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부여에 대하여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바뀔 수도 있지만 바뀌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가까운 인연으로 만났을 때 바꾸겠다는 노력은 혼자 박수를 치는 외로운 일이 될 수 있다. 나도 바뀌지 않는데 누구를 바꿀 수 있을까? 죽기 전에 사람은 바뀔까? 허나 죽기 전에도 사람이 바뀌는 건 쉬워 보이지 않는다. 죽을 고비를 넘기더라도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쉽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기 전까지도 바뀌지 않는 게 우리네 경험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오은영 의사의 지난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SBS 프로그램을 보았다. 다큐 <내가 알던 내가 아냐>에서 일주일 동안 지인들과 함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첫 장면에서 오은영 박사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인형이 관속에 누워있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긴 할 텐데, 자꾸 봐도 당황스럽다."라 고백했다. 이어 그녀에게는 일주일이라는 가상의 시간이 주어지게 된다.
실제로 과거 44세였던 오은영 박사는 2008년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아들이 초등학생이었는데 아들과 남편에게 미안해서 너무 힘들었다 자백했다. 힘들었던 그 시절을 생각하니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자신을 똑 닮은 인형에게 용기를 내어서 어깨를 다독이며 말한다.
열심히 잘 살았어. 이제 조금 쉬어.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 남은 그녀가 절친들을 만난다. 김주하 앵커와 정미정은 17년째 이어온 오랜 인연이다. 오은영 박사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다큐멘터리를 풀어놓았다. 김주하도 내일이나 한 달 뒤에 죽는다 해도 원래 살던 대로 열심히 살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을 떠난 자신을 돌아보며 "애썼어. 열심히 살았어. 이제 좀 쉬어."라는 말을 해줄 것 같다고 말하는데 모두가 공감했다.
오은영 박사는 방송인 송은이를 만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추억들을 회상했다. 출연했던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어 상봉하게 된다. 이들을 '아들들'이라 반갑게 부르며 누구보다 기쁘게 안아주는 오은영 박사는 정신건강의학의를 넘어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다. 오은영의 치료가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며 박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이어 오박사가 떠난 자리에서 제작진은 송은이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묻는다. "만약에 오늘 본 오은영이 마지막 모습이라면 어떨 것 같으세요?"
방금 만난 누군가의 모습이 마지막 순간이었다면? 인연이 깊게 닿은 사람이라면 너무 슬프고 먹먹하고 안타까울 것이다. 주변인에게 듣는 그녀의 모습 속에서 박사는 다른 사람의 몸은 건강하게 해 주면서 자신은 건강하지 않다는 점, 운동을 안 한다는 점, 요리를 못한다는 점 그러나 마음속 보물을 캐는 광부라는 점이 전해진다. 죽음이 얼마 안 남았다고 가정한 일주일은 이전의 하루와는 달랐다.
죽음이라는 걸 자주 기억에 떠올리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아. 그런데 몇십 년 후는 아닐 것 같아. 그날까지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매일매일을 살아볼 거야. 그때까지 잘 있어.
정말 아끼는 사람도 많고 정말 멋진 인생이었네.
특별한 하루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매일 해왔던 일들 매일 있던 공간 늘 다니던 길이라 생각하면 남은 하루하루가 소중해진다. 오은영 박사는 누워있는 자신에게까지 따스한 미소를 건네고 격려의 말을 전한다. 주변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자신에게는 그동안 열심히 잘 살아왔다 위로를 건넨다. 그녀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누군가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고 싶은지 생각하면 바뀌고자 하는 동기가 살아난다. 초등학생 조카를 키우는 언니 집에 놀러 간 적이 갔다. 여느 아이의 가정집처럼 집안이 아이 소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발 디딜 틈 없는 거실 바닥을 지나가다 장난감에 걸려 넘어졌다. "이 모습을 자기의 어린 시절 집으로 기억할 거야. 치우지 않으면 이 모습을 평생 어릴 적 집으로 기억하게 될 거야."라 하니 다음번에 방문했을 때 집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는 것보다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은지에 따라 동기가 더 많이 부여된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예쁘게 꾸미고 멋지게 보이려 헤어컷도 하고 옷도 사기도 하고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고 동기는 여간 쉬이 부여되지 않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지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길 바라는가? 누군가의 만남이 마지막 순간이 된다면 어떠한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12월의 주제는 <동기부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