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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Dec 03. 2022

 빛의 성전에 이르는 일곱 계단

사랑

사랑     

사랑은 경이로운 이의 힘이자 권능이며 그 안에 창조적 핵심과 정수가 있다. 사랑은 겉 자아가 안에 거하는 주님과 하나 되어 들어 올려져 용해되는 불꽃이다. 사랑은 겉 사람의 지성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지적 능력으로 빛의 영역을 추구하는 것은 실패하고야 만다. 십계명에서 ‘주 하나님을 네 모든 마음과 영혼을 바쳐 사랑하라. (성경에서의 영혼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겉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네 마음과 힘을 다해 사랑하라. 이것이 첫 번째 계명이다.(마가 12:30)  

   

너의 주 하나님은 네 안에 계신 경이로운 이다. 그를 향한 네 사랑이 완전해서 당신이 주님을 존재의 전부로 사랑하게 되면 네가 즉각적으로 그의 현존 안에 거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을 추구하는 데 시간을 거의 다 사용한다. 물질적인 것을 충족시키며 먹고 입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으로 가족을 생각하고 그런 다음에 명성을 생각하면서 이 모든 것 다음으로 머리로는 신을 사랑한다고 여긴다. 그렇게 육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  

   

사람이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한 안에 거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며, 그런 사람에게는 삶이 온갖 고난의 연속임을 알게 되고, 겉 마음이라는 사탄의 지시를 따르게 된다. 첫 계명을 알고 그것을 따라 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두 번째 계명을 알 수 없다. 첫 번째 계명의 영을 따를 때까지 분노, 질투, 갈등, 부족과 한계를 헤매다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 ’ 내가 살기 바빠서 신이 뭔가를 하도록 돕기 위해서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사람은 ’나 자신과 물질적인 것을 너무나 사랑해서 신을 사랑할 여유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무지하게도 신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물질적인 것을 포기하고 가치 없는 은둔생활을 하는 것처럼 여긴다. 깨달음 안에서 복 받은 자는, 전 존재를 다 바쳐 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매 순간 사랑의 빛을 발현하는 영광으로 채워지기에 이전보다 더 활기차고 활동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안다. 어떤 상황이나 경우에도 이겨나갈 수 있는 지혜와 힘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부족함이나 한계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삶에서 얻어지는 물질적 요소를 즐길 줄 알기에 존재 전체가 환희와 기쁨으로 채워진다. 그는 사랑은 어떤 조건에도 적용되는 절대 법칙이라는 것을 알기에 사람들이 아는 사랑이나 자선과는 다르다는 것을 안다. 사랑의 봉사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겉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에, 사람이 ‘거듭났을 때’ 채워진다. 겉 사람은 그의 열정과 이기적인 소유욕이 사랑이라 여긴다. 겉 사람이 그의 동기가 아무리 ‘선하다’ 해도 그 자신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그 모두를 버리고 주님께서 그의 길을 가시도록 해야 한다. 주님의 길은 모든 영원함 속에서 언제나 발산의 즐거움과 완전한 사랑 속에서 완벽한 자유가 있다.

세상사를 놓아버리고 모든 노력과 투쟁을 멈춘 사람은 사랑에 응답할 준비가 된 사람이다. 사랑은 모든 사람의 표현 법칙이며 이 위대한 법칙과 조화를 이루는 자가 지금 여기에서 영광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기 시작한다. 이러한 법칙과 조화를 이루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 이 하나의 길이 확실하고 완전한 성공의 길이다. 이 길은 단순한 길과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가능하다. 뭔가를 이루고 결과나 보상을 얻고자 하는 자는, 그것이 천국을 찾는 것이라 해도,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선행도 이를 보장하지 못한다. 비록 통제하고 조정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좋은 것이라 여겨질지라도, 다른 사람을 조정하는 사람도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소유하지 않으며 그런 태도는 그 대상이 가족일지라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길은 안에 거하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그리스도의 길이다. 이렇게 맡기는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모든 일을 사랑을 발산하는 기회로 여기기에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이렇게 맡기는 자는 크건 작건, 사소하건 간에 지금 주어진 순간에 그 일을 완벽하게 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맡기는 자는 그가 하는 모든 일을 사랑하며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함께하는 사랑이 그가 하는 표현을 확실하고 효율적이게 만드는 힘이다. 사랑의 유일한 길은 사랑이다.


모든 일이 사랑의 발산으로 이루어지면 사랑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되고 사랑과 합일을 알게 된다. 사랑과의 조화를 통해서 축복받은 자는 사랑으로 이끌어지며 사랑 안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 무슨 일이든 ‘의무감’으로 일하는 사람은 하는 일이 허망함을 알게 된다. 무엇을 한다 해도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으로 그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일하는 것이 영원한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의 비밀은 사랑의 비밀이며 사랑하는 자만이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는 이런 말이 다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 속에서 사랑하는 축복받은 자에게는 이런 말이 모든 것을 드러낼 것이다. 사랑의 길은 사랑이다. 사랑을 알기 위해서 축복받은 자는 사랑을 실행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길은 사랑이다. 즐거움의 길은 사랑이다. 평화의 길은 사랑이다. 완전한 건강의 길은 사랑 안에 있다. 불안과 걱정을 벗어나는 방법은 사랑이다. 자유의 길도 사랑이다. 영생의 길도 사랑 안에 있다. ‘존재하는 자’는 사랑이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는 사랑이다. 사랑이 전부다.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다. 사랑 속에 모든 영원한 것이 존재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포함하며 그것이 전부다. 사람의 모든 순간에 사랑을 발산하는 자는 결과에 상관없이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축복받은 자는 사랑하기 시작해야 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하며 스스로 사랑하기 시작할 때까지 사랑을 알지 못한다. 사랑은 확고하고 용맹하며 확실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사랑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사랑은 이기심이 없기에 언제나 침착하고 고요하다. 사랑은 사랑이 전부이기에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다. 사랑은 아무것도 필요치 않기에 타협하지 않는다. 사랑은 존재하는 모든 것과 하나이기에 결코 외롭지 않다. 

