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넌 어디서 온 말이니? #2
인도는 18세기부터 약 2백 년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요. 정식으로 영국 여왕이 통치한 기간(1858~1947)으로만 치면 90년 정도가 됩니다만. 아무튼 인도를 더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시작한 인도학 연구에서 산스끄리뜨 학습은 필수였지요. 일단 연구의 편의를 위해서 그들이 보기 편하도록 데와나가리 문자를 라틴화(化)했습니다. 이걸 transliteration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자역(字譯) 또는 음역(音譯)이라고 합니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ग자를 ga로 자역하기로 약속하는 겁니다. 그런 약속에 따라 संस्कृत를 자역한 게 바로 saṁskṛta인 겁니다. 문자에 점도 찍혀 있고…, 딱 봐도 영어가 아닌 건 아시겠지요? 전 세계 인도학(indology) 학자들 간의 약속이라 일반 영어권 독자들에게는 통용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그리 대수는 아닙니다. 어차피 전문 영역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마냥 그들만의 리그로 둘 순 없겠지요. 연구비 지원하는 정부 기관에 성과도 보여야 하고, 저변도 확대하고 관심도 끌려면 번역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하다 보면 번역이 불가한 단어들도 있게 마련인데, 그 단어들은 학문적 transliteration을 넘어서 영어화해야 했지요. 외래어로 정착되는 단계랄까요. 이렇게 해서 생겨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sanskrit입니다. 만약 이 단어를 의역해서 소개한다고 하면 대충 “perfectly created language” 정도가 될 텐데, 벌써 좀 난감하지요? 아니면 “ancient Indian language”라고 친절을 베풀어야 할까요?
이럴 경우엔 최대한 원어를 살려서 현지 발음에 맞게 소개하는 게 최선이겠지요. 따라서 saṁskṛta는 중간의 비음화 표시인 ṁ도 n으로 바뀌고 ṛ도 ri가 되면서 sanskrit가 되어 산스끄리뜨 어를 지칭하는 대표 명사처럼 자리매김해버린 거지요. 당연히 영어 사전에도 sanskrit로 등재되어 있답니다. 참고로 아(a) 발음을 똑 떨어지게 못하는 영어권에서는 '샌스크리트'라고 발음합니다(짜장면을 채쟁면이라고 하던 제 캐나다인 영어 선생님 생각이 나네요. 짜 하라고 해도 계속 채라고 했었죠. 아, 반지라고 하라는데도 막무가내로 밴지라고 하던 반지의 제왕을 패러디한 광고도 생각나고요). 아무튼 이렇게 변했다고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힌디와 영어가 뒤엉키면서 saṁskṛta(산스끄리뜨 발음) → saṁskṛt(힌디 발음) → sanskrit로 되었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한국의 대중에게도 익숙한 단어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chakra입니다. 인도 춤을 추면서 2000년에 등장한 우리나라의 여성 그룹 이름이지요. 그런데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건지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지 chakra는 차크라가 아니라 '샤크라'로 소개가 됩니다. chanel(샤넬)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요?
아무튼, 문자적으로는 원반(무기의 일종)이나 바퀴를 뜻하지만, 주로 인도 고유의 해부생리학에서 척추 중심의 일곱 에너지 센터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모임을 뜻하기도 합니다. 모이면 동그랗게 대오를 지어 앉지요. 수건 돌리기 할 때처럼요. 그러다 보니 이 단어도 의역하기가 곤란해지지요. 물론 바퀴라는 원래의 순수한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인도 국기를 보시면 가운데에 바퀴가 그려져 있습니다. 아쇼까 짜끄라(अशोकचक्र)라고 하지요. 이걸 왜 아쇼까 짜끄라라고 하는 걸까요? 아쇼까는 인도 최초의 통일 제국인 마우리아 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절대 군주였지요. 99명이나 되는 이복형제들을 죄다 숙청하고 왕위를 다졌지요. 이후 정복 전쟁으로 인도 아대륙 남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영역을 장악했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조선의 태종을 합쳐 놓은 인물인 셈이지요.
아쇼까는 정복 전쟁이 끝난 후 불교에 귀의하여 이전의 만행을 참회하고, 붓다(Buddha, बुद्ध, 부처)의 가르침을 받들어 태평성대, 문화적 전성기를 구가한 최고의 성군이 됩니다. 세종대왕의 위상이 더해진 거지요. 오늘날에도 인도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왕으로 사랑받는답니다. 우리가 세종대왕을 사랑하듯이요.
여기서 붓다의 가르침, 붓다가 발견한 진리를 다르마(dharma, धर्म)라고 합니다. 물론 다르마에는 많은 다른 뜻이 있답니다. 음… 달마대사라고 들어보셨지요? 눈이 부리부리하고 험상궂게 생긴…. 그 달마의 원어가 바로 다르마입니다. 다르마를 음역한 한자가 達磨이고 우리는 달마라고 읽지요. 의역한 단어가 바로 法(법)입니다. 우리가 "법(法)대로 한번 해볼까" 할 때의 법이랑은 뜻이 많이 다르지요.
아쇼까는 더 이상 힘으로 가 아닌 이 다르마로 통치하겠다는 의지를 돌기둥에 남겼는데요. 이게 그 유명한 아쇼까 석주입니다. 이 아쇼까 석주 상단에는 사자상이 있는데, 사자상 바로 아래에 바퀴(짜끄라)를 새겨넣은 겁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바퀴라서 다르마 짜끄라(dharma cakra, धर्मचक्र)라고 한답니다. 한자로 의역하면 법륜(法輪) 즉, 법의 바퀴가 되지요. 흔한 불교 승려 이름이기도 하죠.
아쇼까가 새긴 다르마 짜끄라이기에 줄여서 아쇼까 짜끄라로 부른답니다. 인도가 1947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국기를 제정할 때, 고민이 많았겠지요? 하지만 새로운 나라의 비전을 상징하기에 아쇼까 짜끄라만 한 게 없었던 거지요. 그 옛날 아쇼까 대왕이 법륜을 굴려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던 걸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나라가 어수선할 때면 세종대왕 같은 지도자, 세종의 시대를 떠올리곤 하지 않나요? 그리고 왕에게 추서 한 이름을 보면 그가 어떤 왕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태조, 나라를 세웠겠군요. 세종, 치세가 훌륭했겠지요. 문종, 학문을 좋아했나 봅니다. 그렇다면 아쇼까는 왜 아쇼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