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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Apr 25. 2023

동창회

 학령기에 여러 학교를 거쳤지만, 그래도 내 가슴 깊숙이 남아있는 우리 학교는 농촌의 작은 사포국민학교다. 코로나로 인해 만나지 못하다 4년 만에 다시 옛날 코흘리개 친구들을 만나는 기쁨은 벅찼다. 시골 초등학교 동창회를 가는 것은 고향에 갈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 동창생들을 만나는 것 외에도 고향 사람, 동네 사람들- 앞집, 옆집 그리고 뒷집 식구들도 만나고, 친구의 언니, 오빠, 누나, 동생, 조카, 삼촌과 사돈까지도 만날 수 있고 소식도 들을 수 있어 더욱 기다려진다. 

    

 이번에 70여 년 만에 우리 앞집에 살았던 맹자 언니를 만났다. 친척 오빠가 맹자 언니라고 하자 나도 모르게 와락 껴안으며 눈물이 고였다. 맹자 언니를 떠올리기만 해도 내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언니는 어린 나이에 엄마를 여의고 일곱 남매가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위로는 오빠가 셋이나 있었지만, 언니가 큰딸이라는 이유로 어릴 적부터 집안 살림을 하며 본인 몸집보다 더 큰 솥에다 밥을 짓던 모습이 생각난다. 나와는 경우 세 살 차인데도 언니는 고사리손으로 식사 준비와 살림을 어른처럼 두루 챙겼다. 

     

 언니네 집에 놀러 갔다가 언니가 부엌에서 저녁상을 차리는 모습을 보고 돌아와서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한참을 울었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며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언니는 나처럼 놀 시간도 없었고 밥 안 먹겠다며 투정 부릴 대상도 없었다. 어린 언니가 단지 첫딸이라는 이유로 동생들뿐만 아니라 온 가족을 살펴야 하고 가사노동을 도맡아 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런 언니가 뽀얗고 단단한 모습으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물을 필요조차 없었다. 고운 모습이 그 모두를 대변해 주기에. 어느 시대 누구든 삶의 질곡이 없을 수 없겠지만 언니에게는 그 모두가 어린 시절보다는 가벼웠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모두를 살아내고 늦은 나이에 다시 맑은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어, 얼마나 고마웠던지 눈물이 절로 흘렀다. 감히 언니에게 사느라 수고했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열 번도 넘게 ‘수고했어, 고마워 언니!’라는 말을 되뇌었다.  

   

 친구 중에도 어려운 고비를 의연하게 넘겨온 사람도 있고 또 그렇게 넘기고 있지만, 남 탓하지 않고 말없이 웃어넘기는 사람이 있다. 그러기에 이 나이까지 잘 살아온 것이다. 잘 살았다는 것이 외적인 돈이나 출세를 의미하기보다는 삶의 강물에 밀려 상처투성이가 되어 표류하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지키며 잘 헤쳐나와 존재의 뜰을 가꾸어왔다는 것이다. 드러난 형태는 차치하고 떳떳하며 나름의 품위와 여유를 누리며 사는 모습이 장하고 귀하게 여겨졌다. 그들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기회에 감사하며 너그럽게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현란한 언어보다 더 깊은 애정과 혜안을 엿볼 수 있었다. 

    

 삶이라는 광활한 무대에서 주어진 배역이나 역할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에 충실하며 배우고 나름의 도를 닦아 나올 수 있다면, 분명 잘 살았다고 할 수 있고 모두의 존중과 인정을 받을만하다. 우리에게 삶이라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먼저 감사하며 어떤 위치에서 어떤 배역이 주어졌건 간에 충실히 할 바를 해 나왔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의 길을 배웠고 익혀나가고 있다. 


 그런 길이 외롭지 않은 것은 함께해 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재미나고 행복한 순간들도 많았었다. 긴 세월을 함께 해 온 우리 친구들과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추억은 내 삶의 소중한 부분이 되었고 우리는 또 그렇게 서로 위로하고 손잡아 주며 함께 살아갈 것이다. 

 삶이 우리 모두에게 전해준 수많은 축복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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