사랑을 발산하라, 그러면 분명히 사랑을 알 것이다. 사랑의 길은 사랑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신을 믿든 아니든 간에,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궁금해하며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온갖 개념이나 형상, 환상 그리고 체험담과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다양한 종교에서는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신이 존재하며 그것이 형상화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 사람들은 그들이 믿건 아니건 간에 신이라는 존재와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깊이 연관되어 있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당장 직접적인 질문으로 ‘나는 어디서 왔는가? 지금 이곳에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실제적이고 존재론적인 의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찾아보기도 하고 읽어보고 몰두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신이라는 초월적 현상을 피조물인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와 머리로는 알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믿음의 영역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믿으면 믿게 되지만 믿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존재이자 영역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아리송하고 베일에 싸인 존재 같지만 사실 비교적 간단하고 쉽게 그리고 직접 신을 알 수 있고 경험할 방법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내 안의 생명체 속에 이미 신의 비밀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 존재가 신체 이상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몸과 머리 그리고 가슴이라는 신체와 이성과 감성의 영역을 모두 인정한다. 그런데 이것 외에도 뭐라고 꼭 짚어서 말하기는 힘들지만 내 가슴속 어딘가에 샘이 쏟아내서 강물로 흐르는 것을 알고 있다. 바로 그곳이 내가 쉴 수 있고 위로받는 곳이라는 것도 아주 어릴 적부터 무의식적으로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쳤을 때는 그곳으로 가서 고요히 쉬고 힘을 회복하기도 한다. 

 과연 이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며 나를 씻어주고 감싸주는 한없이 부드럽고 따스한 이 손길은 무엇인가? 나에게 길을 제시해주고 한없는 영감을 주는 이 존재, 끊임없이 맑은 영혼의 샘은 어디서 와서 어느 곳으로 흐르며 이어지는가? 나에게는 그곳이 그 존재가 내 안에 계시는 경이로운 이며 나의 신적인 존재로 나를 넘어선 더 큰 우주적 근원이나 존재와의 연결점이 되고 있다. 

    

‘네 주 하나님은 네 안에 거하는 경이로운 이(The Lord thy God is the Wonderful One within you)다.’라고 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바로 내 안에 존재하며 내 삶의 중심이 되고 근원이 되는 이것이 바로 나의 신이며 나의 신성이라 여겨진다. 물론 이 말은 내가 온전히 그 중심에 서 있고 경이로운 이와 함께 해서 하나 된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신을 이해하고 내 존재를 이해하면 많은 의문이 풀어지고 내 삶이 가벼워지며 평안이 함께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런 경험은 나에게는 진실이다. 여기, 아주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직접적인 신에 대한 이해가 있다.  



                   

재직 시에 연애를 시작한 학생이나 사랑에 빠진 사람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눈이 반짝이고 생기가 돌며 얼굴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을 지속해서 관찰해보면 예전과는 다른 마음의 평안과 스스로 자기 존재의 귀함을 알게 되며 타인에 대해서도 너그러움과 자비심이 묻어났다. 더구나 이제껏 문제라고 여겨 분노하던 일들이 더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은 포용력과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랑이 존재 전체를 한순간에 바꾸어 버리는 기적을 이룬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빛의 발산이다. 사랑의 빛의 발산은 생명의 원천이고 생명 현상이 드러나는 정수이자 핵심이다. 사랑의 빛의 발산이라면 좀 낯설게 들리지만 아주 친근한 현상이다.




한 번은 2000명이 넘는 성난 장애인 시위대와 홀로 마주한 일이 있었다. 그들 앞에 나설 때의 나의 심정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들 앞에 섰을 때, 마음이 차분해지고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래서 차분한 목소리로 조용하게 말했고 그들이 감기 걸릴까, 배고프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그들은 나를 적대시했지만 난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로 내가 온 힘을 다해 진정으로 돕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이해관계에 얽혀있어도 나의 진심이 통했는지 시위대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내 안의 경이로운 이와 아버지께서 함께한다는 확신이었다. 그분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리고 내 입을 통해서 이해와 자비 그리고 정직과 겸손이 흐르게 하셨다. 결국, 사랑이 그들의 언 마음을 녹인 것이다.  

    

그들의 눈에, 한 주먹도 되지 않는 작은 여자에게 눌린 것이 아니라 근원에서 흐르는 힘과 권능 그리고 사랑이 그들의 상처 난 마음을 감싸 안은 것이다. 사랑의 빛이 그들을 선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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