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수요일입니다. 수요일은 참 빨리도 돌아오네요. 이번 주는 연휴가 있어서 왠지 수요일이 너무나도 빠르게 온듯합니다. 벌써 8월 중순이고 말복이 지나면서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네요. 그래도 여전히 에어컨과 작별인사를 할 순 없지만 여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니 또 아쉽기도 하더라고요. 이번 여름은 유독 덥기도 하고 폭우가 많이 와서 무언가를 한 게 없다고 느껴지더라고요. 한주를 돌아보는 회고를 하고 있는데 막상 쓸 것도 없고요. 그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20년 된 수첩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무언가라도 해보려 책상 서랍을 열었다. 쌓인 옛 소품들을 바라보며 이제쯤 정리해야 될 때가 아니냐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고하려 한다. 나란 사람은 참 이별을 못한다. 세상 어떤 것과도 헤어지려면 미련이 남는다. 두 눈 질끔감고 이별인사를 하려던 도중 어릴 적 영아트에서 구매한 천 원짜리 수첩이 눈에 띄었다.
와, 이게 아직도 있네!
라 감탄할 때쯤 딱딱한 표지를 만져보니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느껴진다. 겉면에 필기체로 '컬러 존(Color Zone)'이라 쓰여 있는 이 수첩은 이름과 맞지 않게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사진이 있다. 20여 년의 나이를 먹은 수첩이 아직도 건재한 걸 바라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부쩍 커버린 나 자신의 모습에 아련하기도 한다. 조심스레 펼쳐본 첫 페이지에는 친구가 교토에 거주할 때 놀러 가기 위해 준비한 것이 적혀있다. 공항버스 시간과 항공편, 탑승구의 위치가 어디인지. 또 친구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빼곡히 적혀있다.
기록을 보며 흐릿한 기억을 끄집어내니 그때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그 당시 일어도 모르고 영어도 잘 못하는 어린 나였는데 지금은 외모뿐만 아니라 많이 성장한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옆 나라 국민에게 친절하지 않았던 일본이었기에 까막눈인 어린 여자아이가 한자를 읽는 것도 낯설었을 때였지만 몇 년 후 다시 방문하니 친절하게도 한국어 표지판이 가득했던 기억도 있다.
평생 악필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예쁘게 정성 들여 글씨를 쓰지 않았던 나 자신의 게으름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당시의 나는 여행을 간다는 설렘과 베스트 프렌드를 만나러 간다는 기쁨에 한 글자 한 글자 성의를 다해 글씨를 썼던 것이다. 이런 기록들이 모여 나의 하루를 켜켜이 채웠고 지금의 내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매주 회고 기록을 하기로 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 한 달을 돌아보기 위해 매달 회고를 하다 재밌어 매주로 바꿔보았다. 하루하루는 길게 느껴지면서 '일주일이 왜 이렇게 짧지?' 라 느끼고 또 일 년은 순식간에 다가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차곡차곡 쌓인 기록은 흩날리는 감정의 이정표가 되고 인격의 나침반이 되며 나라는 사람을 만들 것이다. 기록은 기억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하루를 새기며 기록의 힘을 믿기로 한다.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그 순간을 간직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렴풋한 내 흑백 기억에 컬러를 입히는 건 기록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기록을 함으로써 자신을 치유하고 삶을 튼튼하게 아카이빙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와 친해진다.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느낄 때 남긴 기록은 내 삶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어 의미를 찾게 되는데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기록이 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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