 때는 단순한 원시 지성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수많은 세포조직을 거느린 거대한 유기체가 되어갈수록 효율적으로 행동하기 위한 더 높은 수준의 지성이 요구된다. 호랑이의 이빨이 목덜미에 닿았으나 아직 뚫지는 않은 순간 반응하는 것보다는 멀리서 눈으로 호랑이를 보고 미리 반응하는 쪽이 생존에 훨씬 유리하다. 이것이 감각기관이 발달한 이유다. 하지만 그보다는 호랑이의 행동 양식과 습성을 이해하고 호랑이의 출현을 예측하고 대책을 세운다면 그것이 훨씬 더 나은 방법일 것이다(안타깝게도 인류는 이것을 너무 잘해서 호랑이는 현재 멸종위기에 처했다).
이해하고 판단하고 예측하고 해결책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알다시피 인간은 지구상에서 생각하는 능력 즉, 지적 능력을 가장 극대화한 생명체이다.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 대신 더 강한 무기를 개발한 것도, 강력한 근육 대신 더 빠른 이동수단을 개발한 것도, 나일강 홍수를 측량술로, 나아가 기하학으로 발전시킨 것도 바로 지적 능력 덕분이다. 지적 능력의 수준은 타 동물의 추종을 불허하는 복잡한 뇌의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생각하는 세포로 불리는 뉴런(신경세포)이 140억 개나 뇌에 포진해 생각의 과정을 전폭 지원한다.
생각은 신체 기관의 한 부분인 대뇌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신체·심리 과정이다. 여기서 ‘대뇌를 중심으로’ 일어난다는 말은 말 그대로 대뇌를 중심으로 일어난다는 말일 뿐, 다른 신체 부위와 무관하다는 말이 아니다. 마음은 물질을 통해서 기능해왔고, 물질을 조작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작용의 한 종류인 생각은 몸에 영향을 미치며 그 역도 성립한다. 그러므로 몸은 마음 덩어리 즉, 구체화한 마음이다.
한 가지 실험을 살펴보도록 하자. 사육사가 원숭이 우리에 거울을 갖다 놓는다. 호기심 많은 원숭이는 즉시 거울 앞으로 다가간다. 그러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적대감을 내보이며 피한다. 다시 다가간다. 마찬가지로 깜짝 놀라 적대감을 보이며 피한다. 이 패턴을 무한 반복한다. 이 원숭이는 거울 속의 원숭이가 자신인 줄 결코 깨닫지 못한다. 잔인하게도 이 원숭이는 지금까지도 놀라고 있을지 모른다.
사육사가 침팬지 우리에 거울을 갖다 놓았다. 침팬지 또한 즉시 거울 앞으로 다가간다. 원숭이와 마찬가지로 화들짝 놀라서 적대감을 내보이며 피한다. 이윽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거울을 살핀다. 여전히 긴장된 상태지만 이전과 같지는 않다.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그리고는 거울 속의 침팬지가 자신임을 알아차린다.
이것은 발달심리학에서의 한 실험이다. 우리는 어떨까?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자신임을 너무나 당연히 알고 있다. 심지어 그러려고 거울을 만든 것이 바로 우리 아니던가!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갓난쟁이였을 때는 펄쩍 뛰던 원숭이와 같았다는 것을! 그러면 언제부터 이것이 가능할까? 심리학자들은 대략 18~24개월 정도가 되어야 거울이나 사진 속의 자기를 인식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거울을 보며 “이게 나구나!” 할 수준은 아니었다는 말씀이다.
원숭이는 그 몸의 성장 정점에서도 이걸 모르지만, 인간은 몸의 성장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이걸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이상 나아간다. 원숭이가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없는 이유는 철학적 사유를 할 만한 몸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몸이란 생각하는 세포인 뉴런들이 잔뜩 모여 있는 뇌라는 특정 부위를 지칭한다. 가끔 뇌는 몸의 예외나 열외인 것처럼 부지불식간에 유체 이탈 같은 논의를 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하시라. 뇌야말로 몸 중의 몸이라는 사실을!
인간의 몸을 갖지 않은 생명체의 마음 수준이 인간과 같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시사(示唆)하는가? 이는 곧 몸의 수준이 마음의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갓난아기의 마음 수준과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내 마음의 수준이 같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성을 통한 철학적 사유는 내가 존재한다는 확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나구나”라는 확인으로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나오고, 그런 다음 “내가 태어나 살아가는 이 세상은 무엇이며, 저 하늘 너머 우주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물리학과 프로이트의 심리학 그리고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탄생한 것도 바로 이 몸(뇌)이 있기에 가능했다.
사실,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변적인 존재이다. 이 말은 단지 세월에 따라 성장하고 늙어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의지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뜻이다. 우리 몸이 단 하나의 세포로 시작해서 지금껏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안다면 당연한 사실이 아닌가! 단지 변화의 수준은 의지의 강도와 연습의 양에 달려있을 뿐이다.
우리가 어떤 변화의 의지를 갖고 연습하면 그 기능이 점점 발전한다. 그러면 그 형태와 구조도 알맞게 변화한다. 가령 운동선수의 몸과 보통 사람의 몸은 다르다. 운동선수라도 축구선수의 몸과 야구선수의 몸이 다르고, 단거리 달리기 선수와 마라톤 선수의 몸은 또 다르다. 명상가의 뇌와 보통 사람의 뇌는 다르다(명상가의 뇌는 일반인에 비해 전전두엽이 3~4배 더 두껍다). 몸의 변화는 근육뿐만 아니라 신경과 뇌 등 신체조직 전반에 걸쳐 일어날 수 있다.
“뇌는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니라 환경에 반응하고 변화한다. 그것을 뇌 가소성(plasticity)이라 부르는데, 그 가소성이 대단하다. 이 가소성을 생각해보면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