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선화 May 14. 2023

내 마음의 샘물 25

 어릴 적 화단에 꽃씨를 심어 놓고 돌아서서 아무런 기척이 없고 변화가 보이지 않으면 기다리다 못해 궁금해서 파보기도 하고 물을 더 주기도 했다. 콩나물은 물만 주면 쑥쑥 자라는데 꽃씨는 그렇지 않아 며칠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내가 자꾸 건드리면 씨가 자라지 못한다며 그냥 내버려 두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래도 참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며 안달을 부리면 조용히 기도하라고 했다. 그래서 어린 나의 기도는 ‘빨리 나와라, 얼른 보고 싶다.’였다. 

 그러다 매일 들여다보는 것에 지쳐 잊어버리고 지내다, 어느 날 문득 생각나서 다시 가 보면 어느새 잎이 나고 꽃이 피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어릴 적 꽃씨가 돋아나고 피어나기를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고 인내하듯, 살아가는 과정이 그렇다. 어떤 의미에서나 삶은 인내의 과정이며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내 어린 마음처럼 안달하며 발을 동동 굴릴 것이 아니라 믿고 기다리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생명은 어느새 꽃 피고 열매 맺는다.     

 어디 꽃을 기르는 일만 그런가? 얼마나 많은 세상사가 이런 인내와 믿음 그리고 기다림을 요구하는가! 이런 관점은 인내심이 부족한 인간의 관점으로 바라본 것이다. 자연의 법칙과 우주의 논리는 사람의 조급한 태도와는 상관없이 초연하고 거대한 법칙에 따라서 잘 작동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조금 더 느긋해지고 인내심이 늘어나서 기다릴 줄도 알고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힐 줄 알게 된 것은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겨우 체득한 배움이다. 그러면서 모든 것에, 때가 있고 적절한 시기가 있다는 것과 시간과 함께 사귈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꽃에 취해있던 사람들은 지는 꽃을 보며 허망하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꽃이 지고 나면 돋아나는 이파리들은 또 다른 잔치를 준비하며 새 희망을 전해준다. 아무런 의미 없이 왔다 가는 것이 아니라, 피고 지며 열매 맺는 과정 모두가 그 자체로 선이며 진리와 사랑의 표현이다. 나무로, 꽃으로 그 존재 자체가 의미를 지니며 창조적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내 존재도 삶의 주기에 따라서 창조적 과정을 따라 변해갈 것이다. 

    

 단지 근시안적인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계속 꽃만 보고 싶은 인간의 이기적인 눈에는 전체적인 그림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꽃의 계절이 있고 열매 맺는 시기가 있다. 이 모두가 더 큰 창조를 이어가는 주기들이다. 그러기에 가는 것을 붙잡지 않고 오는 것을 막지 않는다. 모두가 순리대로 오고 가며 새롭게 드러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갈 것이고 해는 뜨고 질 것이다. 그래도 나라는 요소가 채워야 할 자리가 있고 내가 더해야 할 의미가 있기에 조물주는 나를 세상에 내보냈다. 

     

 더 알아야 할 것이 있기보다는 이미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바라는 바를 먼저 내가 실행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다. 내가 존재함으로써 세상이 더 넉넉해지고 살맛 나도록 더 사랑하고 더 나누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더 실행하고 표현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며 책임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 마음의 샘물 2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