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국어 시간에 배운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이번 봄 문득 생각났다. 저 멀리 전쟁터에도 진정 봄이 오는지 궁금하기에. 유럽의 식량창고라 불리는 곳에 파종은커녕 사람들이 멀리 피난을 갔거나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그렇게 안타까운 봄을 찾아 봄 마중 나섰다.
대도시의 화려한 대로를 한 발짝만 벗어나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풍경이 골목 안쪽에 천연덕스레 펼쳐지고 있다. 낮은 블록 담벼락에는 담쟁이가 기지개하며 일어날 채비를 하고, 담벼락 밖으로 다랑논같이 달아낸 작은 꽃밭 겸 남새밭에는 작지만 화려한 복사꽃이 피어나고 몸값 부풀린 대파도 소복소복 자라고 있다.
낡은 자전거 주인은 춘곤증에 아마도 낮잠을 주무시나 보다. 버려진 스티로폼 상자에 심은 채소도 능숙한 주인장 손길에 보란 듯이 반들거리며 춤을 추고, 안주인은 잠시 마실을 갔는지 의자가 비어있다.
땅이 없어 길바닥을 차지한 낡은 화분에는 상추와 너풀거리며 자라는 모양새가 참 옹색하고 가슴 찡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겹고 친근하며 주름진 부지런한 손길을 떠올리게 한다.
축하로 받은 비싼 화분을 돌보지 못해 죽여서 내다 버리면, 지나가다 아깝다며 주워다 다시 살리고, 도시의 철없는 것들에게는 뭐든지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지만 쓰레기도 다시 살리고 일회용도 다시 용도를 찾아내는 달인의 손에서 봄이 오며 새 생명이 보란 듯이 자라고 있다.
솜씨 좋은 어르신은 담장에다 부식 가계를 차릴 모양새다. 이미 줄 지어 파종까지 해 놓았다. 이렇게 부지런하고 땅을 귀히 여기고 생명을 소중히 다루기에 시베리아의 동토조차 옥토로 만들었나 보다.
생명을 심고 키우는 그 재미와 기쁨을 알기에 봄이 오면 몸이 근질거려 가만히 있질 못하나 보다. 어느 무정한 사람이 잘라버린 가지에 달린 꽃망울이 안타까워 주워왔다. 저 먼 곳의 못다 핀 청춘들 같아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