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을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보냈다. 시작은 초등학교 코흘리개 친구들 단체 대화방에 올려진 글이었다. 평소 조용하던 친구가 나이 들어 시작한 대학 공부와 내 책에 관한 이야기로 안부를 전했다. 소식을 접한 친구들의 축하가 이어지며 서로의 안부와 새해 인사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렸다.
늦게나마 용기를 낸 친구에게 마치 본인 일인 것처럼 듬뿍 축하해주는 친구 모두가 다 장하고 귀하다. 나이가 들어서는 이렇게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 위로하고 축하하며 서로의 존재를 어여삐 여기며 보듬어 안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나이를 헛먹지 않았고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세대는 전쟁 후의 가난으로, 딸들은 꿈을 접고 오빠나 남동생 뒷바라지를 해야만 했고 그러다 보니 공부에 한이 맺힌 사람도 많았다. 그러다 자식 공부까지 다 시키고 나서 이제야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용기와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아마 축하하는 친구들의 마음도 같을 것이다.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하는데 친구가 선뜻 나섰다고 하니...
나이가 들어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가고 있으니 내 속이 다 시원해진다. 가끔 대중매체에서 보는 장면으로 초등학교 교실에서 손자뻘 되는 아이와 할머니들이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미소가 번진다. 글을 익힌 후 이들의 삶은, 장님 눈 뜬 것만큼이나 세상이 밝아지고 훤해졌다고 한다. 이제는 여한이 없다는 말로 그동안 억눌린 심정을 짐작하게 한다.
그래, 늦게라도 용기를 내어 털어버릴 건 털어버려야 한다. 그 모두를 지고 가기엔 등이 휘어지고 가슴이 무거워서 견딜 수 없다. 까짓것 이제껏 살아오며 헤쳐 나온 일들을 생각하면야 못할게 뭐람? 그야말로 공부가 가장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리며 마음 가볍게 살도록 하자. 우리에겐 더 미룰 시간이 남지 않았기에... 그동안은 가족과 다른 사람 뒷바라지로 고생했으니 더 둘러보고 살펴보며 이제는 나를 챙겨야 할 때가 되었다. 나를 챙기고 내가 행복한 것이, 나만이 아니라 가족과 모두가 행복할 수 있기에.
허기야, 우리 나이쯤이면 가방끈의 길이는 전혀 문제가 되질 않는다. 삶이란 학교에서 이미 배울 것은 다 배웠고 또 앞으로도 배워나갈 것이기에. 더구나 초등학교 친구들은 우리의 소중한 어릴 적 추억과 순수함을 함께 나눈 사이이기에, 특별히 가깝게 지내지 않았어도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며 평생을 함께 보낸 사이로 더 애틋하기만 하다.
각자의 형편과 서로의 처지가 다 다르다고 해도, 그 모두를 넘어서 서로를 지지하고 품어줄 수 있는 충분한 속정을 나누는 사이다. 마치 멀리서 쳐다만 보아도 가슴이 저리는 고향 풍경처럼. 어린 시절을 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에 주어진 축복이었고 이들의 숨결이 내 가슴에 녹아있다. 요즘 농촌학교에서 함께 공부하고 놀 친구가 없는 아이들을 보면 더 그렇다.
그러니 부디 몸 건강히 아프지 말고 이렇게 서로를 위로해 주며 함께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이다. 나이가 들면 여우도 머리를 고향 쪽으로 둔다는 말처럼, 그 고향과 함께 떠오르는 어릴 적 친구들, 그들이 함께하기에 고향이 고향일 수 있고 그립고 애틋한 것이다.
우리가 벌써 어릴 적 철없이 저지른 일이나 실수와 잘못마저도 재미있고 즐거운 추억이 되는 나이가 되었다. 긴 세월의 강을 건너며 왜 어려움이 없었고 모진 고비들이 없었겠는가. 그 모두를 넘어서 서로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안부를 묻고 서로 축복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가지며 살아가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잘 살았고, 잘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그 모두를 이기고 견뎌낸 우리 모두에게 박수와 위로를 보내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음 우리가 만났던 그 시절처럼 맑고 소박한 우리의 우정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