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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마음, 그 기원에 관한 이야기 2

감정은 무엇이고 왜 일어나는가?

by 이강언

감정은 무엇이고 왜 일어나는가?


아메바에서부터 대왕고래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몸은 외부의 압력에 저항하며 내부의 압력을 알맞게 조절하여 그 형태를 유지하고 생명 활동을 이어간다. 지상에 사는 몸은 기압, 수중에 사는 몸은 수압을 기본 압력으로 하여 형태가 조직된다. 사람의 몸을 심해에 갖다 놓으면 외부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형태가 파괴될 것이다. 반대로 심해 생명체를 공기 중에 갖다 놓으면 되레 외부압력이 약해져 내부 압력의 팽창으로 부풀어 오르며 형태가 붕괴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외부압력에 대한 극단적인 예이긴 하다.

비행기를 탈 때를 제외하고,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여건 아래에서 기압을 압력으로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지상의 모든 몸이 그러하듯 사람의 몸도 기압을 기준으로 내부의 압력이 조절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또 하나의 압력은 중력이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끊임없이 외부 공기와 인체 내부의 압력 차이를 조절하며 일정한 맥동을 일으키는 생명 유지 활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활동을 호흡이라고 부른다. 호흡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내부 압력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흉곽 아래에 붙어있는 횡격막은 체내 산소가 부족해지면 밑으로 수축하여 흉강의 압력을 낮추어 공기가 흡입될 수 있도록 조절한다. 채워진 공기로 흉강의 압력이 높아지면 횡격막은 다시 이완해서 체내공기를 밖으로 내보낸다. 몸은 계속해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일정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여기까지는 그저 자율신경과 관련 근육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생리적인 활동일 뿐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외부의 힘이나 압력이 내부로 전해질 때 일어나는 물리적이며 생리적인 현상을 우리는 감정의 형태로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압력은 감정을 낳는다. 조금 더 주의 깊게 호흡이 일으키는 내부 압력의 변화를 관찰하다 보면, 그것이 미묘한 감정변화를 수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의식적으로 더 깊이 호흡하면 내부압력변화의 폭도 넓어진다. 그러면 감정적 경험도 더 분명해지고, 심화한다.

깊고 느리고 고르게 호흡해 보라. 그러면 충분한 팽창의 기쁨과 자연스러운 수축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왜 그러한가? 들숨으로 인한 팽창이 기쁨을 일으키는 이유는 생명체가 필요로 하는 물질의 흡입이기 때문이고, 날숨에 의한 수축이 안도감을 주는 이유는 불필요한 독소의 배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몸이 긴장되어 있으면 충분한 확장도 자연스러운 수축도 불가하므로 삶의 경험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음식의 섭취로 위장이 적당히 팽창하면 만족감이 일어난다. 하지만 과식으로 지나치게 팽창하면 도리어 불쾌감이 일어난다. 위장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찌꺼기가 잘 배설되면 안도감을 느낀다. 변비로 인한 대장의 압력증가는 불쾌감을 일으킨다. 동화되어야 할 생명 유지 물질의 흡입을 통한 적절한 팽창과 이화 되어야 할 독소나 찌꺼기의 배출을 통한 적절한 수축은 만족감과 안도감을 일으킨다.

감정 경험을 중심에 놓고 관찰해도 신체 압력과 감정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벅찬 감정이 올라온다면 가슴의 압력이 높아지고 호흡도 항진된다. 반대로 실망감이나 우울감은 가슴의 압력을 평균 이하로 떨어뜨려 호흡을 저하할뿐더러 자세도 무너뜨린다. 결정적인 순간 긴장이 고조되면 근육이 경직되어 숨죽인 채 맥동의 주기가 짧은 고압력을 견뎌내야 한다. 그러다 상황이 종료되면 맥이 풀린 듯 주저앉거나 펄쩍펄쩍 뛰고 환호하거나 아니면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폭발시킨다.

