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다음 날인 1월 23일 아침 일찍부터 만열이 형한테 전화가 왔다.
내 쇼핑몰의 결제 방식, 결제 루트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본다.
세무 일을 하는 만열이 형한테는 1월이 바쁜 시기인지라 설날 연휴인데도 사무실이라고 한다.
쇼핑몰을 하는 내 사업체하고 폰트 사업을 하는 동기 성훈이 사업체의 세무 신고는 만열이 형이 다해주신다.
그것도 무료로.. 고마운 사람이다.
물음에 이것저것 답하고 내가 말한다.
"더 원하는 것 없어요?"
"밥 한 끼 사면 되지"
조만간 밥 한 끼 대접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충렬이 알지?"
충렬이 형은 만열이 형의 사회생활 친구 중 가장 가까운 형이다.
만열이 형 동기 사총사 세윤이 형, 종선이 형, 진호 형 이외에 만열이 형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분이시다.
"네 당연 알죠"
"충렬이가 보내준 홍어가 있는데 홍탁삼합하자 내일 우리 집으로 와라 종호도 부를 거고, 성훈이는 너무 멀어 불러야 되나 말아야 되나, 성훈이하고 통화해 봤냐?"
"아뇨 항상 명절 때마다 얼굴 보자고 전화하던 놈이 이번에는 전화가 없네요"
"네가 먼저 하면 되지?"
"자존심이 있죠 먼저 하기는요?"
"엥 무슨 자존심 크?
자존심은 농담으로 한 얘기이다.
5남매 중 맏이인 성훈이는 작년 아버님 돌아가시고, 졸지에 고아가 된 상실감이 예상 이상으로 큰듯하다.
공동(空洞)과 같은 헛헛한 마음이 아직 정리 안된 상속문제와 더불어 번아웃 상태를 가져왔다고 얼마 전부터 종종 말하곤 했다.
마음 편해질 때까지 방치하는 것이 좋을듯해서 당분간 전화도 안 했다.
십여 분 후 여지없이 벨이 울린다.
뻔하게도 만열이 형하고 통화했을 성훈이다.
"이누마 뭔 자존심?"
"자존심은 당연 웃자고 한 소리지. 이것저것 네 맘이 편치 못한 거 같아서 혼자만의 시간을 주었던 거지"
"크 내일 만열이 형집은 난 너무 먼 거 같아서 좀 힘들 것 같고..."
만열이 형집은 광명시 소하동이고, 성훈이 집은 강동구 명일동이다.
명일동에서 소하동까지 오기에는 과장 조금 보태 서울서 대전 가는 시간이다.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었다. 은정이한테 전화 왔는데 자기네 집에서 일하하고 은경이하고 오늘 모이기로 했으니 오라고 하던데.. 조 서방 형님은 태국으로 골프여행 가셨다고 하고... 크"
은정이의 남편분이신 조 서방 형님은 우리들 동문 4년 선배형의 친구분으로 우리 동기들하고도 격의 없이 지내오셨다.
조 서방이란 호칭은 일하하고 은경이가 붙였다.
그래도 한참 오빠뻘인데 애들이 버릇없게시리라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시간 정해지면 문자 주겠다고 했고, 삼십분 정도 후 오후 3시까지 오란다는 문자가 떴다.
성북동 은정이네 집에서 3시경 성훈이, 종호, 나까지 해서 여섯이 모였다.
각자 전이며 만두 재료며 들고 와서 전을 데우고 만두도 빚고 분주했다.
마치 포틀럭 파티 형태가 되었다.
내일은 만열이 형 집에서 충렬이 형이 보내준 홍어회로 홍탁삼합을 하기로 약속되어 있다고 내가 말했고, 충렬이 형이 누구냐고 여자들이 궁금해한다.
"만열이 형 친구분"이라고 성훈이가 말한다.
충렬이 형에 대해 내가 보충 설명을 해준다.
