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드림 Jan 03. 2022

우리는 까마득하게 약속도 없이 사랑을 시작한다

<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를 읽고

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

정현우 / 웅진지식하우스

사람으로서 가장 할 수 있는 건 좋은 것은 무엇일까? 아마 사랑이 아닌가 싶다. 사물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애정, 내가 가진 추억에 대한 소중함. 이 모든 것은 내 안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정현우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사랑하는 것들이 모두 나보다 오래 살 수 없고 유통기한이 있기에 외롭고 슬픈 나날들. 우리가 슬픔 속에서도 마침내 사랑으로 설 수 있도록 위로와 용기가 가득한 산문집이다. 


“떠난 사람들이 찾아와 잠긴 문을 두드리는 날에 나의 문장은 쓰였다. 우리의 슬픔과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슬픔은 지금을 쓰고 사랑은 과거를 쓴다.”
- 들어가며


“인간은 슬퍼지기 위해 만들어질까요”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들에 기대어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슬픔과 왜 생겨나는지에 대한 고민이 나타나 있다. 문득 발견한 어머니의 일기장에 소녀 시절의 꿈과 생의 힘듦이 고스란히 남겨져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소년은 그렇게 인생과 슬픔에 대해 어렴풋이 알아간다. 




사랑의 젠가: 나의 사랑은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한다 


2부 사랑의 젠가의 부제목은 '나의 사랑은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한다'이다. 모든 것엔 또 모든 사랑엔 마지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모든 것이 나보다 오래 살 수 없기에 슬픔 앞에 물러서지 않고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간다. 먼저 떠나보낸 이를 그리워하는 사람에게는 애도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 사람과의 좋은 기억, 나쁜 기억을 모두 하나씩 미화시켜 곱게 보내주는 것이다. 그만큼 남은 이에게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 애도의 기간을 잘 보내야 앞으로 남은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다. 


“오래 견디는 사람이 패자가 되는 법칙이 있지. 바보 같다고 해도 나는 그 아픔들을 견뎌보고 싶어. 그건 울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마음일 거야. 잊지 말아야지, 모두 다.” - 본문 중에서




병아리에게서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백과사전에서 병아리에 관해 찾기 시작했다. “병아리는 따뜻하게 체온을 유지해야 합니다”라는 말에 방바닥을 데우려고 보일러의 온도를 올렸다. … 병아리는 내게 사랑을 가르쳐주었다. 사랑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웅덩이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 물속에서 수면 위로 떨어지는 낙엽을 올려다보는 것, 그리고 함께 휘청해보는 것이라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고요히 그 존재를 다치지 않게 안아볼 수 있었을까. 그럼 사랑을 주는 기분이 조금 더 오래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사랑은 알게 되는 것뿐. 사랑은 예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p.18~19,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 중


하교를 할 때면 삐약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모여있다. 이 소리는 세상에서 어떠한 생명체가 낼 수 있는 가장 귀여운 소리가 아닐까? 귀엽게 삐약 거리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올 때면 무한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따뜻하게 체온을 유지하라는 말에 평소에 춥게만 지냈던 방바닥의 온도를 데우고 잘 먹지 않을까 잘 자지 않을까 정성스럽게 쓰다듬는다. 누군가가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온다고 했던가? 사랑은 배우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이 되면 어떠한 웅덩이로 빠져들게 된다. 생명체를 보호하기 위한 나의 사랑이 마음껏 포효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어떠한 다른 생명체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꽉 잡아, 넘어지면 큰일 나니까.” 눈구름 속에 구멍이 났는지 함박눈이 쏟아졌다. 네 살 아들과 다섯 살 딸을 뒤에 태우고 시장으로 간다. 돌아오는 도중에 눈에 미끄러져 셋이 한꺼번에 엎어져 버렸다. 양쪽에 실어둔 과일들이 길거리에 널브러졌다. 딸이 벌떡 일어나 엎어진 나의 손을 잡는다. 아들은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려고 애를 쓴다. 넘어지는 순간 아이들이 다칠까 봐 내 몸을 바닥 쪽으로 던지는 바람에 허벅지 한쪽이 찢어지고 멍이 들었다. 울고 싶었지만 아이들 앞이어서 울음을 삼켰다. 엄마에게 피가 난다며 아들이 울었다. 나는 아이들을 껴안으며 말했다. “뚝, 세상에 울 일이 훨씬 더 많지. 이건 하나도 아픈 일이 아니야.”
p.207~208, 「엄마의 일기 5」 중에서


엄마도 다치고 아프다. 아이들이 다칠까 봐 허벅지 한쪽이 찢어지고 멍이 들었는데 아이들 앞이라 울음을 삼킨다. 엄마라는 무게 때문에. 세상에 울 일이 훨씬 더 많아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는 아이들을 달랜다. 그리고 이내 관심이 아이들로 향한다. "배고프지?" 하느님이 각 가정을 돌볼 수 없어 엄마라는 존재를 내려보냈다는 이야기. 천사가 피가 나는데도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리고 야속하게 내 배는 음식을 보고 금세 허기가 지고 허겁지겁 먹어 된다. 엄마는 먹지도 않고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며 더 음식을 내어준다. 내가 배고픈 건 아무것도 아니야. 


사람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약속이 감히 사랑이라고 울부짖는다. 그러니 당신은 내 곁에 부디 살아 있어 달라고. 나보다 먼저 가서 슬픔을 주지 말라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존재에 대해서는 이유가 없고 예고도 없다. 갑작스럽게 찾아와 우리는 약속도 없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랑을 하고 또 누군가를 떠나보내게 된다.  슬픔 속에서도 그동안 나눴던 사랑을 가지고 온전히 살아낼 수 있도록 위로하는 산문집이다. 사랑을 주고받지 않으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오늘 걷는 거리, 향기 내음, 지나다니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베풀면 온전히 나에게 돌아올 터이다. 

#정현우 #우리는약속도없이사랑을하고 #책리뷰


매거진의 이전글 춘천의 명물 '감자빵' 이야기 - 오늘도 매진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