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드림 Sep 13. 2022

브런치북 제9회 대상 수상작, <미물 일기>를 읽고

<미물 일기>를 읽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존경해, 미물 일기

진고로호


어떤 글들이 브런치북 대상을 받았을지 궁금해서 단숨에 집어 든 책. 일상에서 마주친 작고 대단한 생명들과 그 속에서 발견한 '나'라는 미물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공무원이란 안정된 직장을 그만둔 후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자리 잡힌 그녀는 산책을 자주 했다. 느리게 걷다 보니 들꽃과 작은 벌레가 눈에 들어오고 지저귀는 새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이름과 안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는 그녀. '진로고호'는 함께 살았던 또는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조합한 필명이다. 


벌써 네 번째 책을 발간한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공무원이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또 어떠한 이야기를 담았을까? 소속감이 없어진 그녀에게 상실은 없었을까? 


자연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고 나를 괴롭히는 것들도 같이 작아졌다.

다정한 발견이 우리의 계절을 가득 채우길


"새로 깔아 말끔한 보도블록 틈에서 솟아난 풀을 발견할 때, 예전에는 무서워하던 곤충을 가까이 바라볼 수 있게 되거나, 어제만 해도 들리지 않던 개개비의 울음소리를 듣고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면 이상하게도 손바닥이 빨갛게 파일 때까지 세게 움켜쥔 손에 힘이 풀렸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길 가다가 작은 미물들을 보면 왠지 동질감일까? 너도 숨을 쉬고 나도 숨을 쉬는구나. 너희들은 내 손톱보다 작기도 하고 하찮게 느껴지기도 하고 답답해 보이면서도 뭔가 열심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저자 또한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피곤한 인생이라고 한다. 살아가기 힘든 이 세상 아래 어떤 계절을 겪고 있나요? 하얀 뭉게구름 아래 능소화가 한창인 여름인가요? 낙엽 냄새 진한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치는 가을인가요? 아니면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인가요? 영춘화가 피고 개구리가 우는 봄인가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시간을 허투루 보냈다는 자책과 앞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비관이 밀려오기 직전이었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 짓눌린 지렁이를 볼 때마다 징그럽다기보다는 안타까웠다. 지렁이는 피부로 호흡하기 때문에 비가 내려 흙 속의 공기가 부족해지면 숨을 쉬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여전히 비 온 뒤 길에서 죽어가는 지렁이를 보면 신경이 쓰였다. - p20,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지렁이


비가 유난히 많이 왔던 2022년에는 비에 지렁이도 떠내려갔는지 많이 볼 순 없었다. 미물 일기를 읽고 나서, 너란 녀석은 피부로 호흡하는 것이었구나. 왜 비가 온 이후에 말라죽어있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숨을 못 쉬는 지렁이를 보면 풀밭에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도 모를 일이었다. 그저 내 얼굴이 덜 창백해 보일 정도로 얹어주는 립스틱의 재료가 바로 지렁이라는 사실만 어렴풋이 기억하기 마련이었다. 


피부가 약한 지렁이란 녀석은 빛이 있는 낮이나 건조할 때는 땅속에 머무른다. 썩은 뿌리 등 흙 속으로 가져가고 섭취하고 배설하는 과정에서 흙과 유기물을 섞어 땅에 영양을 돌게 만들며 또 그 똥은 농작물 재배에 도움이 된다 한다. 제 할 일을 잘 해내는 지렁이처럼 영원히 아플 것 같고, 영원히 발전이 없을 것 같지만 이런 시간도 곧 지나간다. 땅속에서 제 할 일을 해내는 지렁이를 보며 다시 꿈틀꿈틀 시작해 보자고. 



이런 것까지 극복해야 하나 싶지만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익숙해지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막 이사를 왔을 무렵에는 새벽에 무방비로 돈벌레와 대면하고 소리를 지르며 남편을 깨웠지만 오랜 시간같이하다 보니 지금은 능숙하게 벌레잡이 통으로 돈벌레를 잡아 베란다 밖으로 던질 정도의 담력을 갖게 됐다. 현재 우리 집 방충 담당은 나다. - p 29, 이런 것까지 극복해야 하나 싶지만, 벌레


바퀴벌레 잡아주면 3만 원 드린다는 당근 마켓의 글. 벌레를 무서워하는 누군가에겐 절박함이 가득 담겨 있다. 어쩌면 내 손톱보다 작은 벌레가 왜 무서운 것일까? 그중에서 가장 징그러운 건 돈벌레다. 다리가 너무 많고 많이 움직이는데 돈을 가져다주기는커녕 벌레 친구들만 불러올 것 만 같다. 더더욱 무서운 건 꿈에 돈벌레가 나와서 내 온몸을 기어 다니고 있다는 상상이다. 


저자 또한 긴장성 복통을 수없이 겪은 후 초보운전 100일째, 초행길에 도전했다. 백일의 기적을 맞이하면서 송파 대로를 슝슝 달린다. 곤충과 친해지기 도전 과제도 실천했다. 처음부터 운전도 잘하고, 벌레도 아무렇지 않게 잡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겁쟁이의 삶이 허탈할 것이다. 두려움을 넘어서 조금씩 넓어지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 크나큰 성공이라기보다는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작은 성취로 어깨춤을 추는 삶을 사는 그날까지. 


내가 한없이 작아 보일 때,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나보다 훨씬 더 작은 생명체들을 만나게 된다. 너도 숨을 쉬고 있구나. 너도 네 할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말을 걸 때쯤이면 어느새 작은 미물들로부터 위로를 받게 된다. 이런 발견을 다정한 발견이라 부른다. 

너에게 묻지만 사실 나의 안부를 전하는, 한낱 벌레에게도 친절한 사람이라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친구들, 이들과 함께라면 이 세상이 결코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이기에 변하기 위하는 과정이 있고, 구멍을 뚫기 위해서 한 점을 세차게 내리쳐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작고 대단한 친구들을 만나볼까? 



프롤로그―꽉 움켜쥔 손에 힘이 풀리는 순간


1부 너에게 묻는 나의 안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면―지렁이

이런 것까지 극복해야 하나 싶지만―벌레

자꾸만 돌아가야 하는 그곳―쇠백로

한 점 세차게 내리치는 나무 위의 너처럼―큰오색딱따구리

성과 없는 삶은 실패한 걸까요?―잠자리와 목련

너도 혼자니? 나도 혼자야―겨울 파리

봄을 맞이하기 전에 하는 결심―애벌레

작은 꽃을 피워내는 마음으로―들꽃


2부 한낱 벌레에게도 친절한 사람이라면

연민과 혐오를 오가며―매미나방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민달팽이

당신이 좋은 사람이면 좋겠습니다―사람

아름다운 연둣빛을 손안에―사마귀

나무로 기억되는 사람―박태기나무와 계수나무

저도 고통을 느낀답니다―물고기

화분 위에 피어난 크리스마스―인도고무나무

제 몫의 삶을 다하고 떠난 생명에게 존경을―고양이


3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친구들

새를 봅니다―일상틈‘새’ 관찰자의 기쁨

친숙하고도 강인한 귀여움―참새

어느새 안부를 묻게 되었어요―나무

오늘도 씩씩하게 걷는다―비둘기

완전한 절망이란 존재하지 않는 세계―거미

뒤뚱거리던 나의 친구에게―머스코비오리

어둠 속에 반짝임을 지닌―큰부리까마귀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어린 시절의 동물들

여름,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매미


매거진의 이전글 무슨 일이든 그냥 하지 말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