"만열이 형 사회 친구인데 고승덕 변호사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을 했던 사람이야, 고승덕은 고시 삼관왕이었지 포철 회장의 사위였고..."
고시 삼관왕이라고 했지 최초의 삼관왕이었다고 내가 말했는지는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최초의 고시 삼관왕은 박찬종이었다고 은정이가 말했다.
내가 고승덕이 최초라고 했다며 종호가 은정이의 손을 들어준다.
검색을 해보니 박찬종, 고승덕 모두 삼관왕이었다.
일하가 레이프 가렛 공연 얘기를 꺼냈던 거 같고, 공연 중 여대생들이 팬티 투척했다는 얘기도 했다.
레이프 가렛이 아니고 클리프 리처드라고 누군가 주장했다.
또 검색해 보니 둘 다 팬티 투척이 있었다고 한다.
정확히 알아보면 이 또한 조작된 기사들이다.
외국문화의 유입에 비판적 시각을 가졌던 군부정권이 언론사를 압박해 거짓기사들이 신문을 도배했던 것이다.
실제로 투척했던 것은 손수건이었다.
옛날 얘기들 하다 보니 만우절 날 자살한 장국영 얘기도 나왔고 장국영이 주연했던 영화의 주제가인 해피투게더도 소환되었다.
중경삼림의 주제가였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왕가위 감독의 동명의 영화 해피투게더의 주제가였다.
해피투게더는 장국영, 양조위 주연의 영화였다.
추억들을 잘근잘근 소환했다.
다음날 만열이 형네 집에서 홍탁삼합을 위해 만열이 형, 종호, 나 이렇게 셋이 모였다.
종호는 홍어를 잘 못 먹는다.
홍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항상 센스 있다는 소리를 듣는 종호가 자기는 동문 사람들 이외의 사람들하고는 술자리는 잘 안 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토론에 익숙한 우리들은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하지만, 많은 수의 다른 사람들은 대화가 안된다고 한다.
남의 얘기는 전혀 안 듣고 자기 얘기만 한다는 뜻이다.
주제나 화젯거리에 대한 소통의 대화가 아니라 상대방이 얘기할 때 속으로 다음번 자기가 할 얘기만 생각한다고 한다.
상대방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내용과는 전혀 맥락 없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만 얘기한다는 것이다.
공감 가는 애기다.
맥이 끊기는 대화로 중간에 대화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 경험이 종종 있었음이 상기되었다.
정초이다 보니까 화제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살아가는 일종의 계획 같은 것을 말하게 되었다.
나의 화두는 디지털 노마드적인 삶이다.
디지털유목민으로의 삶이다.
정착해서 한 가지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맞게 다양한 방식의 일을 함께 진행한다는 말이다.
내가 말한다.
"저 같은 경우 앞으로의 삶은 세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그 첫 번째가 아시다시피 제가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잖아요.
근데 웃긴 게 사오만 원짜리 신발 하나 팔면 만~ 1만 5천 원 정도 남는데 네이버 광고비가 칠팔천 원이 들어가요.
완전 네이버만 좋은 일 시켜주는 거죠.
네이버나 다음은 중소상인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회사예요.
그래서 이제는 열받기도 해서 유료 광고를 전부 싹 내렸어요.
지그재그라는 앱을 통한 매출이나 기존의 단골 고객에게만 판매하는, 쇼핑몰 명맥만 유지하고 있어요."
작년 네이버 매출이 8조가 넘는다.
파워링크라는 경쟁입찰 형식의 광고를 키워드 검색 결과의 전면에 놓는다.
기본 입찰가가 70원이지만 기본가격 70원에 입찰하면 일이십 페이지를 넘기고 검색된다.
첫 번째 페이지에 노출되려면 클릭당 몇백 원 몇천 원 한다.
키워드에 따라서는 몇만 원, 몇십만 원하기도 한다.