호흡은 인체의 가장 큰 맥동이며 가장 큰 압력을 만든다. 이는 거시적 감정의 파도와 동조한다. 따라서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은 호흡의 맥동도 불규칙하다. 반면, 감정이 억압된 사람들은 근육무장으로 인해 호흡 맥동의 범위가 지극히 제한적이며 높은 압력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감정 억압자들은 언뜻 감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마치 댐으로 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아 억지로 잔잔해진 인공 호수처럼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 없어 보이지만, 흐름이 차단된 호수의 바닥에 온갖 찌꺼기가 쌓여 결국 물이 썩듯, 억압된 감정은 가라앉아 겉으로는 감정적 동요가 없어 보이지만, 이것은 평온함이 아니라 냉담한 무관심이나 회피에 불과하다. 배우 우디 앨런의 “나는 화를 내지 않아. 하지만 속에서는 종양이 자라고 있지.”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속은 썩어서 문드러지고 있으며, 그의 존재와 삶 전체에 걸쳐 비관적이며 냉소적인 색채가 드리운다.

따라서 삶의 자발적 기쁨과 행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호흡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호흡을 제한하는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 광범위한 라이히류 신체심리치료 기법(The method of Reichian Body psychotherapy)에서 근육무장을 풀고 호흡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회복하는데 주안점을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부압력의 증가와 내적 불쾌감의 증가

누군가가 가슴을 누른다. 점점 세게 눌러 압력이 높아진다. 이때 당신은 어떤 느낌을 경험할까? 몸에 물리적 압력이 높아지면 불쾌감도 증가한다. 이른바 압박감이다. 몸이 견딜 수 없는 압력을 가하면 극심한 압박감(통증)과 함께 신체 파괴가 일어난다. 신체조직을 파괴할 정도의 빠르고 강한 압력을 충격이라고도 부른다. 압박감의 강도가 점점 높아져 최고조에 달하면 불쾌감의 극치인 공포감으로 변하는데, 이것은 누군가에게 먹힐 때의 몸이 겪는 압력 경험과 유관하다.

만일 당신이 악어에게 물린다면 몸에 압력이 가해질 테고, 가해지는 압력이 높아질수록 통증이 증가하고 신체는 파괴되며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 죽음에 이르는 물리적 압력은 단지 물리적 압력으로 그치지 않는다. 생명체의 생존 의지는 압력을 불쾌감이라는 감정으로 인지되도록 처리해서 생존율을 높이는 전략을 취한다.

따라서 외부로부터의 압력이 높아져 죽음에 이르는 물리 과정은 불쾌감이 높아져 공포감에 이르는 심리 과정과 비례한다. 압력의 증가와 죽음의 임박은 비례 관계에 있으므로 압력증가와 죽음의 공포는 등가적으로 몸의 기억에 각인된다. 몸에 각인된 압력의 기억은 DNA로 동종의 후손에게 전해져 보기만 해도 공포를 일으켜 즉각 행동 반응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맹수의 이빨에 짓눌리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졌을 때 몸에 가해지는 충격은 대부분 죽음으로 종결되기에 종의 보존을 위해서는 심리적으로 불편하더라도 공포감을 물려주는 편이 나은 선택이다. 그래서 맹수를 만나거나 절벽에 서면, 종(種)으로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선험(先驗)이 순식간에 자동으로 시뮬레이션 되면서 압력의 심리적 극치인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직접 물려본 적이 없어도 맹수는 두렵고 직접 떨어져 본 적이 없어도 낭떠러지는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이유이다.

더 나아가 인간의 뛰어난 정신적 능력 덕분에 위험 요소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두려움이나 압박감을 느끼게 되었다. 실질적인 위협이나 위험에 직면하지 않았음에도 심리적으로 그렇다고 믿으면 실제 상황과 똑같은 반응을 일으킨다. 예컨대, 면접을 보는 것과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은 분명 다르지만, 면접에서 떨어지면 자신의 인생도 끝장이라고 여기면 벼랑 끝에 섰을 때와 같은 생리 반응이 나타난다.

