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초입으로 접어들자, 화단을 정리하는 가지치기 작업이 한창이다. 아침에 외출하다가
정원사들이 한창 정지작업을 하고 있는데, 네댓 살 정도의 아이가 불만스러운 듯이 그 곁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지나가려 하자 아이는 하소연이라도 하는 듯이 중얼거렸다. ‘나뭇가지는 꺾지 말아야 하는데, 아저씨들이 계속 저러고 있어요’라며 나에게 일러주었다.
정원사에게 가서 내가 전했다 ‘저 아이가 나뭇가지 꺾으면 안 된다’며 걱정하네요. 그러자 모두 웃음보가 터졌고 아이는 영문을 몰라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이 서 있었다. 아이에게 ‘저분들은 지금 나무를 위해서 가지치기를 하고 계셔. 아이들이 함부로 나뭇가지를 괴롭히고 아프게 하는 것과는 달라. 나무가 잘 자라도록 도와주고 계셔’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는 다는 이해할 수 없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제야 제 갈 길을 갔다.
이렇게 어설프게 아는 지식은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구속하고 부자유스럽게 한다. 얼마나 많은 잘못된 지식과 오해가 상처를 낳고 어려움을 더하는가! 이런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방법은 없을까?
그중 하나는 내가 다 알지 못한다는 겸손함과 열린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다 알지 못하기에 살펴보고 알아보며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이다. 그리고 안다고 단정해 버리기보다는 판단을 중지하고 지켜보는 것이다. 함부로 단정 짓고 틀에 가두어버리면 고착되지만, 중립적으로 그대로 열어두게 되면 언젠가는 스스로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이런 식의 열린 자세는 성장과 성숙에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여유로움이 서로와 모두에게 넉넉한 공간을 내주며 함께 배워나가고 성장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세상에는 내 작은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으며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지혜라고 공자님이 말했다. 모르는 것을 어설프게 아는 척할 때, 편견과 오해가 생기며 심리적인 열등의식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발동하며 자아 왜곡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런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드러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한 번은 언니와 함께 유명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작품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며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았다. 나중에 언니는 ‘넌 참 용감하다. 그렇게 모른다는 말을 솔직하게 할 수 있으니... 나는 나만 모르는 것 같고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창피스럽게 느껴져서 그냥 아는 척하지, 너처럼 까놓고 모른다고 말할 수가 없어.’라고 했다. 아마도 언니는 자신감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의식이 강해서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겨졌던 것 같았다.
이건 우리 언니만의 태도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을 못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정직함은 엄청난 치유 효과를 가져온다. 우선 내가 아는 척하며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하고 거짓으로 행동함으로써 생겨나는 열등감과 불안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되며 그런 심리를 숨기기 위해서 방어벽을 두껍게 쌓아나갈 필요가 없게 된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모두에게 치유가 일어나며 모른다는 것에서 오는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심리적인 보편성을 인식하게 되면 안도하게 되고 정직하게 마음을 열고 알아보려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지식은 어차피 한계를 지니게 마련이다. 어제의 지식이 오늘은 쓸모없게 되며 내일 새로운 것으로 뒤집힐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졸업생들에게 말했다. 20년 전에 수업을 받은 학생은 다 다시 받으라고, 그땐 그게 옳았지만, 지금은 많이 변하고 달라졌다고. 그때 내가 한 말이 다 거짓말이 되었으니 책임지고 다시 보수교육해 주겠다고. 지식과 이론이라는 것이 많은 가설과 가정하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보니 가설과 가정 또는 현상이 달라지면 그에 따른 지식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얕은 이론이나 지식에 얽매이지 말자. 그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판단을 넘어서 조용히 지켜보며 알아나가려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별것 아닌 얕은 지식으로 아는 것에 끌려서 억지를 부리고 꿰어 맞추려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 그런 사람은 겉으로는 아는 척 호기를 부리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겁나고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여유롭게 지켜보고 정직하게 바라보며 더 알아보려는 겸손함과 열린 자세가 결국은 우리를 지혜의 길로 이끌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