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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Jan 13. 2022

남의 것이 더 좋아보일 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명대사

더 이상 못 참겠다


사람을 부려먹어도 이렇게나 부려먹을 수 있나? 존중은커녕 자존감이 마저 바닥쳤다. 직장 상사는 그야말로 최악의 인간이었다. 무조건 자기가 내린 지시에 복종만을 바라고 본인 말이 다 맞는다고 우겨댔다. 이미 몇 번이나 보고한 사항도 '전혀'(정말 전혀) 기억이 안 난다며 누군가를 책망하기 바빴다. 그러나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그의 약점은 바로 그의 상사에 관한 일이라면 무조건 발작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신보다 더 높은 이에게 굽신거리며 잘 보이려 땀 빼기 바빴다. 그분이 어떤 말이 맞는다고 하면 상식적으로 아닌 말이라도 무조건 맞아야 하는 거고 틀리다고 하면 0.1초 만에 말을 바꿔 틀리다고 답했다.

덴마크의 어느 연구를 보면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그 주된 이유로 경영진이 엉망이라는 점을 꼽는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매일 우리를 옥죄는 구조나 체계도 직원들이 떠나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이다. 세 명 중 한 명은 심리적 업무 환경이 열악하다고 말한다. 낮은 임금이나 긴 업무 시간보다 이 부분을 언급한 사람이 더 많았다. p92 <삶으로서의 일> 모르텐 알베크 


'직원은 회사를 떠나는 게 아니라 관리자를 떠난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사람 때문에 퇴사하는 일이 결국은 인간관계 중에서도 관리자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불공정한 처우, 직원을 당연시하는 것, 직원들을 고립시키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이런 직장을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명제로 설전을 벌이는 두 남녀가 있다. 성격과 취향이 정반대인 서로를 별종이라 생각하는 해리와 샐리의 이야기이다. 뉴욕에 도착한 두 사람은 짧은 인사 후 바로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몇 년 뒤 우연히 서점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샐리는 연인과 이별했고 해리는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둘은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친구가 된다. 그러나 자꾸 운명은 야속하게도 어긋나기만 한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레스토랑 장면이다. 해리와 샐리는 또 설전을 벌이게 되고 샐리가 내뱉는 연기를 지켜본 옆 테이블 아주머니가 웨이터에게 말한다.


I'll have what she's having.
저 여자가 먹는 걸로 주세요.
내가 먹는 게 더 맛있어 보이지?? © Columbia Pictures


남이 먹는 짜장면이 젤 맛있어 보인다


모욕적인 말을 듣고 회사를 다닐 마음이 없어졌다. 내가 이러려고 회사를 다녀왔나?라는 자괴감으로 우울감이 바닥을 쳤다. 퇴사를 통보하고 돌아온 집에서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만둔다는 딸 앞에선 아버지는 이성적이셨다. "그 사람은 잃을게 많아서 그런 태도를 보인 거겠지. 다른 회사도 다~~ 똑같다. 남이 먹는 짜장면이 더 맛있어 보이는 거야." 직장 생활을 하다 사업 전선으로 뛰어든 아버지의 경험담이 담긴 충고였다. 


배가 고플 때 누군가가 후루룩 소리 내면서 먹는 짜장면이 그렇게 맛있어 보일 수가 없다. 갓 끓여 윤기가 좔좔 흐르는 탱탱한 면발을 찬물에 헹군 다음 준비된 그릇에 담아 갖은 채소와 춘장을 섞어 불맛을 감미한 짜장면.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 환상적인 맛. 얼마나 맛있을까? 거기다가 노란 단무지를 베어 먹거나 달달한 양파를 춘장에 찍어 먹으면 세상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으리라. 티브이에 나오는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화면을 보고 얼른 배달 앱을 켜서 짜장면을 주문한다. 신속배달이 완료된 짜장면을 뜯을 때면 이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다른 회사는 다르겠지? 라 생각하지만 직장 생활하는 거 다 비슷비슷하고 사람 사는 거 다 고만고만하다. 여기서 그만두고 다른 데로 옮긴다 할지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직을 많이 한 친구의 말을 들어봐도 환상적인 유토피아 같은 회사는 없는 것 같다. 아무리 구글 같이 통 큰 복지를 제공하는 회사도 그만큼 시키기 때문이라는 기정사실이 깔려 있다.



또라이이즈백


어쩌면 사회생활 원칙으로 통용되는 '또라이 총량 법칙'이 있다. 또라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며 어디에나 또라이가 존재하고 또라이가 없을 경우에는 내가 또라이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또라이 총량 법칙'은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볼 때도 적용된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일을 돌아보면 오히려 그 또라이를 미리 겪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 또라이는 그렇게 열심히 또라이짓을 하다가 본인이 자존심 상한다며 금세 그만두게 되었다. 자신만의 이상한 확신으로 맞다고 우기면서 살다가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고 자기의 노력을 몰라준 세상 탓을 하다 지쳐 나가떨어졌다. 어쨌든 그러한 또라이를 지켜보면서 저렇게 살면 최후가 저런거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남이 먹는 짜장면이 더 맛있어 보이고 남의 직장이 더 번듯해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 속해 있으면 짜장면도 당연해 보이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의 복지도 '이럴 거면 일이나 덜 시키지'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미리 한 종류의 또라이를 겪은 나는 몇 년이 지난 이후에 다른 또라이가 보면 '어랏! 이 또라이는 그 또라이와 좀 다르지만 새롭네.'라며 관찰하게 되었다. 


회사라는 조직은 뛰어난 한 개인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뛰어난 누군가가 필요치도 않을 수도 있다. 내가 겪은 또라이들 즉 소시오패스들은 결국 먼저 떨어져 나갔다. 자기 열심히 일한다고 착각하거나,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자신을 세상이 몰라준다 탓을 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또라이 총량 법칙에 따라 아직 남은 인생을 바라보면 또라이를 아직 덜 겪은 거일 수도 있다. 이제 또라이가 오면 '어 왔어?'하고 반기며 이전 또라이와 비교 분석해 데이터를 쌓아두는 재미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또라이어, 어서 와라!' 


온다 온다 또라이가 온다. 싹 돌아버릴것 같은 답답한 맛. 또라이의 원조 상또라이 ©하이트진로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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