이런 유(類)의 일은 가벼운 불안감에서부터 인지적 치료가 필요한 극도의 강박감이나 공포감에 이르기까지, 사안의 경중을 달리할 뿐 비일비재하게 일상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외부압력과 내적 압박감은 완벽하게 원인과 결과를 공유한다. 심리적 압박이 있으면 몸도 뭔가에 눌린 것처럼 반응한다. 근육은 긴장되고 호흡은 항진되며 심장박동은 빨라진다. 그러다가 심리적 압박이 초과하면 심리적 붕괴가 일어나 일종의 정신적 죽음인 무기력이나 우울 상태에 빠진다. 그러면 마치 야생동물이 포식자에게 쫓기다가 포획되면 발버둥 치다가 죽기 직전에 축 늘어지는 것처럼 몸의 자세도 무너지고 신체기능도 저하된다(이것이 성격 구조로 자리 잡으면 체형으로는 좌절형이 된다).



*호흡 지수(Breath Set-point)

외적인 스트레스 요인도 없고 내적인 요인도 없는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자발적인 호흡의 리듬이 개인의 호흡 지수(Breath Set-point)이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의 휴식 시 호흡수는 10~12회, 마시는 공기량은 1분당 표준 4~6ℓ다(이런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 그저 참고만 하면 좋겠다). 자율신경의 항상성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그러다가 스트레스가 주어지면 내부 압력이 높아져 자율신경계는 흥분(교감신경)되고 호흡은 빨라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일시적 항진을 겪은 후 원래의 상태로 재빨리 되돌아가는 회복력이다. 스트레스가 만성화하면 원상태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항진된 채로 고정(set)된다. 그러면 후천적으로 호흡 지수가 나빠지고 자율신경도 항상성 능력을 잃는다. 이것을 자율신경 실조증이라고 부른다.



원시 감정의 태동


우리가 매 순간 경험하는 팽창과 수축이라는 움직임은 겉으로 보이는 몸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호흡이라는 인간 유기체 차원의 거시적 맥동이 존재하는 것처럼 세포 차원의 미시적 맥동도 존재한다. 세포 하나의 차원에서도 팽창과 수축이라는 기본적인 맥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여기에서부터 비롯되어 더 큰 조직으로 확장된 것이다.

인간 유기체를 이루는 최소단위인 세포는 그 자체로 생명이며, 반투과성 세포막에 둘러싸여 고유의 생명 활동을 수행한다. 하나의 세포는 세포질과 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70% 이상이 수분인 얇은 고무 막에 둘러싸인 물풍선과 비슷하다. 이 살아있는 물풍선은 세포막을 통해 외부의 물질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맥동한다.

단세포 생물도 팽창과 수축을 기반으로 생명 활동을 유지한다. 생명 활동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양분(먹이)이 필요하다. 또한, 독성물질은 피해야 한다. 따라서 양분과 독성물질을 정확히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38억 년 전 초기 생명체들은 급변하는 지구환경과 더불어, 양분과 독소 사이에서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공과 실패의 역사를 써왔다. 이 과정에서 99%가 절멸의 길을 걸었다. 우리는 살아남은 1%의 자손들이다.

양분이든 독소든 외부물질이 몸에 닿으면 내부에 변화가 일어난다. 양분이 일으키는 몸의 변화와 독소가 일으키는 몸의 변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양분이 몸에 동화되는 감각은 쾌로, 독소가 몸에서 거부되는 감각은 불쾌로 구분될 것이다. 이것은 쾌와 불쾌, 즉 감정의 시원(始原)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몸으로 직접 부닥쳐봐야 안다면, 흔히 하는 말로 변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안다면, 생존을 확률에 맡겨야 하는 처지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 걸음 더 나아갈까? 그것은 감각기관을 발달시켜 몸에 직접 닿기 전에 미리 감지하는 것이다. 양분이 보내는 전기화학적 신호를 감지해서 재빨리 다가가서 포식해야 하고, 독소라면 자신에게 닿기 전에 신속히 자리를 피해야 한다. 독소는 원시적 스트레스 요인(stressor)인 셈이다. 다세포 생명체로의 도약이 일어나도 조금 더 복잡해질 뿐, 이런 기본적인 원리는 유지된다.