포털사이트의 독점적 지위를 장악하고 있으니 가능한 갑질 행패이다.
"두 번째는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인데요.
구독자 수가 3천8백인데 여기서 구글로부터 나오는 광고비가 한 달에 30만 원 정도 돼요.
구독자는 매일같이 증가하고 있는데 몇 년 하다 보면 구독자가 3만 10만, 30만이 되기도 하겠지요.
어차피 인생은 한순간에 결정되는 게 아니라, 한숨으로 가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3~40년 더 앞을 바라봐하니까...
인생 결코 서두르지 않아요.
서두른다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유튜브 영상마다 각각의 영상마다 쇼핑몰을 링크해놓으니 쇼핑몰 홍보도 기대하고 있고..."
인류가 그러했듯이 나는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좋아한다.
유튜브 채널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거리 모습, 패션, 스폿, 자연 등을 촬영하여 올린다.
영상기록이다.
같은 맥락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 속의 느낌과 생각들을 정리하여 문자 기록으로도 남기고자 한 것이 브런치이다.
"세 번째는 제가 지금 브런치에 글 올리고 있잖아요.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글을 쓰다 나중에 출간이라도 하게 되면 인세가 발생해요.
도서 정가의 8~10% 정도의 인세가, 인세보다 더 큰 수입이 될 수 있는 게 강연료이죠.
몇십만 원에서 몇백까지의 강연료가 상당한 수입원이 될 수도 있어요"
종호가 맞장구를 친다.
"응 엄홍길의 강연료가 5백만 원 정도 하고 김제동도 천만 원 이상씩 했고, 유시민도 상당했지.
그래 잘해봐, 쇼핑몰이든 유튜브든 글 쓰는 것이든 어떤 것이라도 하게 되다 보면 어느 방향에서 어떤 식으로 펑 하고 결과가 도출될지 모르니..."
물론 내가 브런치를 통해서 커다란 경제적 수입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브런치 출간 작가가 된다고 해도 커다란 경제적 이득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브런치는 단지 내 기록물에 대한 소유권이 나에게 있음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저장 플랫폼으로서의 역할만 기대한다.
이러한 것들을 인지한 이후로 브런치의 조회 수나 구독자 수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
브런치에는 어울리지 않는 형식이지만 나는 소설을 쓰고 싶다.
에세이는 간간이 쉬어가는 타임에 쓸 예정이다.
단편소설의 작품으로써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아무래도 플롯(Plot)인듯하다.
플롯 구상만 제대로 하면 에피파니(Epiphany, 강림, 降臨)를 경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장편소설의 작품으로써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주제, 상징(메타포), 내면의 심리묘사인듯하다.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또는 메시지를 정하면, 즉 주제를 정하면 어떻게 상징적으로 연결할까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작중인물의 심리 상태나 심리 변화를 그려내는 것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배경 묘사나 인물 묘사 등은 부수적으로 차차로 붙여나가면 될듯하고, 문장력은 가독성 있는 문장 구성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소설 등 문학작품을 읽어본 지가 상당히 오래전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요즘은 걸어서 10분 거리의 시립도서관에서 소설을 대여하여 보고 있다.
요즘 인기 작가인 김영하의 2012년 이상문학상 작품 옥수수와 나,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 등을 읽었다.
해변의 카프카는 개별 구매해서 반복적으로 읽어볼 예정이다.
홍탁삼합을 하면서 여전히 밤새 술을 펐다.
다음날 아침 만열이 형이 홍어회를 한 상자 챙겨주신다.
어머니는 그 홍어회를 드시면서 일전에 누룽지도 싸주고, 홍시도 챙겨주고 했던 선배형이 준 것이라고 하니 기뻐하시면서 말씀하신다.
"언제 밥 한 번 사야 하는 거 아니냐?"
어머니의 말씀도 있었고, 밥 한번 사라는 만열이 형의 농담도 있었고 해서 밥 한 끼 사기로 했다.
