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언니가 필요한 의자를 새로 사기 위해, 놓을 공간을 재기로 했다. 그러나 잘 사용하지 않는 줄자를 찾아내는 일은, 노인에게는 사막에서 길을 찾는 것만큼이나 지난 한 일이었다.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포기하고 주변에 있던 비닐 끈으로 재려고 하니 끈마저 짧아서 다른 끈으로 묶어서 겨우 길이를 파악했다.
손에 쥔 끈을 보고서 언니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참 가난하고 초라해 보이겠다.’ 내가 보기에도 너무 없어 보였지만, ‘아이고! 할머니가 참 알뜰하고 야무지시구나!’라며 감탄할 거라고 했다. 나이 들어 기억력이 나빠지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초라해 보이고 무시당하는 것을 염려하던 언니의 표정이 금방 밝아지며 안도하는 눈치였다.
같은 상황도 보기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말을 할 수 있다. 어떤 말을 하는 가는 상황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태도와 인격에 따라서 정해진다.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임에도 스스로 주눅 들고 자존감이 낮아진 노인에게 용기를 주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말이 내 인격을 먼저 높여준다.
같은 사물이나 사건도 긍정적으로 보며 상대방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이 있다. 세 치 혀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기왕이면 살리는 쪽이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을 도와서 힘을 실어주고 기분 좋게 하는 일은 내게도 기쁜 일이다.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상대가 내 말에 고마움을 느낄 때 나도 기분이 좋아지고 자존감이 올라간다. 한 마디 친절에 하루 내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말이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다.
잘 알려진 실험이 있다. 식물에 물을 주며 하나는 예쁘다, 잘 자라라, 사랑한다 등의 긍정적인 말로 사랑과 축복의 기운을 전하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했다. 결과는 사랑을 받은 식물은 잘 자라지만 부정적 기운을 받은 식물은 잘 자라지도 못하고 죽어갔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식물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는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초등학교에서 학년이 바뀔 때 전 담임 선생님이 새 선생님에게 우수한 학생을 말썽꾸러기라고 하고, 문제아를 모범생이라고 일러주었다. 한 학기가 끝난 후에 보니 담임이 생각했던 대로 되었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이 바로 학생들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친 것이다. 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와 기대가 나에게도 큰 영향력을 미친다.
그래서 옛날부터 부모는 아이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자식에게 빌어먹을 놈이라고 하는 대신 못되어도 장관은 될 놈이라 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의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항상 어린 노무현에게 너는 크게 될 사람이라며 격려해주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자 은사님을 찾았지만 이미 작고하셔서 그 아들을 만났다. 이런 인연으로 그 아들은 후에 장관이 되어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 많은 일을 했다.
우리 언니는 아들이 80년대 학번으로 큰 집을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다. 아들에 대한 분노를 참다못해 ‘더러운 놈’이라고 불렀다. 언니는 아들에게 할 욕을 정하는데 1주 이상 고민했다고 한다. 왜 더러운 놈이냐고 묻자 ‘더러운 사상에 물들어 지금은 저러지만 씻으면 다시 깨끗해질 테니까’라고 했다. 아들에게 욕을 하는데도 부모의 애정이 깔려있었다. 그런 덕분인지 그 아들은 지금은 존경받는 사람으로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모두도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신 분들을 기억하고 있다. 어린 마음에 힘들 때, 격려해 주고 용기를 불어넣으신 분들 부모님, 선생님 아니면 이웃이나 친구 등 수많은 사람의 격려와 사랑 그리고 배려 덕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단순한 말 한마디 아니면 눈길 한 번이라도 사랑과 배려 그리고 용기를 주는 자비와 공덕을 쌓아나가는 것이, 나와 우리 아이와 가족을 넘어서 이웃 모두를 살리는 가장 간단하고 소박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