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마지막 생일

못다 한 마지막 생일을 함께 축하할 수 있기를

복슬복슬한 곱슬머리를 가진 까만 눈동자의 작은 생명체가 20년 전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이 작은 동물은 집안의 온갖 물건을 물어뜯으며 급격히 성장했다. 음식 냄새가 나는 모든 걸 물어뜯고 잠시 열린 현관문을 뛰쳐나가 옆집에서 내놓은 짜장면 그릇을 핥아먹기 일쑤였다. 하루는 식탁에 있는 고구마전을 모두 다 먹어치워 하루 종일 똥을 치우느라 바빴던 기억도 있다. 

어릴 때 마냥 건강했던 것만은 아니다. 잔병치레도 잦았다. 가끔 토하거나 식욕이 없어 보이면 24시간 동물병원으로 울며 뛰어가기도 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들은 병명은 대부분 과식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그를 꾸짖기 바빴다. 이 작은 생명체 하나가 집안에 들어오는데 그리도 많은 책임이 쥐어질 줄 몰랐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면서요?

슈나우저, 비글, 코카 스패니얼은 3대 지랄견으로 불린다. 그 3대 지랄견 중 가장 활발하며 식탐이 넘치는 아이가 바로 우리 반려견이었다. 잉글리시 코카 스패니얼라면서 영국 신사다운 면은 어딨는 거지? 밥을 줘도 배고프다 보채기 바빴고, 간식을 주면 밥을 굶은 사람처럼 씹지도 않고 삼키기 바빴다. 

어느 날, 내 발을 살짝 물어 아프다고 우는 척을 했더니 점프도 잘 못하는데 의자 위에 앉은 내 무릎 위로 뛰어 올라서 사과를 했다. 이때 느꼈다. '아 이 소중한 작은 생명체 하나 잘 키워야겠구나. 나에게 주어진 보물이구나.' 나갔다 돌아오면 오랜만에 상봉한냥 반갑게 달려들었고, 잠들기 전엔 같이 자고 싶다며 낑낑대었다. 장화 신은 고양이 표정을 보이니 받아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족이었기에 매년 생일을 함께 했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을 축하했다. 우리 가족이 되어주어서 고맙다며 함께 생일 축하노래를 불렀다. 매년 생일 축하를 해왔지만 14살이 되던 날, 그의 생일을 지나친 걸 뒤늦게 깨달았다. 가족 중 아무도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안함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내년 생일을 성대하게 치러주겠다 다짐해야만 했다. 

성대하게 치러주겠다 약속한 다음 생일에 그가 그 자리에 없었다. 다음 해 생일을 다가왔지만 그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14년 6개월을 우리 가족과 함께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마지막 생일을 함께하지 못한 게 얼마나 한이 되던지. 얼마나 서운했겠냐 싶기도 하고, 뒤늦게라도 치러줄 걸 하는 후회가 가장 크다. 그렇게 지나쳐버린 다음 생일을 우린 함께하지 못했다. 

Life is short and it's fragile, and we don't know how many birthdays we have. (인생은 짧고 연약해요.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생일을 맞이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 엘렌쇼, 엘렌 드제너러스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일을 함께 맞이할지 모른다. 올해 생일을 잊어 내년에 배로 축하하려 하지만 어떤 일이 생겨 함께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미루기엔 우리네 인생은 짧고 연약하다. 시간은 우리를 그만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번'이라는 말은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고 너무나도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을 수 있다. 인생은 짧고 함께 축하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이맘때가 되면 생일을 맞은 그가 생각이 난다. 마지막 생일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하늘나라에서 맘껏 먹고 뛰어다니며 잘 놀고 있길. 내가 하늘나라로 갈 때 마중 나와주길. 못다 한 마지막 생일을 함께 축하할 수 있기를.

못다 한 생일 축하해@Jasmin Chew,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