밥 한 끼 사면 되지라는 말은 지나가는 농담이었다며 난처한 표정으로 반색을 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주 토요일 1월 28일 만열이 형하고 성훈이, 종호를 안양 봉가진 한정식집으로 불렀다.
네 사람 모두 술과 술자리를 무지 좋아한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보면 제일 많이 적혀있는 내용이 날씨였고, 두 번째로 많은 내용이 술이다.
술에 관련된 기록만 90회 이상이었다고 한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과하주(過夏酒)를 언젠가 한 번은 마셔보고 싶다.
이런 식으로 이순신 장군과 나를 연결선상에 놓는, 존경할 만한 분과 나를 동일시하려는 못된 버릇은 여전하다.
만열이 형이 고민거리를 얘기한다.
전세 임대한 휴먼시아 아파트의 역전세난 고민이다.
임차인이 재계약을 안 하고 이사 간다고 했단다.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이 어려워진 상황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역전세에 대한 대출 상품이 있다고 내가 말했다.
우리 집 역시나 어머니가 임대한 아파트가 있어서 역전세난을 대비해 얼마 전에 알아두었던 대출 상품이 생각났었다.
며칠 후에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을 알아보라고 카톡으로 연락드렸다.
요리 솜씨가 훌륭한 종호는 캄보디아에 가서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식당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한 끼 11,000원씩 1일 두 끼 판매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종호의 요리 솜씨는 웬만한 요리사보다 나을 정도로 깔끔하고 뛰어나다.
종호의 음식을 맛볼 때마다 나는 종호에게 식당을 할 것을 줄기차게 건의해왔다.
그러면 종호는 항상 나에게 투자하라고 하고 그때마다 난 돈 없다고 한다.
두세 개 식탁으로 시작하라고 그러다 빌딩 세울수도 있다고 하면서...
한정식 차례 중 생선회가 나오니 참치가 생각났다.
얼마 전 라디오스타에서 봤었나 패널 중 한 명이 참치는 평상 잠을 안 자고 유영을 계속한다고 했다.
진짜로 참치는 잠을 안 잘까? 의아한 내용이다.
내 얘기를 듣고 종호가 말하길
"방송에 나올 정도면 이미 검증된 내용이지. 잘못된 내용이면 엑스표가 표시되고 정정된 내용으로 자막이 나가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사 '우공이산(愚公移山)'과 쉬지 않고 유영하는 참치가 비유적으로 오버랩된다.
우공이산은 쉬지 않고 꾸준하게 한 가지 일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결국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십 대 초반에 본 '대학별곡'이라는 공모전 대상 받은 소설이 있었어요. 거기서 주인공이 막걸리에 새끼손가락으로 사랑, 우정 이런 단어들을 써놓고 마시는 장면이 나와요.
얼마 전에 본 황석영의 소설 개밥바라기 별에서 작중 인물이 부산 태종대에서 수음을,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자기는 바다하고 결혼을 했다고 떠드는 장면도 나와요.
은유적 표현들이죠"
요즘 소설들을 좀 봤더니 문학적 감성이 솟구치나 보다.
소하동으로 자리를 옮겨 2차, 3차는 만열이 형이 샀다.
오래간만에 밥 한 끼 제대로 샀다는 나의 뿌듯한 마음이 상쇄되었다.
다들 흠뻑 취했고 새벽 한시경에 헤어졌다.
성훈이는 택시비가 육만 천 원 나왔다고 역대급이라고 카톡으로 남겼다.
"이방이 내 인생의 친구들이다"라고 나도 카톡에 횡설수설했다.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의 한 단락이 아래의 단락이 연상된 듯하다.
"하지만 인간은 무엇인가에 스스로를 밀착해 살아가는 존재지" 하고 오시마 씨가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거야. 너도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하고 있을 거야. 괴테가 말하듯, 세계의 만물은 메타포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