감정의 빅뱅


다세포 생명체의 출현으로 생태계가 다양해지면서 스트레스 요인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단지 양분과 독소만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먹고 먹히는 사슬이 형성되어 천적은 피해야 하고, 먹잇감은 쫓아야 한다. 생존에 유리한 환경을 찾아야 하고, 거기에 적응해야 한다. 생존을 위협하는 해로운 모든 외적 환경(독소, 기후, 경쟁자, 포식자 등)은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움직임의 기본원리인 팽창과 수축의 속도가 빨라지고 폭도 넓어진다. 이런 경험의 차이가 일으키는 내적 변화를 감지하고 자기화하는 것이 감정이다(적어도 아직은 인간의 복잡한 감정에 도달하지는 않았으므로 원시 감정 정도로 명명해두자).

물론, 미시 생명체에서의 팽창과 수축이 감정 활동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아메바를 툭 건드린 다음, 아메바에게 “너 지금 기분 나쁘니?”하고 물어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것은 현생 인류에게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시간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살았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상황보다 훨씬 더 어렵다. 우리는 현미경 없이는 그들을 관찰할 수 없을 정도로 미시 생명체에서 너무나 멀어져 있다. 뇌의 조상이라 일컫는 멍게 유생 같은 플랑크톤이 만들어낸 신경관조차도 벌써 5억 년 전의 일이다.

우리가 거쳐 왔던 단계로 조금만 거슬러 가보자. 그러면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관찰할 수 있으며, 인간과 비교했을 때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는 신체 구조를 갖춘 파충류에서부터 시작해보자. 파충류는 인간처럼 사지(四肢)와 감각기관과 신경계와 뇌를 갖춘 생명체이다. 지구상의 가장 고등동물로 분류되는 척추동물이 그러하듯이 감정(마음)의 중추인 뇌는 척추, 뇌간, 간뇌, 소뇌, 대뇌 기저핵, 대뇌변연계, 대뇌피질 순으로 축적되면서 진화한 기관이다.

파충류의 뇌(어류와 양서류도 비슷한 구조를 지녔다)는 대뇌변연계까지이다. 대뇌변연계는 관찰 가능한 동물적 감정의 전신(前身)인 정동(情動) 반응을 일으키는 곳이다(파충류에게 대뇌변연계가 있지만, 포유류에 비하면 아직 미발달 상태이다). 정동은 쾌 정동과 불쾌 정동으로 구분되며 즉각적인 행동(접근, 회피, 공격)으로 연결된다. 배고프면 기분이 나쁘고(불쾌) 배부르면 기분이 좋다(쾌). 먹이를 보면 기분이 좋고(쾌) 달려든다(접근). 포식자를 보면 기분이 나쁘고(불쾌) 도망친다(회피). 경쟁자를 만나면 싸운다(공격). 직접적인 생존과 관련된 원초적 감정이 바로 정동인 셈이다.

이런 파충류적인 반응은 인간에게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른바 동물행동학자들이 4F라고 부르는 도주(flight), 투쟁(fight), 섭취(feed), 교미(fuck)는 모든 동물의 행동에서 관찰되는 공통분모이다. 도주와 투쟁은 불쾌에 따른 행동 반응이고, 섭취와 교미는 쾌에 따른 행동 반응이다.

이 단순한 정동(쾌와 불쾌)으로부터 희로애락이라고 하는 감정이 파생되었는데, 이것은 포유류부터 발달하는 대뇌피질과 연합하면서 더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으로 분화한 것이다. 꼬리치며 반갑다고 짖는 강아지나(꼬리치며 반갑다고 하는 이구아나는 없다) 새끼의 죽음에 슬퍼하는 코끼리처럼 더 진화한 감정기관인 뇌를 기반으로 더 고등한 감정으로 나아간다.

여기에 인간에게서 고도로 발달한 전두엽이 관여하면서 인간 특유의 감정인 존경, 경멸, 사랑, 증오, 희생, 종교적 신심 등이 발생하고, 특히 일부 명상가들에게서 발견되는 전전두엽의 구조적 변화와 맞물려 조건 없는 행복, 자비심, 일체감 등이 덧붙여지면서 감정의 전체 그림을 완성한다.



