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명품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에서의 명품이 무엇인지 물었다. 사모님 커피, 지게, 전기장판, 과자 등등 많은 물건이 명품이어서 본국으로 갈 때 선물로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최고의 명품은 그 무엇도 아닌 할머니라고 했다. 다른 물건에 대해서는 의견이 차이가 있었지만, 할머니에 대해서만큼은 모두가 입을 모았다. 그 이유는 언제나 따뜻하고 친절하며 마치 자신들을 가족같이, 손자 손녀처럼 대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뭐든지 나누어 주고 싶어 하고, 음식도 많이 주고 안부도 자주 물으며 마치 본인의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한국인의 따뜻함과 인정을 할머니를 통해서 실감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외국에서 길을 잃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는, 나이 많은 사람 특히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도움을 청한 적이 많았다. 특히 일본에서는 더 그랬다. 길을 묻다 버스를 잘못 탄 것을 안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다시 내려서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간 일도 있었다. 영국에서도 할머니들이 자원봉사로 유학 온 학생들을 뒷바라지해주어서 그 혜택을 많이 입었던 사람이다.
할머니들이 젊은 사람이나 외국인들에게 친절한 것은 자신들이 살아온 인생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도움이 필요했던 순간이나 낯선 곳에서 당했던 낭패에 대한 기억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친절과 정을 베풀고 시간을 내어주고 나누어 주며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것 같다. 더구나 요즘은 멀리 가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그들에게도 어려움에 처한 순간에 본인같이 누군가가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고 연민의 정을 가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은 시간적으로나 심적인 여유가 부족하기에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노인들은 시간적 여유와 함께 더 근본적으로는 마음의 여유와 인생 경험에서 나온 엄청난 공감 능력과 측은지심이 더 쉽게 표현된다.
우리 학생들 중에는 직장생활로 바쁜 엄마보다 할머니의 돌봄을 받으며 자란 학생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래서 엄마보다는 할머니가 더 가깝고 할머니의 죽음이 큰 상실로 느끼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렇게 할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할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을 듬뿍 받아서인지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사례가 많았다. 특히 엄마가 없거나 부모 모두가 없는 경우에도 할머니 손에서 키워진 아이들은 성격적으로도 밝은 편이었다.
비록 부족함이 많고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사랑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고 더 애틋한 할머니의 정과 할머니 주변 친구분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자라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장해서는 할머니를 보호하고 돕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니 훨씬 더 어른스럽고 철이 빨리 드는 것 같았다. 할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며 스스로도 할머니처럼 사랑을 베풀며 다른 가족도 돌보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의 우리 사회에는 어른다운 어른이 없는 것 같고 또 어른을 알아보고 대접하며 그들의 인생 경험에서 나온 지혜와 위엄을 인정하고 배우려는 젊은이도 잘 보이지 않는다. 나날이 발전하는 새로운 기계에 대한 미숙으로 손자뻘 어린아이에게조차 무시당하고 면박당하기 일쑤다. 요즘에는 식당에 가서 주문하는 것조차 서툴러 겁을 내기도 한다.
옛날처럼 어른에게 물어봐서 해결하는 것보다 더 쉽고 간단하게 검색되고 잔소리, 케케묵은 소리 듣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라테이즈 홀스라는 농담까지 생겨나며 나이 든 사람의 말은 꼰대라고 면박당하기 십상이다.
이런 면에서는 새로운 세대를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에도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릴 때처럼 할아버지 기침 소리에 모든 다툼이 중단되고 모두가 일 열로 서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던 때와는 다르다. 그렇다고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힘들여 모은 재산에 젊은것들이 양심 없이 빨대를 꽂는 행동을 지켜만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어른이 어른답기가 더 어렵고 힘들게 된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말한 것처럼 젊은이들의 처지와 어려움에 공감하고 작고 소소하지만 마음으로 나누고 베풀려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요즘 젊은것들 버릇없다고 하지만 유사 이래, 젊은것들은 모두 버릇이 없었고 또 그 버릇없음이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러니 인생 경험이 많은 우리가 먼저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해줌으로써 그들도 진정한 사랑이 뭔지도 알고 삶의 경륜이 어떤 것인지도 배우게 될 것이다. 이런 자세와 태도가 우리가 물려줄 최고의 유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