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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




저는 하루에 50분씩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안양천 산책로에서 걷기 운동을 합니다. 일주일에 300분 이상하고 있습니다. 건강에도 좋고 의식과 글쓰기 소재의 형성에도 너무 좋습니다. 평생 걸으리라 생각합니다.



2025년 1월의 한겨울, 오후 2시의 안양천 산책로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활기가 넘칩니다.

저희 동네의 안양천 산책로 위로는 박달 우회 고가도로가 지나가서 비도 막아주기도 합니다. 산책로 구간이 마치 체육관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산책로는 인도 2차로와 자전거도로 2차로로 되어 있습니다.

두꺼운 패딩과 모자, 장갑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영하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책로를 따라 걷거나 달리고 있습니다. 우측통행으로 열을 지은 그들의 발걸음은 규칙적이고 힘이 넘치며, 얼굴에는 운동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 가득합니다.

대부분 사오십 대 이상이며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산책시키는 젊은이도 간간이 눈에 띕니다.

유모차에 개나 고양이를 싣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한때는 이해가 안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왜 운동을 안 시키는 걸까 해서 말이죠. 하지만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운동을 시키기에는 무리가 되는, 인간으로 치면 팔 구 십대가 되는 반려동물이라는 것을요.



맑은 하늘 아래, 천변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도로로 대여섯 대의 형형색색의 자전거들이 지나가며 생동감을 더합니다.

빨간 헬멧을 쓴 아이부터,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며 달리는 커플, 빠르게 속도를 내는 라이더까지 각기 다른 모습으로 길 위를 채웁니다.

자전거 바퀴가 부드럽게 아스팔트를 스치는 소리가 자연스레 배경음악이 됩니다.



산책로 옆 물가 주변은 얼음이 살짝 얼어붙은 곳도 있고, 얼음이 없는 곳은 흐르는 물이 차갑게 반짝입니다. 하늘 위로는 철새들의 날갯짓이 차가운 하늘 속을 가르며 겨울 풍경을 더하고 있습니다.

철새들은 겨울에도 먹이를 찾아 이동하기 때문에, 안양천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철새를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고방오리, 황조롱이 등이 있습니다.

강 주변의 나무들은 대부분 잎이 떨어지고 가지들만 남아 바람에 흔들립니다. 그들의 고요한 모습은 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더욱 뚜렷해 보입니다.

하늘은 맑고 푸르지만, 차가운 바람이 불어 나무들은 바람에 맞서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물고기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움직이는 모습도 드물게 보입니다.



지난해 화사한 봄날의 안양천도 회상해 봅니다. 봄날에는 다양한 새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주둥이가 하얀 물닭, 꽁지머리 깃이 있는 쇠백로, 붉은 머리오목눈이, 그 밖에도 물까치, 청둥오리, 알락할미새가 쉬지 않고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강물은 쉬지 않고 흘러갔습니다.

잔잔한 물결 그 밑으로 눈이 노란 가숭어가 투영되었습니다. 가숭어 무리가 한가로웠습니다. 가숭어 무리가 지나가자, 이번에는 팔뚝만 한 잉어들이 떼 지어 다가왔습니다.

잉어 다음에는 메기 차례였습니다. 왜가리가 메기를 먹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강 언저리에는 자줏빛 소래풀꽃이 탐스럽게 피어있었습니다. 수수하면서 하얀 조팝꽃도 소복하게 모여 피었었습니다. 연한 홍색 살구나무도 활짝 꽃 피었었습니다.

강 건너 둔덕 위에는 잎겨드랑이에서 돋아 나온 개나리가 샛노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이 흐드러지게 피었었습니다. 둑방길에 아름드리 벚나무 수백 그루가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얼마 안 지나 그 봄날이 다시 오겠죠. 봄날의 햇살을 기다려봅니다.



한겨울임에도 운동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의외로 따뜻한 생기가 감돕니다. 표정엔 약간의 긴장감과 결단력이 스며있지만, 가끔 미소가 번지기도 합니다. 밝습니다. 이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는 작은 성취감에서 비롯된 것일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밝은 것은 아닙니다. 간혹 편찮으신 분들이 눈에 띄기 때문입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천변, 뇌졸중을 겪은 환자가 천천히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걸음걸이는 일반 사람들보다 느리고, 한쪽 다리를 약간 끌며 움직이지만, 그 안에는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반년 전부터 제 나이 또래의 여자분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몸의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옆에서 어머니 같은 보호자가 조심스레 보조하며 걷고 있습니다.

어떤 남자분은 얼굴이 흑색과 자주색인 분도 보았습니다. 아마도 간질환을 겪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편찮으신 분들의 표정에는 간간이 힘겨움이 드러나지만, 눈빛 속에는 자신의 상태를 극복하려는 강렬한 결심이 담겨 있음을 느낍니다. 끝까지 버텨보시라고, 반드시 나아질 거라고 마음속의 응원을 보냅니다.



얼마 전에 보았던 비긴어게인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스무 살의 앳된 여자 아이돌 가수가 콜드 플레이의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를 부르려고 노래를 소개했습니다.

엄청 희망적인 멜로디를 갖고 있는 곡인데도 불구하고 가사를 파고들면 몰락한 왕이 자신의 전성기를 되돌아보는 쓸쓸한 이야기라고 소개하면서 덧붙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곡을 선곡한 이유는 '어쨌든 그 길을 가려면, 버틴 거고요, 그렇게 말을 해주려고 해도 버틴 거고요, 그 말을 듣는 사람도 지금 버텨내고 있는 거고요. 우린 앞으로 버텨낼 거잖아요. 올 한 해도 잘 버텨봅시다. 여러분. 그럼 인생 만세. 비바 라 비다 가볼까요?'라고 하면서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던 순간 마음속에 우리들 인생은 버텨내야 하는 것이구나라고 하는 커다란 울림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겠거니 하는 생각도 말이죠.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야.'라고 어린 왕자가 말했습니다. '인생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사랑과 그 사랑이 주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야.'라고 했던 친구의 말이 떠오릅니다.

오늘도 저는 인생 그 어딘가에 있을 사랑과 감동을 찾으려고 애써봅니다. 또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려고도 애씁니다. 삶 자체가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는 과제와 사명, 그것이 니체가 말하는 운명이죠. 아모르파티(Amor Fati), 운명애(運命愛).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는 스페인어로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이며 영국의 록 밴드 '콜드플레이'의 2008년도 곡명이기도 합니다.

제목의 유래는 멕시코 출신 화가 프리다 칼로가 세상을 떠나기 8일 전에 남긴 유작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입니다.

프리다 칼로는 수박들의 단면을 통해 자신 인생의 고통스러웠던 면을 승화시키고자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vgZkm1xWPE

콜드플레이의 비바 라 비다




Viva La Vida.jpg 프리다 칼로의 비바 라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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