인체의 발생과 맥동의 다양성 그리고 마음

몸이 어떻게 조직되어 가는지 알려면 발생 시점으로 되돌아 가볼 필요가 있다. 단일 세포인 수정란은 난할을 하며 다세포로 변모한다. 그러다 포배기에 이르면 속이 빈 공 모양이 되는데, 이 또한 공간(난할강)이 자궁 액(uterine fluid)으로 채워진 물풍선과 비슷하다. 포배는 자궁 내부의 압력을 견디며 맥동하면서 낭배로 성장한다. 낭배는 훗날 항문이 될 원구를 만들면서 난할강 안으로 말려 들어가서 처음으로 관(tube) 구조를 만든다(이 관은 나중에 소화관으로 성장한다). 여기까지는 동일 세포로 분열한다.

지금부터는 양상이 달라진다. 자리 잡은 위치에 따라 신체조직의 원천인 삼배엽으로 나뉘어 다른 모양새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각각의 배엽(germ layer)들은 동일 기능 세포들의 연합체인 조직으로 발전한다(외배엽은 피부와 신경, 중배엽은 근육과 골격, 내배엽은 소화기와 호흡기). 강(腔; 내부 공간)을 만들고, 관 속의 관을 만들어 다중 관 구조의 몸을 조직해나간다.

관은 점점 길어지고 부풀어 올라 낭(囊; 주머니 모양의 조직)을 만들고 관과 낭은 혈관이 되고 소화기관이 되고 신경관이 되고 근육이 되어 몸을 유기체로 완성해나간다. 여기에서도 팽창과 수축이라는 맥동이 저마다의 리듬으로 일어나고 있다. 관에서의 맥동은 연동운동을 일으키며 유기체에 전달된다. 이것은 단순히 망치로 쇠 파이프의 한쪽 끝을 탕탕 두드리면 다른 쪽 끝까지 진동이 전달되는 차원이 아니라 수많은 내적 감각과 느낌과 정보가 전달되는 감정촉발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방면의 진짜 전문가인 심장은 우리 몸의 메인 펌프이며, 언제나 티 나게 고동치고 있다. 쿵쾅쿵쾅 느껴지지 않는가? 심장의 맥동은 감정 상태를 정확히 반영한다. 여고괴담을 보면 마음이 쪼그라들면서 심장박동은 빨라진다. 반대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들으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면서 심장박동도 느려진다. 입사 면접 직전에는 가슴이 답답해지고 심장은 요동친다. 해변에서 파라솔 아래 썬베드에 누워있으면 심장의 존재는 잊힐 정도로 안정된다. 그러다 멋진 이성을 보게 되면 폭발적으로 나대는 심장을 다시 느끼게 되리라.

신체 표면의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된 정보는 신경조직을 타고 뇌로 전달되어 행동을 수행해야 할 조직이나 기관으로 명령이 하달된다. 위기 상황으로 판단하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엄습하고, 심장은 박동 속도를 높여 근육으로 혈액 공급량을 늘린다. 근육은 수축과 팽창을 빠른 속도로 반복하며 도망친다. 이른바 투쟁·도피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이 일어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한다. 갑자기 너무 놀라거나 도망치지도 싸우지도 못할 너무 압도적인 상대를 만나면 얼어붙듯이 경직(freeze)된다. 야간 운전을 하다 보면 야생동물이 도로를 건너다 자동차의 전조등에 놀라 길 한가운데 우뚝 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때 이 야생동물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경직반응이다. 경직은 공격받은 신체의 손상을 최소한으로 줄여주는 최후의 전략이다.

스트레스로 팽창과 수축의 균형이 깨지고 리듬이 흐트러지면 몸의 형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상황이 종료되면 인체의 항상성 기능에 의해 원상태로 회복된다. 그런데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균형이 회복되지 못하면 형태의 영구적 변형이 일어난다. 스트레스는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상관없이 동일한 영향을 미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세상의 짐을 자신의 어깨에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힘이 들 것이고, 몇 년 후에는 굽은 등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실제로는 세상이 그의 어깨에 올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바바 하리 다스


