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미 잠에서는 깼는데 그냥 눈을 감은 채로 한참을 누워 있다가 태블릿에 배터리가 다 닳아 꺼지면서 음악이 끊겨 적막해진 탓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느릿한 동작으로 포트에 물을 올려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미뤄뒀던 빨래를 돌리며 화분에 물을 줬고 섬유유연제 넣을 타이밍까지 책을 뒤적거리다가 세탁기의 소란 끝에 옥상에 이불을 널고 운동삼아 공원에 올라 한참을 걷고 돌아와 샤워를 한 후에 점심을 대충 먹었고 실없는 연락을 몇 번 주고받다가 그동안 보려고 벼르던 영화를 보며 낄낄댔으며 낮잠을 자다 깨서 아까 읽다 만 책을 마저 보다가 가볍게 저녁을 먹었고 해가 다 지고 나서야 산책 삼아 커피숍에 나가 음료를 사서 걸으며 마셨다.
별 일 없는 일상에 별 뜻 없이 천정을 보다가 어제 아침 지하철에서 지나치던 사람의 가방고리에 긁히면서 생긴 손가락의 상처를 보았고 민망할 만큼 찔끔 나온 피가 떠올랐는데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나도 모르게라고 하기에는 내가 애써 외면한 것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나는 텔레비전을 틀고 생각을 접고야 말았는데, 나는 이렇게 또 내가 외면한 것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