자연 상태에서의 외적 스트레스는 대체로 일시적이다. 가령, 야생동물이 포식자를 맞닥뜨리면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지만 위험이 지나가면 이내 상황을 잊고 평온을 되찾는다. 반면 인간의 경우에는 발달한 뇌 덕분에 고성능 기억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는데, 순기능의 혜택과 함께 역기능의 폐해도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어느 날 어떤 직장인이 사장실에 불려가서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면 사장실에서 호출만 와도 이전의 기억으로 심장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고 땀이 난다. 심지어는 평소에도 호출이 또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사장실 근처만 지나가도 심박수가 높아지고 불안해진다. 신경성(성격구조 참조)이 높을수록 실제로 위험한 상황이 아님에도 정신적 스트레스(불안)를 지속시킨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신체의 관(tube) 구조를 위축시키고 복부의 낭(pouch)을 조이면 어깨는 안으로 말리고 가슴은 좁아지고 무너진다. 소화기관 들은 압박을 받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소화불량이나 과민성 대장 증상 등에 시달리게 된다. 가슴의 붕괴는 깊은 호흡도 방해해서 결국 과호흡을 일으켜 자율신경계의 균형도 무너뜨린다. 그러면 맥동의 항구적 변형단계로 진입하게 되어 감정기준점도 달라지고 만다.



감정표현의 중요성


감정은 외부 자극에 대한 내적 반응인데, 이때 몸의 내부 압력은 변한다. 변화한 내부 압력은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 감정표현은 몸의 압력을 조절하여 되돌아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뭔가를 보고 많이 놀랐다면, 많이 놀라야 한다. 많이 화가 났다면 화를 많이 내야 한다. 매우 슬프면 많이 울어야 한다. 그래야 몸의 압력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외부 자극에 대한 내적 피드백이 원활하지 않으면 몸의 압력에 문제가 생긴다. 예컨대, 분노를 꾹꾹 억누르고 있으면 신체조직이 딱딱해져서 체내에 고압이 형성된다. 혈관도 딱딱해져서 위축된다. 그러면 혈류의 속도는 빨라지고 혈압은 높아진다. 이 상태가 장기화하면 신체조직이 회복 불능에 빠진다. 질병의 단계로 들어선다.

물이 온도 변화에 예민하듯이 몸은 감정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물이 주성분인 몸은 감정의 온도에 따라 얼음처럼 굳기도 하고 물처럼 말랑말랑해지기도 하고 수증기처럼 흔들리기도 한다. 과도한 열로 체액이 기화(氣化)하면 몸마음은 안정을 잃고 동요한다. 그러면 불안한 생각들이 쉴 새 없이 머릿속을 날아다닌다. 공포로 몸이 얼어붙어 일시적으로 무감각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순간에는 물처럼 부드러워진다.

몸 대부분을 차지하는 액체 성분이 인체 관 구조를 통해 원활하게 순환하면서 몸 온도를 전체적으로 적절히 유지해야 건강한 맥동도 유지될 수 있다. 부분적인 고체화로 한 부위에 열이 과도해지면 순환 장애가 일어나고 그곳엔 압력의 과부하가 걸린다. 그러면 심장박동이나 호흡의 리듬에도 문제가 생긴다. 물길에 바위가 있으면 물은 바위를 우회하며 물길을 바꾼다. 물길은 서서히 지형을 바꾼다. 이처럼 우리의 몸도 서서히 변형되어 특정 체형을 형성하게 된다.

마음의 상처를 풀지 못하고 가슴의 한이나 응어리로 내면에 두면, 그 감정이 일으킨 몸의 반응이 고스란히 조직에 고착되어, 결국 신체 구조로 자리 잡아 형태를 변형한다. 붙잡아 둔 불편한 감정으로 조직이 딱딱해지면 나중에는 결국 무감각해진다. 이렇게 근육무장이 시작된다.

우리는 감정을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으로 간단히 구분한다. 무엇이 좋은 감정이고, 무엇이 나쁜 감정일까? 우리가 어떤 감정을 좋은 감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감정이 몸을 부드럽게 만들어 편안한 기분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쁜 감정은 몸을 딱딱하게 만들어 불편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냉정과 열정, 동요와 안정, 분노와 침착, 사랑과 증오, 기쁨과 슬픔, 수치와 자랑, 의기소침과 의기양양, 흥분과 우울. 이 모든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면서 마음의 상처나 응어리로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킨 대상을 공격하지 않으면서 내 감정을 시원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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